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 선거시대] 인터넷 파워가 當落 쥐락펴락

네티즌 표심잡기 '불꽃' 사이버 홍보전

언론 통제가 삼엄하던 1980년대까지 국내 선거전은 주로 조직력을 키우거나 홍보 전단(傳單)을 돌리는 게 고작이었다.

그러다 1990년대들어 언론에 대한 족쇄가 풀리면서 신문이 대선이나 총선에서 여론몰이를 주도하기 시작했다. 92년 대통령선거 때에는 모신문사를 가리켜 ‘대통령을 만드는 신문’이라는 말이 나돌기도 했다.

97년대선에서 TV 토론회가 처음 도입되면서 선거 홍보전의 주요 변수로 방송이 급부상 했다. 당시 경기 지사에 불과했던 무명의 이인제 후보가 일약 주목을 받게 된 것도 TV 토론회에서의 달변이 크게 작용했다.

그렇다면 지방선거(6월), 국회의원재보선(8월), 대통령선거(12월)가 몰려 있는 ‘선거의 해’인 올해 선거전의 변수는 무엇이 될까. 대다수 전문가들은 서슴지 않고 인터넷을 첫 손 꼽는다. 이번 선거는 무한대로 펼쳐져 있는 사이버 선거 홍보전에서 누가 이니셔티브를 잡느냐에 따라 당락이 갈릴 것이라는 데 이견이없다.


"2,500만 네티즌을 잡아라"

인터넷이 우리 사회에서 차지하고 있는 비중은 굳이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다. 현재 국내 인터넷 인구는 2,500만명으로 전체 유권자 3,348만여명의 4분의 3에 달한다. 일반기업들은 말할 것도 없고, 초등학생들 조차 홈페이지를 만들어 운영할 정도다.

개인 e메일은 전화나 편지에 버금가는 대중적인 통신 수단으로 자리잡았다. 신문이나 방송을 통해 간접 정보만 접할 수 있었던 사람이 이제는 간단한 마우스 클릭으로 언제 어디서든 쉽게 원하는 정보를 얻는다. 이제네티즌들이 각 후보에 대한 개별 정보는 물론이고, 여론의 향방도 인터넷을 통해 쉽게 얻을 수 있게 됐다.

앞으로 선거에서 인터넷이 주요 변수로 작용할 것이라는 근거 중의 하나는 젊은 유권자의 표심을 잡을 수 있다는 점이다.

최근 선거에서 20~30대 유권자들은 정치권에 대한 무관심과 개인여가를 즐기려는 욕구로 투표를 기피한 것으로 나타났다. 97년 대선에서 20대 투표율은 전체 평균(80.7%) 보다 훨씬 낮은 68.2%에 불과했다.

하지만 현재 20~30대 유권자의 수는 전체 유권자의 절반이 넘는 1,700만여명에 달한다. 지난번 대선이 39만여표 차이로 당락이 결정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20~30대 유권자들의 투표율이 조금만 높아져도 당락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얘기다.

20~30대 유권자들의 60% 이상은 하루 1~2시간 이상 컴퓨터 앞에서 시간을 보내는 ‘열성파’ 네티즌들이다. 사이버 선거전은 바로 이런 네티즌 유권자들의 표심을 끌어 모을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 되고 있는 것이다.

네티즌이라는 이름으로 무장한 이들 젊은 유권자들은 후보의 정보를 알아보는 수준을 넘어 스스로 정보를 창출하고 여론을 형성한다는 점에서 더욱 파급력이 커질 것이 분명하다. 전문가들은 그간 무관심으로 일관하던 젊은 유권자들이 사이버 상에서 선거 운동과 여론형성에 적극 참여하게 될 것이고, 이로 인해 선거 판도 변화를 주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 보고 있다.


사이버 위력 실감한 4·13총선

사이버 선거전의 위력은 2000년 4ㆍ13 총선에서 상당 부분 검증된 바 있다. 당시 800여개 단체들이 참가한 총선시민연대는 인터넷을 주활동 무대로 삼아 낙선자로 지목한 후보자중 68.6%를 떨어뜨리는 놀라운 성과를 거두었다.

네티즌 활동이 활발한 수도권의 낙선률은 무려 95%에 달했다. 또한 386세대 의원들의 광주 술집사건을 세상에 처음 폭로한 매체도 다름 아닌 인터넷 신문이었다. 이제 네티즌들 스스로가 만드는 인터넷 매체의 힘은 그 어느 매체에 못지 않게 막강해졌다.

