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호의 경제서평] 구조개혁의 최대 걸림돌은 정치

■경제학으로 풀어 본 일본 정치
(이호리 도시이로 지음/ 권선주 옮김/ FKI미디어 펴냄)

얼마 전 폐막된 세계경제포럼에서 세계 경제를 위협하는 가장 큰 요인은 일본 경제라는 점에서 참가자들의 의견이 일치했다. 10년 전만해도 세계 최고라는 찬사를 받았던 일본 경제가왜 이렇게 됐을까.

일본 자신도 스스로 문제점을 잘 알고 있는데 왜 고치지 못하는 것일까. 문제는 정치에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경제구조조정에 정치가 깊숙이 개입함으로써 개혁은 ‘말로만 하는 것’에 그쳤다. 정부가 지난 10년 간 11차례나 부양책을 썼지만 거의 효과가 없었던 것은 이 때문이다.

이 책은 경제학의 방법론을 일본의 정치 현상에 적용ㆍ분석한 것이다. 제목 그대로 일본 정치를 경제학으로 풀어 본 것이다. 공공 경제학, 재정학이 전공인 도쿄대 교수이지만 일본의 정치 문제는 사실 문외한이라고 ‘고백’한 저자가 이 책을 쓴 이유는 이렇단다.

경기 대책, 예산 편성, 세제 개혁, 재정 재건, 금융파산 처리, 연금 개혁, 지방분권 등 경제정책을논의할 때 일본의 현실을 고려할수록 정치적 의사결정 과정과의 관계가 중시된다.

또 정치학자나 매스컴에 의한 정치개혁 논의가 형식적인 민주주의 외관논쟁에 그쳐 유권자 개인의 이기적 이해를 반영하는 행동까지 포함하는 논의가 되지 못하는 데에 대한 경제학자로서 불만이 있다.

그리고 1999년 경제구조개혁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동시에 당면 경기대책의 필요성을 배려하고 있는 경제전략회의의 최종 보고서가 나왔다. 이러한 양면 작전에서 제대로 구조개혁이 실현될 수 있을지 일본 정치 환경 하에서 의문시된다.

이 같은 문제 의식을 가지고 일본정치 현상을 하나하나 뜯어봤다. 유권자들은 왜 기권을 하고, 기권은 반드시 나쁜 것인가. 정치가와 정당은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 것인가. 압력단체들은 어떤 이득과 대가를 챙기나.

건전 재정 회복은 왜 지연되나. 금융 및 연금제도 등 주요 구조조정은 왜 지지부진 한가. 기득권층은 어떻게 유지되나. 지방분권이 부진한 이유는 무엇인가 등에 대해 구체적인 사례를 대상으로 이론적인 분석을 하고 있다.

이 책이 특히 우리의 관심을 끄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일본과 우리나라는 비슷한 점이 많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비록 이웃나라 사례를 분석한 것이지만, 방법론은 물론 그 주제들도 우리나라 정치 현실에 적용이 가능하다는 데서 많은 시사점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창원대 경제학과 교수인 번역자의 말이다. 추천사를 쓴 최광 외국어대 교수는 한 발 더 나갔다.

우리나라의 경우 정치학자들에 의한 투표행위 및 정당활동에 대한 분석은 다소 있으나 정치와 경제의 상호작용에 대한 체계적 연구가 거의 없는 상황에서 이 번역서의 발간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고 밝혔다.

몇 가지를 살펴보자. 미래 세대는 현재 시점에서 투표권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현재 유권자에게 불리한 개혁은 뒤로 미루어지고, 그 결과가 재정적자의 확대나 현안 처리의 이월이라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일본 금융의 구조조정이 안 되는 이유는 간단하다. “은행이 방만 경영을 해 파산해도 구제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신뢰할 수 없는 위협이기 때문이다.

‘망하게 놔둔다’는 것은 겁 주기 위한 ‘협박’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은행 파산으로 인한 손해를 정부나 정치권이 감당할수가 없기 때문이다. 연금 개혁도 마찬가지다. 지금까지 일본 경제ㆍ정치ㆍ사회가 어느 정도 성공하였던 만큼 그 개혁의 대상인 기득권익도 커졌다.

이것이 90년대 들어와서부터 구조개혁을 어렵게 하고 있다. 연립정권의 단점도 무시 못한다. ‘총론 찬성, 각론 반대’의 행동이 지배적이 되고 강력한 정책이 실시되지 못한다.

특히 현 유권자에 대한 부담이 증가하고 있는 재정적자를 축소하기 위한 증세나, 압력단체의 기득권을 훼손하는 보조금의 삭감정책은 실시되지 못한다.

이상의 것들을 우리의 경우와 비교하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번역자와 추천자의 이야기가 맞는 것인가. 독자들이 판단할 몫이다.

저자는 책 마지막에서 ‘개혁의 방법은 있는가’라고 묻고 있다. 그는 정치가의 자금및 재산, 정책, 선거 등 세 가지 정보 공개와 지방선출 국회의원 기득권 삭감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선거제도의 개혁 등을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진짜’ 결론은 유권자의 의식 혁명이라고 저자는 강조하고 있다. 아무리 경제학적 틀을 통해 정치를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해도 결국은 사람이다. 국민이 깨어있어야 정치도, 경제도 잘 되는 법이다.

입력시간 2002/02/19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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