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상무' 간질환은 업무상 재해

산업재해 인정범위 확대, 사고 발생장소 등 논란도 여전

IMF 외환위기 이후 구조조저오가 바람이 거세게 몰아치던 1998년말 대우전자의 영업조직인 H유통 직원으로 근무하던 유모씨.

당시 대우전자와 삼성자동차의 빅딜등이 발표되면서 판매량이 급감하자 그는 실직에 대한 불안과 스트레스에 시달려야 했다. 이 때문에 그는 살아남기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과로를 하면서 영업을 하러 다니다 다음해인 99년 2월 급성 신부전증으로 숨졌다.

유씨가 숨지자 부인 정모씨가 "남편이 급성 신부전증으로 숨진 것은 실직으 불안감속에서 스트레스와 과로에 시달렸기 때문이었다"며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산업재해로 인정해줄 것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지나해 11월 22일 유씨의 주장을 받아들여 원고 승소 판결했다.


과로·스트레스 재해 소송서 원고승소

지난해 12월7일데도 주목할만한 판결 하나가 나왔다. 과로와 스트레스에 으한 변비도 산업재해로 인정된 것이다. 경찰관 남편이 과로와 스트레스로 변비가 악화돼 장이 막히는 장폐색으로 숨졌다며 이모씨가 낸 소송에서 법원이 이씨의 손을 들어주었다.

당시 재판부는 "고인이 교통사고조사반과 파출소에 근무하면서 과다한 업무로 피로와 스트레스가 쌓이고 식사시간을 제대로 지키지 못해 변비를 갖게 됐다"며 "과로와 스트레스로 변비가 장폐색으로 급격히 악화돼 숨진것으로 볼 수 있다"고 밝혔다.

이씨의 남편은 교통사고조사반, 파출소 부소장으로 근무하면서 하루 평균 18시간 이상의 과중한 업무에 시달려왔다.

이처럼 업무상 재해로 불리는 산업재해는 법원에 의해 폭넓게 인정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같은 판례에 발맞춰 노동부도 산업재해의 인정범위를 계속 넓혀가고 있는 추세다. 산업의 세분화되고 근로자들의 권리 의식이 강화되면서 산업재해로 인정되는 사례들도 더욱 다양해지고 늘어나고 있는셈이다.

산업재해란 노동과정에서 작업환경 또는 작업행동 등 업무상의 사유로 발생하는 근로자의 신체적·정신적 피해를 총칭한다고 할 수 있다. 근로기준법에서는 무엇이 산업재해인지에 대한 정의가 없지만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는 업무상의 사유에 의한 근로자의 부상·질병·신체장애 또는 사망으로 규정하고 있다.

업무상 사유란 것을 보다 구체적으로 보면 업무수행성과 업무기인성 등 2가지 요건이 결합하여 발생한다고 할 수 있다. 업무수행성이란 근로자가 사용자의 지배·관리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그 업무에 부수해서 기대되는 행위도 포함된다.

즉 작업중은 물론 작업준비중, 작업종료 전후에 업무와 관련된 것도 포함된다는 의미다.

업무기인성이란 업무상의 행동, 작업내용 또는 작업환경과 재해간에 상당한 인과관계가 인정되는 것을 말한다.

이를 기준으로 할 때 운전조수가 바람에 모자가 날아가 모자를 주우려다 다른차량에 치어 숨진 경우는 산업재해로 인정된다. 모자를 줍는 행위가 업무중에 이뤄졌으며 업무와 관련이 있다고 인정한 것이다.

반면 경비원이 경비근무중 대기실에서 휴식을 취하다 사망한 경우는 산업재해로 인정받지 못한다. 근무시간이었는데도 대기실에서 쉬고 있어 업무수행성을 제대로 인정받기도 어렵고 사망원인이 업무와 연관되어 있다고 보기도 힘들기 때문이다.

산업재해란 이처럼 개별 사안마다 상황에 따라 많은 차이가나 법원에서 최종 판단을 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작업시간 외에 발생한 사고를 놓고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사업주가 관리하고 있는 시설(차량 장비 등을 포함)의 결함이나 사업주의 시설관리 소홀로 인해 재해가 발생한 경우 그 재해가 작업시간 외의 시간중에 발생한 때에도 본인의 자해행위나 사업주의 구체적인 지시 위반사항이 안 경우 산업재해로 인정받게 된다.

