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아쇠 건 미국 '후세인 정조준'

이라크 공격 군사작전 계획 마무리 단계, 쿠데타 공작 등도 병행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악의 축’ 발언 이후 미국의 다음 군사 작전 목표물로 떠오른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대통령 제거 시나리오가 서서히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미국은 특히 부시 대통령의 한ㆍ중ㆍ일 순방 등을 통해 이라크와 함께 ‘악의 축’으로 지목한 북한ㆍ 이란과의 전쟁은 배제, 후세인 축출을 위한 명분쌓기와 ‘전쟁마스터 플랜’ 완성에 전념하고 있다.

미국은 ‘악의 축’ 발언에 대한 국제 사회의 비난에도 불구, “이라크에 대해 독자 행동에 나설 수 있다”며 이라크를 겨냥한 ‘조준’을 풀지 않고 있다.

워싱턴 타임스는 22일 이와 관련, 미국이 부시 대통령 임기 내에 후세인 정권을 전복시키기로 했으며 구체적인 ‘시기와 방법’을 놓고 막바지 조율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신문에 따르면 국방부와 중앙정보국(CIA) 등은 부시의 지난달 29일 ‘악의 축’ 언급 이후 수 차례 회의를 통해 이견을 해소했으며, 후세인 제거 시한을 부시의 임기인 2005년 1월까지로 설정했다.

군사작전의 시간표는 완성되지 않았지만 대규모 공습을 포함한 군사 행동과 반대 세력 지원 등을 통한 정권 교체라는 CIA 주도의 비밀 공작 전략은 마무리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라크는 북한, 이란과 다르다

미국은 “북한과 이란은 테러지원 혐의가 없는데다 대화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이라크와는 전혀 다르다”는 등의 비난이 끊이지 않자 3국간 ‘차별성’을 인정하고 있다.

콜린 파월 국무부 장관도 “북한ㆍ이란과는 전쟁을 벌일 계획이 없다”면서도 “매우 심각한 우려를 자아내는 후세인 정권은 반드시 제거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부시의 발언에 대해 “모든 국제관계를 테러와의 전쟁으로 귀결시킨 단순화의 극치” 라며 비난해 온 유럽의 지도자들도 이라크는 그리두둔하지 않고 있다.

요슈카 피셔 독일 외무부 장관은 “후세인을 보호하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다”면서 “유엔무기사찰단이 이라크에 아무 제한없이 접근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게 긴장을 피하는 유일한 길 ”이라고 말해 미국의 입장에 일부 동조했다.

백악관 참모들은 부시 대통령이 다음 대통령 선거에서 재선된다는 보장이 없는데다 민주당 정권이 집권하면 테러와의 전쟁이 후퇴할 수 있다는 점을 들어 “이라크를 임기내 끝장내기로 결심했다”고전했다.


명분쌓기 주력

미국은 후세인 정권이 대량살상무기 등을 보유한데다 핵무기 도입 의지를 꺾지 않고 있어 매우 위협적인 존재라면서 정권 교체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논리는 전혀 새로운 게 아니고, 구체적 증거도 제시되지 않아 아프가니스탄 전쟁의 최대 동맹국인 영국 조차 지지를 꺼리고 있다.

미국은 또 지난해 9ㆍ11 테러 직후 국방부내에 알 카에다와 바그다드의 연계여부를 파악하기 위한 특별전담팀을 구성, ‘연결 고리’ 찾기에 혈안이 돼있으나,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하고 있다. 이 팀이 만약 연결 고리를 포착한다면 미국은 나름의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지만, 아프간 전쟁때 보다는 명분이 크게 떨어진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미국은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가 이스라엘과 싸우고 있는 테러집단에 전달되면 중동은 불바다가 될 수 밖에 없다는 ‘현실’만으로도 정당성이 충분하다는 입장이다.

미국은 일단 이라크의 유엔 무기사찰 수용 거부를 활용, 후세인 축출을 위한 1단계 조치로 이라크의 생화학ㆍ핵무기, 탄도 미사일 해체와 사찰 허용을 요구하는 등 외교적 노력을 부각하고 있다. 동시에 유엔 안전보장이 사회에서 이라크에 대한 미국의 새 제재안이 논의되는 5월까지 군사 행동의 명분을 쌓기 위해 ‘사찰위기’ 국면을 최대한 고조시키는 전략을 쓸 전망이다.

워싱턴 정가에 5월 이라크 공격설이 떠도는 것도 사찰 문제를 놓고 미국과 이라크의 갈등이 이 시기 최고조에 달할 수 있다는 분석을 깔고 있다.


국방부는 ‘아프간 모델’선호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부 장관의 브레인들은 전쟁이 불가피할 경우 탈레반 정권과 알 카에다를 축출한 ‘아프간 모델’을 이라크에도 적용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반대 세력인 북부동맹을 활용한 ‘대리전’과 대규모 공습에 이은 특수부대 투입이 특징인 아프간 전쟁은 미군 피해를 최소화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라크는 아프간과 달리 40만명의 정예 부대와 첨단 방공망을 갖추고 있어 전쟁을 치르기 위해서는 3~4개 사단에 최대 20만명의 병력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처럼 대규모 병력 배치를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고, 평균 40도를 웃도는 걸프 지역 여름을 감안할 때 작전 개시 시점은 가을 이후라는 주장도 있다.

또 군사 작전을 위해서는 사우디 아라비아와 터키 등의 지원이 결정적 변수지만 이들 국가는 1991년의 걸프전 때와는 달리 매우 민감한 입장이다.

사우디는 걸프전 때처럼 자국 영토에 미군이 상륙하는 데 반대하고 있으며, 터키도 군사작전이 이라크 북부 쿠르드족 반군의 독립을 부추기지 않을 까 우려하고 있다. 딕 체니 부통령이 3월 중순 사우디와 이스라엘 등 중동 12개국을 순방, 실질적인 군사작전 지원 문제를 논의할 예정이지만 성과는 미지수다.

한편 후세인은 미국이 오히려 ‘악의 축’이라고 역공을 취하는 가 하면 “이라크 국민을 위해 파괴적인 공습을 당하느니 미국에 의해 타도되는 게 낫다”고 말했다. 또 정권 교체론은 미국이 걸핏하면 내세우는 낡은 슬로건이라며 애써 외면하고 있다.


CIA는 비밀 공작 강조

조지 테닛 CIA 국장은 부시에게 “CIA는 후세인 정권이 동요할 정도의 작전을 수행할 수 있으며 군사 쿠데타도 조장할 수 있다”고 보고했다. 테닛 국장은 앞서 최근 예멘과 이집트, 사우디를 극비 방문, 비밀 공작을 위한 사전 정지 작업을 벌였다.

미국은 또 이라크의 주요 반정부 단체인 ‘이라크 민족회의(INC)’에 대해 향후 3개월 단위로 240만 달러를 제공키로 약속하는 등 ‘작전’을 노골화하고 있다.

그러나 후세인에게는 아프간의 북부동맹 처럼 미국이 기대해 볼 만한 ‘내부의 적’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게 CIA의 한계다.

전문가들은 “미국 정부는 동맹국들의 반대가 더 이상 군사 작전의 장애물이 되지 않는다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다”면서 “미국은 아프간 모델과 전면전, 비밀공작 등이 모두 망라돼 최고의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방안 찾기에 몰두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종수 국제부 기자

입력시간 2002/02/28 11:34


이종수 국제부 j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