[배연해의 中國통신](20) ‘개혁의 그림자’ 실업자 대군

상하이(上海)는 중국최대의 개방도시이자 국제도시다. 상하이는 이곳 호구(호적)를 가진 1,600만명과 유동인구 400만명을 포용하고 있다.

상하이를 종단해 흐르는 황푸지앙(黃浦江) 주변의 발전상은 개혁ㆍ개방의 성과를 상징하고 있다. 구도심인 와이탄(外灘)과 황푸지앙 건너편푸둥(浦東) 신개발구의 마천루는 뉴욕을 연상시킨다.

하지만 와이탄의 뒷골목으로 들어가면 새로운 세계를 만나게 된다. 지저분한 거리와 다닥다닥 붙은 재래식가게들은 1960~70년대 서울 뒷골목으로 들어온 느낌을 갖게 한다.

때에 절은 옷과 새집을 지은 머리카락을 한 채손님을 기다리는 손수레꾼이 무시로 눈에 띈다. 이런점에서 상하이는 30년 이상의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도시다.

상하이는 인력을 빨아들이는 스펀지와 같다. 상하이의 휘황찬란한 외양은 실업ㆍ반실업 상태에 있는 인근 지역주민들에게 등대 역할을 하고 있다. 생계를 위해 안후이(安徽)성, 저지앙(浙江)성, 지앙수(江蘇)성 등에서 몰려든 국유기업 실업자와 농민들이 상하이 뒷골목을 채우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에게 상하이가 ‘약속의 땅’만은 아니다. 일자리가 이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안후이성 출신의 음식점 종업원 궈(郭ㆍ18)양은 그래도 나은 편이다. 하루 10시간 일하는 대가로 인민폐 800위엔(12만8,000원)을 월급으로 받고 숙식을 제공받는다.

저축까지 한다는 궈 양은 “일자리가 없는 고향보다는 낫다”고 말했다. 신장(新藏)성 출신의 택시기사 페이(費ㆍ28)씨의 한 달수입은 약 2,000위엔(32만원).

상하이에서 일한 지 2년이 넘었지만 아직 결혼할 엄두를 못내고 있다. 자녀교육을 생각하면 결혼 전에 좀 더 저축을 해야 한다고 한다.

그는 스스로 “운이 좋다”고 말했다. 이전에 일하던 공장이 문을 닫는 바람에 실업자가 됐지만, 택시회사에 아는 사람이 있어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는 것이다.

개혁ㆍ개방은 사회적 약자들에게는 도전이었다. 티에판완(鐵飯碗ㆍ철밥통)의 평생고용을 보장하던국유기업과 집체기업이 경쟁체제로 내몰리면서 난생처음 실업을 맞보게 된 것이다.

지난해 12월 말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은 실업에 대한 공포를 가중시키고 있다. 무한경쟁에 직면한 기업들이 구조조정을 가속화하면서 잉여인력 방출에 박차를 가하고 있기때문이다. 통계에 따르면 현재 기업의 잉여노동력은 전체의 3분의 1에 달한다.

실업은 취업난과 동전의 앞뒤를 이룬다. 국가가 직업을 배정해주던 과거의 틀은 깨진 지 이미 오래다. 중국정부의 추산에 따르면 10ㆍ5계획(10차5개년 계획ㆍ2001~5년) 기간에 중국전체의 잉여인력은 1,200만명에 달할 전망이다.

매년 새롭게 증가하는 노동인구 800만명과 현재 실업자 1,245만명 등 공급이 5,200만명인데 반해 일자리는 4,000만개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것은 1억5,000만명에 달하는 농촌의 잉여노동력은 제외한 보수적 통계다. 농민공(農民工ㆍ농촌유동인력)의 유입을 고려하면 도시지역 취업난은 가중된다.

중국당국에 따르면 매년 도시로 들어오는 농민공은 800만명에 달한다. 해외의 추산에 따르면 WTO 가입에 따라 중국에서는 단기적으로 4,000만명의 실업자가 양산될 것으로 예상된다.

농업분야 1,000만명, 국유기업 2,000만명, 비공유분야에서 1,000만명이 구조조정에 희생된다는 추산이다.

수출증가에 따라 늘어날 일자리 1,700만개를 감안하더라도 WTO 가입에 따른 추가 실업은 2,300만명에 이른다.

실업축소와 취업확대는 중국정부의 화두가 됐다. 실업증가는 결국 개혁ㆍ개방에 대한 인민의 지지 철회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실업보험을 비롯한 사회적 안전망이 없는 상태에서 실업자의 폭발적 증가는 정치적으로 더욱 민감한 문제다.

황쥐(黃菊) 중국공산당 정치국 위원 겸 상하이 시당위서기는 최근 “WTO 가입으로 중국공산당의 집권기반이 시험대에 서게 됐다”고 말했다. WTO가 현행 체제에가져올 충격을 완화하기 위한 경제, 사회적 재적응이 발등의 불이라는 것이다.

배연해

입력시간 2002/02/06 19:33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