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대금업 확산, 독인가 약인가?

국내진출 2년만에 사채시장 급속 잠식

셰익스피어의 작품 ‘베니스의 상인’에서 보듯 고리대금업은 큰 이문이 남는, 그렇지만 인정사정 없는 비정한 장사다.

지금은 조금 나아졌지만 불과 2년여 전까지만 해도 사채시장은 물론, 제도권인 은행에서 조차 일반 서민이 돈 빌리기는 하늘의 별 따기 만큼이나 어려웠다.

담보가 없으면 은행 출입은 아예 생각도 못했고, 사채업자들은 조금만 연체가 되도협박ㆍ폭력을 동원하기 일쑤였다. 이런 국내 사금융의 오랜 관행이 최근 바뀌고 있다. 일본계 대금업계의 급속한 국내 시장 잠식은 이런 변화를 가속화하고 있다.


10여개 업체가 국내시장 10%이상 잠식

국내에 일본 사금융업체가 들어온것은 IMF로 한창 기승을 부리던 1998년 말. 정부가 당시 외환 위기 탈출의 한 방편으로 외국 자본의 국내 유입 문호를 개방하면서 A&O인터내셔널, 프로그레스, 해피레이디, 파트너 크레디트 등 일본 대금업체들이 전액 출자한 사금융업체들이 하나둘씩 국내에 밀려 들어오기 시작했다.

자본금 100억여원의 작은 금고 수준으로 출발한 일본계 대금업체들은 선진 금융 기법을 접목시킨 탁월한 경영 기법으로 불과 2년여만에 국내 사채시장을 뒤흔들고 있다.

일본 대금업체의 급성장 배경은 국내기존 사금융업계와의 차별화 전략, 효과적인 틈새 시장 공략에 있다.

이들은 ‘돈 빌리는 사람을 죄인’ 취급했던 기존 관행에서 탈피, 철저한 고객 우선주의의 영업 전략을 펼친다. 일체 담보를 요구하지 않으며, 주민등록증과 주민등록등본을 제출하고 간단한 서류 작성만으로 즉석에서 대출해준다.

신용 불량자들도 정밀 조사를 한 뒤 선의의 피해자에 한해서 돈을 빌려 준다. 친절한 고객 서비스, 사채 고리대금업체에 비해서는 낮은 금리, 폭력이 배제된 채권추심 등의 장점도 갖추고 있다.

현재 국내에서는 10여개의 일본대금업체들이 영업중이다. 지난해 이들 일본계 대금업체가 서민들에게 빌려준 대출 잔액은 총 5,000여억원에 달한다. 이자 수입만도 1,000억원을 넘어선 것으로 추정된다.

서울 강남ㆍ북을 비롯해 전국에 29개의 지점을 운영하는 선도업체 A&O 인터내셔널의 경우 2000년 대출잔액 900억, 순이익 130억원(세후)이던 실적이 지난해에는 대출잔액 1,900억원, 순이익 300억원(세후)으로 100% 이상 증가했다.

올해는 대출잔액이 4,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일본 대금업체가 진출 2년여만에 국내 사채시장의 10% 이상을 잠식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일본 대금업체의 한 관계자는 “그간 지하에서 구먹 구구식으로 영세하게 운영되던 사채시장을 제도권수준의 규모와 서비스로 끌어올린 것이 성공의 배경이 됐다”며 “미국 등 서방 국가의 자본 유치는 긍정적으로 보면서 일본 자본이라고 해서 무조건 백안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않다”고 말했다.

일본 대부업체의 성장으로 인한 부작용도 적지 않다. 이들 업체들은 500만원 이하의 소액 대출을 주로 한다. 대출 금리도 일반 사채업자에 비해서는 싸다고 하지만 일반 대출의 경우 월8.1%로 일반 은행 금리의 거의 10배에 달하는 고금리를 받고 있다.


국내은행서 돈 빌려 고리로 대부

일본 대금업체들이 서민에게 대출해준 운영 자금의 절반은 은행이나 신용금고 캐피탈 같은 국내 금융기관들로 부터 차입한 것이다.

이들은 국내 금융기관에서 연간 16% 내외의 금리로 빌린뒤 이것을 다시 서민에게 대부하는 고리대금업을 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일본계 5개 대금업체들이 올들어 국내 은행에서 차입한 금액만 1,900억원에 달한다.

