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풍향계] 부시에, 稅風에…거센 미국 바람

이번 주는 아무래도 부시 정국이다. 한미 관계의 특수성상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의 방한과 한미 정상회담은 외교 차원에만 머물지 않고 국내 정치에 미치는 파장이 심대하다.

부시 대통령은 20일 정상회담에 이어 21일 다음 방문지인 중국으로 떠났지만 정상회담의 여운은 한동안 정국에 진하게 감돌 것이며 12월 대선까지도 영향을 미칠 개연성이 높다.

부시의 방한은 특히 그의 ‘악의 축’ 발언 때문에 정치적 의미가 한층 증폭됐다. 북한을 이라크 이란과 함께 묶어 세계평화를 위협하는 악의 축으로 규정한 이 발언은 부시 대통령 방한 전부터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의 방미행적과 관련해 치열한 정치공방 거리가 돼 왔다.

한반도를 전쟁위기로 몰고 갈 수도 있는 폭발성을 지닌 이 발언의 배경에 이 총재가 방미 중 미국보수주의자들을 부추긴 것이 작용하지 않았느냐는 논란이 그 공방의 핵심이다. 이회창 총재가 부시 대통령의 악의 축 발언에 동의(endorse)했다는 워싱턴 포스트지 보도가 이 논란에 불을 붙였다.


‘악의 축’이 부른 남남갈등, 대선쟁점으로 비화될 듯

민주당은 이 총재가 한반도 긴장완화와 평화분위기 조성이라는 민족적 명제를 외면하고 미국 조야의 강경파의 논리에 호응하고 부추겼다며 방미 중 주요인사 면담록 공개를 요구해왔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은 정부여당이 햇볕정책의 실패를 호도하기 위해 야당총재의 외교활동을 고의적으로 왜곡하고 있으며 반미감정을 자극하고 남남갈등을 조장하는 위험한 불장난을 하고 있다고 받아쳤다.

이 공방은 이번 부시 대통령의 방한과 한미정상회담결과로 다시 변주되면서 증폭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 공방은 DJ가 의욕적으로 추진해온 대북 햇볕정책의 공과 논쟁과 맞물리면서 12월 대선의 주요 쟁점이 될 것이 분명해 보인다.

부시 대통령의 방한 며칠 앞서 미국에 도피 중인 세풍사건의 주역 이석희 전 국세청차장이 미 FBI에 체포된 것도 부시 방한과 맞물려 미묘한 여운을 남기며 정치적 공방거리로 부상했다. 이씨가 국내로 송환돼 검찰이 세풍사건 재수사에 들어갈 경우 이회창 총재에게는 상당한 부담이 될 수 있다.

세풍사건의 핵심은 1997년 대선 당시 국세청 차장이었던 이씨가 국가 징세권을 이용해 기업으로부터 불법자금을 모아 이회창 후보 진영에 전달했느냐의 여부다. 검찰조사에서 이씨가 166억원의 불법자금을 모아 한나라당 대선자금으로 제공한 부분은 이미 드러나 있다.

문제는 이 과정에 이회창 총재가 얼마나 관련돼 있느냐다. 검찰은 당시 이석희씨와 서상목 의원, 이총재의 동생 회성씨 등 경기고 동문 3인방이 세풍을 기획ㆍ집행했다고 결론을 내렸으며 여기에 이 총재가 상당부분 간여돼 있다는 심증을 굳혔으나 이씨가 미국으로 도피하는 바람에 물증을 확보하지 못했다.

이석희씨가 송환된 뒤 재개될 검찰조사에서 이 총재의 세풍 관련사실이 드러나면 이 총재는 심각한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이회창 총재는 “과거 우리 당 소속의원 한 분(서상목 전 의원)이 이 사건과 관련돼 국민에게 사과한 바 있다”면서 “그러나 당 총재나 지도부가 불법적으로 연관된 부분은 없는 만큼 정치적으로 음해해선 안될 것”이라고 쐐기를 박았다.


다시 불거진 세풍공방, 야당선 ‘기획체포’ 의혹 제기

세풍 공방은 18일 있었던 국회 정치분야 대정부 질문에서도 격렬하게 벌어졌다. 한나라당은 여권이 이석희씨의 거주지를 알고 있다가 부시 방한에 맞춰 미 FBI에 알려 체포토록 한 것 아니냐며 ‘기획체포’ 의혹을 제기했다.

한나라당 홍준표의원은 미국이 부시 방한에 맞춰 이씨를 체포, 한국의 여당에 선물을 주고 F-15 전투기 판매와 바터를 하려한 의혹이 있다는 음모설을 제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한나라당은 나아가 김대중 대통령의 세 아들 등 친인척 비리를 집중 거론하면서 반격을 시도했다.

이에 민주당 송석찬 의원은 이 총재의 장남이 외국 금융기관에 근무하면서 수 백 억원의 정치자금을 조성했다는 의혹으로 맞받아쳤다.

결국 대정부 질문은 야당 의원들의 집단퇴장으로 답변이 중단되는 등 파행을 겪었다.

이석희씨의 송환시기도 세풍사건 공방의 중요한 포인트다. 미국의 법원이 어떤 결론을 내릴지, 또 이씨의 불복으로 인한 상급심 심의 등 모든 절차를 거치기까지는 많게는 5~6개월이 걸릴 수도 있다. 따라서 세풍공방이 반짝하다가 당분간은 잠복할 개연성이 높아 보인다.

이계성 정치부 차장

입력시간 2002/02/19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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