일과 후 동료 근로자들과 함께 화투놀이를 하다가 공사장 계단에서 추락사고를 당한 경우는 산업재해로 인정을 받는다. 일과 후라 하더라도 공사장이라는 사업장인데가 계단에 안전 장치 등이 안돼 발생한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반면 퇴근중 회사 정문앞에서 발생한 재해는 산업재해로 인정되지 않는다. 퇴근길이었기 때문에 작업중이 아니었고 정문앞은 사업장일 아니기 때문이다.


만성피로증후군도 산업재해

그러나 전반적으로 산업재해를 인정해주는 범위가 넓어지는 추세다.

뚜렷한 원인질환없이 극심한 피로가 6개월이상 지속되면서 정신질환까지 초래하는 '만성피로증후군(Chronic Fatigue Syndrome)'도 산업재해로 인정됐으며, 과로·스트레스와 관련된 질병의 인과관계가 명확하지 않을 경우 산업재해를 관장하는 근로복지공단측이 다른 발병 원인을 입증하지 못할 경우도 산업재해로 봐야 한다는 판결가지 나온 상태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이 사회보장제도라는 점을 고려해 업무상 재해 범위를 폭넓게 인정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노동부도 올 상반기중 관련법 개정을 통해서 속칭 '술 상무'처럼 술을 접대하거나 업무, 취재 등의 이유로 술을 많이 마실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간(肝)질환에 걸릴 경우 산업재해로 인정하기로 했다.

산업재해로 인정될 수 있는 요건이 엄격히 제한돼 있는 '업무상 과로사'도 사인이 불분명하더라도 과중한 업무에 따른 것으로 판단되면 산재보상 혜택을 줄 방침이다.

전통적인 농경사회였던 우리나라에서 산업재해 문제가 대되는 것은 19세기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외국과의 문호개방 이후 광업과 소규모 제조업을 중시으로 산업화가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미약하나마 이 같은 문제가 대된 것이다.

업무상 재해에 대한 보상문제가 공식 거론된 것은 일제 치하인 1938년 조선광업령 개정시 조선광부 부조규칙을 공포, 광산 근로자들의 업무상 재해에 대한 법적 부조 기준이 마련됐다.

그러나 해방을 맞으면서 업무상 재해의 보상에 관한 제도적 장치는 마련되지 못한다. 1948년 제정된 헌법에도 관계법령이 제정되지 않고 노사간의 단체협약에 의해 근로자의 재해보상이 이루어지도록 했다.

한국전쟁중인 1953년 5월 근로자의 업무상 재해에 대해 개별 사용자의 과실책임을 명시한 재해보상제도를 규정하고 있는 근로기준법이 공포됐으나 사용자가 이 법을 성실하게 지키지 않은데다 대형사고 발생시 비용부담의 과중으로 기업체가 도산하는 사태가 발생하는 경우도 있어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결국 1963년 사용자가 연대하여 책임을 분담하는 강제 사회보험 형태로 오늘날의 산업재해보상보험 제도가 마련돼 이듬해인 64년7월1일부터 실시됐다.

그러나 당초에는 산업재해가 많이 발생하는 광업과 제조업으로 한정했으며 65년도에는 전기가스업과 운수보관업 등으로 계속 확대되다 89년에는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받는 사업에서 모든 사업 또는 사업장에 적용하도록 법이 제정됐다.

제2의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정이라고 불리는 법 개정으로 2000년 7월부터는 현행법에서는 근로자를 사용하는 모든 사업이 적용범위가 됐다.


산재보험 1인 이상 전 사업장으로 확대

산재보험이 적용되는 사업장 규모도 64년 500인 이상에서, 65년 200인 이상, 87년에는 5인 이상으로 줄어들었으며 2000년부터는 1인 이상 전 사업장으로 확대됐다.

산재보험이 적용되는 사업장도 65년 289개에서 35년 뒤인 2000년에는 70만6,231개 사업장으로 2,400배 이상 늘어났고 적용 근로자수도 65년 16만1,150명에서 2000년에는 948만5,557명으로 58배정도 늘어났다.

공식 집계가 이뤄진 86년 52만6,921건에 2,147억원에 달했던 산재보험금 지급건수와 지급액도 2000년에는 98만2,753건에 1조4,563억원으로 늘어났다.

입력시간 2002/02/26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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