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일본(95)] 노(能)와 교겐(狂言)

가부키(歌舞伎)는 당시까지의 일본 전통 예능 전체를 종합해 성립했다. 가면극 ‘노(能)’와 풍자극 ‘교겐(狂言)’의 영향은 특히 컸다. 가부키의 짙은 얼굴 화장은 익명성을 강조하기 위한 노의 탈, 대사 중심의 줄거리 구성은 교겐에서 비롯한 것으로 여겨진다.

현존하는 세계 최고(最古)의 무대 예술인 노는 탈과 춤, 줄거리 등의 구성 요소로는 우리 탈놀이나 산대놀음과 흡사하다.

그러나 최대한 절제된 엄숙한 춤동작과 극전체에 흐르는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는 전혀 딴판이다. 탈을 쓰지 않는 교겐이 오히려 내용상 우리 탈놀이에 가깝다.

노와 교겐은 같은 뿌리에서 나왔다. 중앙아시아에서 태어나 중국과 한반도를 거쳐 나라(奈良: 710~784년)시대에 일본에 전해진 ‘산가쿠(散樂)’라는 마당놀이가 있었다. 기악과 노래, 춤, 간단한 곡예와 마술 등을 망라한 연희였다.

한동안 관의 보호를 받으며 흥성했으나 헤이안(平安:794~1192년)시대 들어 보호제가 폐지되면서 예능자들은 전국으로 흩어졌다. 이들은 집단을 이루어 절과 신사의 보호 아래제의 등의 행사에서 예능을 펼치거나 전국을 유랑하면 공연하는 것으로 생계를 이었다.

‘사루가쿠(猿樂)’란 새 이름도 이때 나왔다. 애초의 발음이 와전된 결과지만 연희 내용이 풍자·해학적 흉내내기 중심으로 변화한 때문이기도 했다. 가마쿠라(鎌倉:1192~1333년)시대 들어 사루가쿠는 단순한 흉내 내기에서 벗어나 풍자적 내용의 대사극으로 발전했다.

한편으로 산가쿠는 오곡풍성을 기원하는 농경 의례와 결합, 농촌의 민속 예능인 ‘덴가쿠(田樂)’를 낳았다. 내용과 기능이 농악놀이와 비슷했을 덴가쿠도 전문 예능집단에 의해 발전을 거듭했고 사루가쿠의 영향으로 극형식을 띠었다.

사루가쿠는 해학적 대사를, 덴가쿠는 가무를 중심으로 삼았지만 음악과 춤이 함께했다는 점에서는 다를 바 없었다.

한자로 기예(技藝)를 뜻하는 노(能)가 당시 '가무를 동반한 연극'을 가리켰기 때문에 두 극형식은 각각 ‘사루가쿠노(猿樂能)’와 ‘덴가쿠노(田樂能)’로불렸다. 양자의 경쟁에서 무로마치(室町:1333~1573년) 시대 초기에는 덴가쿠노의 인기가 앞섰으나 간아미(觀阿彌)·제아미(世阿彌) 부자를 거치며 사루가쿠노가 압도적 우위를 굳혔다.

통치자인 ‘쇼군(將軍)’의 사랑을 받은 간아미는 음악과 무용을 강조, 흉내를 위주로 했던 사루가쿠노의 예술성을 크게 끌어 올렸다.

이어 제아미는 유현(幽玄)의 미학을 추구하는 ‘무겐노(夢幻能)’를 확립했다. 이때부터 사루가쿠노만을 노라고 불렀고 때로는 ‘노가쿠(能樂)’라고도 불렀다.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고정된 무대 양식도 이때 정착했다.

탄생과 정착에 지배층의 후원이 결정적 역할을 함에 따라 이후 노의 형식과 내용은 지배층 중심으로 고정된다. 노에는 살아 있는 인간이 등장하지 않는다. 죽은 무사의 영혼, 악령과 요정, 인간으로 화한 신 등이 등장해 과거를 회상하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현실의 인간을 등장시킬 경우 어떻게든 평가가 따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주역인 '시테'가 반드시 탈을 쓰고, 더러 맨얼굴로 등장할 때조차도 말하자면 '살가면'을 쓴 것으로 간주하는것도 익명성을 강조, 현실과 거리를 두기 위한 것이다. 더욱이 제아미 이후의 노는 정착된 원형 유지가 최대 과제였다는 점에서 시대의 변천을 반영할수 없었다.

노가 사루가쿠의 핵심인 현실 풍자와 희화를 그대로 잃어버릴 수는 없었다. 또 아무리 점잖을 빼면서 유현한 멋을 즐긴다고 해도 지배층에도 대중적 취향은 있게 마련이었다.

이에 따라 앞 뒤 두 마당으로 이뤄지는 노의 중간에 대사 위주의 풍자극인 교겐이 삽입됐다. 미친 소리, 허튼 소리를 뜻하는 이름은 해학과 풍자의 자극성을 완화하려는 타협책인 셈이다. 교겐은 노와 달리 탈을 쓰지 않은 현실의 인간이 등장하며 주역은 대개 서민형이다.

서민의 애환과 현실 풍자를 희극적으로 전한다. 장중하고 잔뜩 가라앉은 노와 박장대소를 부르는 교겐을 한꺼번에 펼치는 공연 형식 자체가 모순을 상징한다. 노에 삽입된 교겐을 ‘아이교겐(間狂言)’이라고 부른다. 교겐이 노에 삽입되지 않고 독립적으로도 공연되는 예가 많기 때문이다.

노와 교겐의 반주는 퉁소와 북, 장구를 줄인 듯한 모양의 크고 작은 북 등 4종의 악기가 맡는다. 일본의 다른 전통 예능과 마찬가지로 중요 작품의 주역과 조역, 악기 연주자 등에 모두 유파가 형성돼 기예를 대대로 세습한다.

황영식 도쿄특파원

입력시간 2002/02/07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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