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의 도박] 박근혜탈당과 정계 대개편

“국익을 우선하는 정당이 있다면 누구와도 같이 하겠다. 여성 대통령은 세계적 추세다. 여성이 정치하면 오히려 깨끗한 정치를 할 수 있다.”

박근혜 한나라당 부총재가 2월 28일 탈당을 선언함으로써 그 동안 민주당과 한나라당의 양당대결로 좁혀지던 16대 대선구도가 크게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특히 TK(대구ㆍ경북)지역을 중심으로 물밑에서 꿈틀거려온 ‘영남 후보론’과 ‘반(反) 이회창 세력결집론’, ‘제 3후보론’이 박 의원의 탈당을 계기로 ‘정치개혁 신당’ 창당 등 급속한 정계 개편을 촉발하는 기폭제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정치신인의 고단수 전략 ‘치산치수(治山治水)’

박근혜 부총재의 전격적인 한나라당 탈당 선언 배경을 놓고 일부에서는 이미 정계 개편을 위한 준비된 모종의 시나리오가 짜여져 있었다는 의혹의 시각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박 의원의 ‘탈당’은 이미 한나라당 비주류 내부에선 어느 정도 예견해온 수순이었다. 지난 연말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출마를 선언했던 박 의원은 정당 개혁이란 기치아래 국민 경선제와 집단지도체제 도입 등을 매몰차게 요구하며 “당 개혁요구를 수용하지 않으면 이회창 총재도 개혁의 대상이 될 것”이라며 ‘강공 드라이브’를 걸어왔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 6월 지방선거와 8월 국회의원 재보선결과를 보지 않고 일정을 앞당겨 탈당을 결행한 것은 결국 정계 개편을 염두에 둔 행보로 해석할 수 밖에 없다.

박 의원은 “들러리나 서는 경선이라면 나갈 생각이 없다”며 “지금 같은 단일 지배체제에선 결코 당에 머물 명분도 실리도 없다”는 판단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다시 말하면 대권 경쟁을 할 바에야 기존 한나라당의 짜여진 구도 속에서 ‘도로 포장에 매달리기 보단 나무를 심고 산을 정비하는 외곽 다지기를 하는 편이 오히려 장기적 포석에서 유리하다는 ‘치산치수’의 지혜를 택한 셈이다.

박 의원은 탈당선언에서 “국민이 원하는 정치를 거부한 채 어떻게 든 집권만 하겠다는 기회주의적 생각에 더 이상 동참할 수 없어 탈당을 결심했다”며 “내게 차기니 차차기니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으나 그건 중요하지 않다”는 명분론을 오히려 앞세웠다.

박 의원이 시기를 앞당겨 조기탈당의 결단을 내리기까지는 깊은 고뇌의 과정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박 의원은 지난 주 지역구인 대구 달성을 방문하기 앞서 10여 일간 자택에 칩거하며 향후 거취를 놓고 후원회장인 남덕우 전 총리와 오랜 연을 가진 3공화국 인사 등 지인들의 자문을 통해 숙고를 거듭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탈당 선언 바로 전 날 밤 늦게 직접 회견문을 작성하는 등 박 의원 스스로가 장고 끝에 최종 결정을 내린 것으로 박 의원 측근들은 전한다.

탈당선언 D-데이를 28일로 정한 것 역시 지역구인 대구 달성 주민의 의견을 수렴하고, 당 전당대회 준비 기구인 선택 2002년 준비위원회의 경선방안이 확정되는 2월 28일까지 인내하는 모습을 보이기 위한 제스처로 해석된다.

하지만 박 의원측은 어떠한 모종의 계획을 갖고 탈당의 결행했을 것이라는 일부의 시각에 대해 펄쩍 뛰며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

한 측근은 “당내에서 자리를 지키며 정당개혁 요구를 통해 총재를 압박하는 편이 한층 유리할 수 있겠지만 자신이 옳다고 판단이 서면 저울질 하지 않는 것이 그분의 태생적 성격”이라며 박 의원 사무실 가운데 액자에 걸린 ‘만사여의(萬事如意)’의 의미를 거듭 강조했다.


감이 익을 때를 기다린다

박 의원은 “당분간 무소속으로 남겠다”고 밝혔지만 조만간 외연 확대를 위한 ‘정치개혁 신당’ 창당의 고리 역할에 나설 것이라는 것이 정계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특별한 대외 활동 없이 지난 주말 서울 삼성동 자택에서 여론과 정치권 동향을 예의 주시해온 박 의원은 늦어도 이 달 중순부터는 서서히 자신의 입장정리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단기필마(單騎匹馬)의 한계를 극복, 지지기반을 넓히고 본격적인 정계개편에 대비한 자신의 브랜드 이미지 제고를위해 대외적 활동도 잇따를 계획이다.