사이버 선거전이 가장 큰 효과를 낼 것으로 보이는 선거는 6월에 있을 지방선거다. 그 동안 지방선거는 대선이나 총선에 비해 투표율이 매우 저조했다. 기초단체장과 기초의원, 광역자치단체장과광역의원 등 4개 분야에 출마한 후보자들을 모두 파악하기가 힘들어 어쩔 수 없이 기권을 하는 유권자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광역시의 경우 한 선거구의 기초 단체장과 기초의원에 출마한 후보자만도 10여명이 넘기 때문에 선관위가 배포한 선거 전단지를 보관해 두지 않으면 후보자의 면면을 파악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사이버 선거전의 보급으로 후보자들에 대한 정보를 몰라 기권하는 사례는 거의 사라질 것이다.

앞으로 선관위는 인터넷에 각 후보자의 사진, 소속 정당, 기호, 그리고 간략한 신상 명세 등의 정보를 일괄적으로 올려 놓을 계획이다. 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후보자들도 개인 홈페이지에 각종 홍보 정보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에 유권자들은 투표 바로 직전까지 언제든 후보자에 대한 각종 정보를 파악할 수 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각 후보들 사이버 표심을 잡기 경쟁은 벌써부터 뜨겁게 달아올라 있다. 각 당의 대선 후보 캠프는 개인 홈페이지는 물론이고 팬클럽 사이트까지 별도로 만들어 민심 수렴, 정책 홍보, 활동 소개, 질의 및 답변, 인터넷 정치자금 모금, 사이버 후원회 결성 등 다양한 홍보 전략을 펼치고 있다.

야권에서는 한나라당 이회창총재가 개인 홈페이지(www.leehc.com)인 ‘창사랑’을 운영 중에 있다. 이 총재 젊은 유권자들의 표심을 잡기 위해 플래시애니메이션 코너까지 마련해 각종 정보를 제공한다.


민심수렴·후보 업적 홍보 등 다양한 활용

대선 후보 경선을 준비중인 민주당경선 주자들의 사이버 홍보전도 치열하다. 노무현 고문은 오래 전부터 연극인 명계남씨를 회장으로 영입, 공식 홈페이지(www.knowhow.or.kr)외에 ‘노사모(www.nosamo.org)’를 운영하고 있다.

노 고문은 노사모를 통해 화상 채팅으로 민심을 수렴하고, 국민 경선 신청서 지원을 받는 등 다양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정동영 고문은 TV 앵커 출신답게 인터넷 방송국을방불케 하는 홈페이지(www.dy21.or.kr)를 운영하고 있다. 16일 제주도 출마 선언을 인터넷 생중계하는 등 홈페이지의 대부분을 화려한 동영상으로 꾸며 놓고 있다.

이인제 고문은 홈페이지(www.ijnet.or.kr) 접속률이 노무현 고문이 비해 떨어지자 최근 대화방을 신설하고 IJ매거진을 코너를 신설하는 등 대대적인 개선 작업을 벌였다. 현재 이인제 사랑모임(www.iloveij.net)이라는 팬클럽도 운영중이다.

김근태 고문도 GT클럽(www.gtcamp.or.kr)이라는 홈페이지를 통해 국민 선거인단 지원자와 후원회를 모집 중이다.

한화갑 고문도 기존 의원 홈페이지(www.hhk21.com)를 선거용으로 전환하는 작업을 마쳤다. 현재 ‘한사람2002’(www.hansaram2002.org)라는 팬클럽도 운영하고 있다.

김중권고문은 홈페이지(www.okjk.org)에 젊은 층에게 인기를 끌고 있는 사이버캐릭터 ‘아바타 채팅 코너’를 신설, 유권자에게 다가 가고 있다. 유종근 전북지사도 자신의 기사 강연 논문 출판 내용을 담은 홈페이지(www.youjk.com)을 개설, 사이버 홍보전에 뛰어들었다.

국회의원과 각 정당들도 인터넷 홍보에공을 들이고 있다. 민주당과 한나라당은 최근 5~6명의 인원을 사이버 홍보 부서에 전담 배치, 여론을 수렴하고 정책을 홍보하는 창구로 이용하고 있다.

현역 의원들 사이에서도 홈페이지 운영 붐이 일어 99년 80여개에 불과했던 현역 의원 홈페이지가 2년만에 224개로 3배나 증가했다. 이밖에 지방선거에 출마를 고려하고 있는 예비 후보자들도 자신의 홈페이지를 만들어 간접적으로 홍보전을 펼치고 있다.

서강대 손호철 교수(정치학과)는“예전에는 조직력이 선거 판도를 좌우 했지만 이번 선거에서는 매스 미디어, 특히 인터넷을 통한 사이버 선거전이 주요 변수가 될 것”이라며 “인터넷은 선거 비용 절감 효과 외에도 네티즌들의 선거 참여를 유도하는데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송영웅 주간한국부 기자

입력시간 2002/02/19 19:41


송영웅 주간한국부 herosong@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