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물과 불, 상극의 대격돌…운명의 5국

이창호의 '미완성의 승리- V100'(34)

이세돌은 3남2녀 형제들 중의 막내다. 누나둘은 모두 이화여대 국문과 출신으로 큰 누나 상희는 미혼인 채 집안과 동생들을 이끄는 리더이고, 둘째 누나 세나는 아마 바둑계의 강자로 활발히 뛰고 있다.

서울대 컴퓨터공학과 3년 생인 둘째 형 차돌은 집안의 '미드필더'같은 존재. 본래는 차돌이를 바둑을 시키려고 했다고 한다. 여기에 상훈, 세돌 형제가 프로기사로 가문을 빛내고 있다. 구성원들이 모두 프로페셔널리즘에 투철한 가족이다.

형제애라면 이창호 집안도 이세돌 쪽 못지 않다. 패션 디자이너인 형 광호, 사업 준비중인 동생 영호 등 3형제가 모두 연년생.

특히 중국통인 영호는 97년 이창호의 중국 원정 때 ‘수행’, 좋은 성적을 올린 것을 계기로 5년째 뗄 수 없는 ‘매니저’ 역할을 맡고 있다.

운명의 5국. 이제는 모든 것을 잊고 한판에 임해야한다. 그러나 어찌 사람의 기억력이 그렇게 나쁠 수 있는가. 아마도 평생 잊지 못할 바둑이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다. 무릇 이 한판에 2억5,000만원이 걸려 있다.

신세기 초입 세상을 들끓게 했던 이창호―이세돌의 쟁기(爭棋)가 기어이 최종국까지 왔다. 이세돌의 서브가 우상귀 깊숙한 화점에 떨어지면서 역사적 대결 개시. 숨이 막힐 것 같아 대국실을 벗어나 봤지만 검토실 분위기라고 별반 다를 게 없다. 검토실은 대국개시 이전인데도 발 디딜 틈이 없을 지경이다.

기질상 이창호가 물이라면 이세돌은 불이다. 불길을 잡는 것은 물이지만 화마(火魔)가 거셀 때는 물로도 어쩌지 못한다. 이번 5번기 내내 이세돌의 줄기찬 도발은 때론 이창호의 거대한 성채를 전소시켰고, 또 때로는 냉정 침착한 이창호에 의해 무참히 진화되곤 했다. 두 사람의 이 상극적 관계는 앞으로 평생을 두고 꾸준히 이어질 것이다.

돌을 가리니 이세돌의 흑차례. 이창호의 동생 영호가 아직 부산한 검토실에서 어두운 표정으로 서성이고 있다. 대국 개시 직후, 전주에 거주하는 아버지로부터 “누가 흑이 나왔느냐”는 전화가 왔었다고 한다. 덤이 6집 반으로 늘었건만 대다수 기사들은 여전히 흑을 선호하고 승률도 좋다.

중국식 포진을 들고 나오는 이세돌. 그러나 이창호는 즉각 걸쳐가기 보다는 느슨하게 옆에서 걸쳐서 바둑을 온건하게 이끈다.

그리고 흑을 갈라가도록 유도한 다음 거대한 흑집에 돌멩이 하나를 던진다. 알뜰하게 다 살아있는 모습이고 처진 날일자로 걸쳐간 방금그 ‘돌멩이’ 하나만 덩그러니 미생인 채로 남아있다.

이세돌의 불같은 공격력을 의식한 이창호는 비록 옹졸하지만 자신의 방식대로 싸우기로 했다. 그러나 싸움을 걸어오는 데야 안싸울 도리가 없다.

결국은 처진 날일자로부터 전투가 발발한다. 이창호는 또 ‘피를 부르는 전투’는 피하고 귀살이를 성공하며 사이드 스텝으로 피하고 본다. 그렇다면 흑의 세력과 백의 세력이 충돌하는 대세점이 남았는데 이세돌이 장고를 해댄다. 장고의 내용은 무얼까.

그가 20분쯤 지나서 들고 나온 수는 일선에 뛰어서 차단하는 수. 본래 이런 수는 집 가치가 형편없어서 맨 나중에 두곤 하는 수이다.

그러나 양쪽을 가르며 나온 한 수는 계속 공격을 엿본다는 뜻이긴 하지만 대세점은 외면한 수다. 그 대세점이 어려운 곳이냐 하면결코 그렇지 않다. 이세돌도 물론 알고는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이창호는 ‘별걸 다 물어보시네’ 하며 대세점인 천왕봉 같은 곳을 두고야 만다.

[뉴스화제]



●한국 여류, 세계대회 첫 우승

한국여류가 드디어 세계정상에 올라섰다. 호작배에서 한국대표로 출전한 윤영선 2단, 박지은 3단이 모두 결승에 진출, 우승을 예약했다.

중국 광둥(廣東)성 장먼(江門)시 동후(東湖)호텔에서 열린 제1회 호작배 세계여자바둑선수권대회 준결승전에서 윤 2단과 박 3단이 각각 한국에서 입단한 타이완의 장정핑(張正平) 초단과 창하오(常昊)의 부인인 중국의 장쉔(張旋) 8단을 꺾고 결승에 진출하는 쾌거를 이뤘다.

이로써 한국여류가 준우승 3번의불운 끝에 여류세계정상에 올랐다. 한편 여류최강 루이나이웨이(芮乃偉)는 일신상의 사정으로 불참했다.

격년제로 개최되는 호작배는 중국바둑협회, 장먼시 인민정부, 다창지앙(大長江) 그룹이 공동주최하며, 우승상금은 9만위안(한화 약1,400만원). 결승전은 오는 3월에 치러질 예정이다.

진재호 바둑평론가

입력시간 2002/02/19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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