일본계 대금업체들의 차입 절차와 방식도 문제다. 현재 국내 금고업법의 동일인 여신한도 규정에 따르면 자기자본금의 20% 이상을 동일인에게 대출해 줄 수 없도록 돼 있다.

그런데 상당수 일본계 대금업체들은 자금을 차입하기 위해 문어발식으로 계열사를 확장하고 있다. 한 예로 일본계인 A대금업체는 자본금이 50억원인 S신용금고에서 10억원 이상을 빌리지 못한다.

이런 규정을 피하기 위해 A사는 1억원을 출자해 B대금업체를 만들고, B사는 또 1억원을 출자해 C를 설립한 뒤각사가 대출을 받는 것이다. 이럴 경우 A, B, C사는 S신용금고로부터 총 30억원을 빌릴 수 있게 된다.

현재 국내에서 영업중인 일본계 대금업체들은 각기 다른 일본의 사금융업체들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금감원이 최근 조사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국내에서 영업중인 6대 일본계 선도 대금업체들이 사실상 모두 동일 계열사인 것으로 밝혀졌다.

동일인 여신한도 규정을 피하기 위해 편법을 쓰고 있는 것이다.

서민들의 피해도 적잖게 나타나고있다. 주부 서모(37)씨는 지난해 일본계 대금업체로부터 300만원을 빌렸다가 큰 곤욕을 치렀다.

서씨는 친정 부모의 해외 여행 경비를 마련하려고 고민 끝에 남편 몰래 신용카드로 현금 서비스를 받았다. 그런데 카드 결제 일에 돈을 갚지 못한 서씨는 시댁 식구들에게 알려지는게 싫어 일본계 대금업체에서 돈을 빌려 카드 빚을 메웠다.

그리고 두 달째 지나던 어느 날 서씨는 급전을 당겨 쓴 사실이 남편과 시댁 식구들에게 들통나고 말았다. 서씨가 일주일이 지나도록 이자를 갚지 않자 대금업체가 납입을 종용하려고 전화를 했는데 시어머니가 전화를 받았던 것이다. 서씨는 이일로 남편과 시댁 식구들로부터 원망을 들었다.

일본 대금업체들은 폭력적인 수단은 쓰지 않지만 이자나 원금 회수를 위해 갖가지 방법을 동원한다. 마땅한 채권 추심 수단이 없는 대금업체들은 주로 이자 납기일 3, 4일전부터 전화를 걸어 주위를 환기시키는 방법을 쓰고 있다.

당사자가 연락이 안될 경우에는 신상명세서가 적혀 있는 가족이나 친척들에게까지 무차별적으로 돈을 갚을 것을 요구한다.

A&O인터내셔널의 박진욱사장은 “주로 소액 무담보 대출이기때문에 고객에 대한 법적 조치보다는 영업사원들이 납기일 3~4일 전부터 수시로 전화를 걸어 사전 통보하는 방식으로 대손율을 줄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일본계 대금업체들은 180일이상 연체하는 경우 대손으로 잡는데 2000년 3%대였던 대손율이 지난해에는 5%대로 다소 높아졌다. 박 사장은 “대손율을 얼마나 낮추냐가 관건이기 때문에 보다 철저한 신용평가 방법을연구 중에 있다”고 말했다.


국내업자들 자구책 마련에 분주

일본계 대금업체들의 이 같은 공세에 위기를 느낀 국내 사채업자들이 최근 자구책 마련에 나섰다. 130여개 사채업자들로 구성된 한국대부사업자연합회(한대련)는 1월 25일 첫 세미나를 갖고 대금업법의 국회 통과, 사금융업의 양성화, 공동 출자한 연합지주회사 창설을 통한 제도권 진출 등의 청사진을 밝혔다.

이들은 점차 확산되는 일본계 대금업체들에 맞서 기존과 다른 서비스로 국내 사금융업계를 지켜가겠다는 결의를 다졌다.

이들 중 다수가 국회에 계류중인 대부업법이 시행되면 이자 제한을 받는 대신 세금 혜택을 받는 1종으로 정식 영업을 개시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있다.

일본계 대금업체들은 국내에서 ‘금융회사를 가장한 고리 사채업자’라는 비난과 ‘선진 소비자 금융 기법을 전파 시킨 전도사’라는 서로 상반된 평가를 받고 있다. 분명한 것은 배울 부분은 제대로 배워야 한다는 점이다. 우리 사채업자와 정책 당국에게 해당되는 말이다.

송영웅 주간한국부 기자

입력시간 2002/02/07 14:12


송영웅 주간한국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