4월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열리는 한반도 문제 관련 국제세미나 기조연설 참석할 예정인 박 의원은 글로리아아로요 필리핀 대통령과 동남아지역 정치 지도자들과 회동 등을 통해 국제적 이미지를 쌓는 방안도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무소속으로 행동이 자유스러워진 만큼 조만간 김영삼 전 대통령과 김종필 자민련 총재, 김윤환 민국당 대표, 정몽준 의원(무소속), 이수성 전 총리 등 정치권 안팎의 주요 인사들과의 정치ㆍ정서적 조율도 잇따를 전망이다.

박 의원과의 ‘연대’ 대상자 리스트에는 정몽준 의원이 우선 순위로 꼽힌다. 정 의원은 이미 지난해말 박 의원을 포함시키는 신당 창당 의사를 피력했고 정 의원과의 제휴는 신당의 영남권 영향력 강화는 물론 창당 자금문제까지 패키지로 따라올 조합이라는점에서 설득력을 얻고 있다.

또 ‘영남 후보론’ 주창자인 김윤환 민국당 대표 역시 ‘킹 메이커’로 연대 대상 리스트에서 빼놓을수 없는 인물로 꼽힌다. 평소 영남에서 박 의원의 파괴력을 높이 평가해 온 그는 박 의원에게 먼저 손을 내밀 가능성이 제일 높은 것으로 예상된다.


YSㆍJP와 연대 땐 정계 지각변동

그러나 박 의원의 독자행보의 성패를 좌우할 최대 관건은 역시 김영삼 전 대통령과 김종필 자민련 총재로 압축된다. 이들 모두 박 의원과의 협력 가능성을 열어놓은 상태로 두 김씨가 합세한다면 지각변동에 가까운 판세 변화가 일어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김 전 대통령은 이미 “대선구도가 이대로는 가지 않을 것”이라며 영남후보 등장의 필요성을 역설해왔고, 이는 박 의원을 염두에 둔 것이라는 관측이 높았다.

김 전 대통령 측근인 박종웅 의원은 “박 의원이 ‘기회가 닿으면 YS를 뵙고 싶다’는 뜻을 전해왔다”면서 “조만간 두 사람이 만날 것”임을 암시해 대화의 분위기가 성숙될 시기만을 기다리는 강한 인상을 풍겼다.

정계 개편의 돌파구를 오매불망 기다려온 김종필 총재도 박 부총재와의 정서적 공감대는 누구보다 깊은편이다. 김 총재는 박 의원의 탈당선언 이후 “언제든지 만나 상의할 수 있다”는 즉각적인 반응을 보였다.

정우택 자민련 정책위의장은 “박 의원이 영남 신당을 추진, 자민련과의 고리를 만든다면 내각제가 필연적으로 등장할 것”이며 “특히 ‘반 이회창 연대’의 우산 속으로 들어간다면 자민련과의 고리를 만들 가능성은 한층 높아진다”고 속내를 내비쳤다.

그러나 박 의원의 홀로서기에는 처음부터 만만찮은 걸림돌이 기다리고 있다. 정계의 엄격한 ‘자질 검증’절차가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야당은 현재로선 자제하고 있지만 언제든 ‘제2의 이인제’로 몰아붙이며 ‘거품빼기’에 나설 태세다.

박 의원이 이 같은 험로를 어떻게 헤쳐나가느냐에 따라 독자 노선의 향배도 잘라질 것으로 보인다. 박 의원의 한 측근은 “당분간 정치권의 기류변화를 지켜보며 외곽 다지기에 전력을 기울인 뒤 6월 지방선거 이후부터 본격적인 행보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박근혜의 힘은 아버지의 후광?

지난해 말 의원회관 대강당에서 열린 한나라당 K의원 후원회. K의원의 지역구민 1,000 여명이 참석했는데 이들은 대부분 40ㆍ50대 여성들인 ‘아줌마’였다.

이날 행사에서 이회창 총재와 박근혜 부총재가 차례로 인사말을 했고 사회를 본 한 여당의원은 이 총재를 소개할 때 장황한 미사어구를 동원, 참석자들의 박수를 유도했다. 이 총재의 축사가 끝나자 사회자는 “박근혜 부총재의 인사말이 있겠다”고 간단히 소개했다.

박 의원이 등장하자 참석자들은 환호와 갈채는 물론 비명까지 질러댔다. 일부 챀석자들은 박 의원의 얼굴을 보기 위해 연단 앞으로 몰려나오기도 했다. 이 총재에 대한 반응과는 대조적으로 자발적인 열광의 환호가 봇물을 이뤘다.

정치인으로 보다는 자연인 박근혜에 대한 대중의 정서적인 접근이 한마디로 그가 지닌 최대의 강점인 셈이다.

박 의원의 저력은 대중을 사로잡는 묘한 호소력에서부터 비롯된다. 군중을 휘어잡는 연설과는 거리가 먼나직한 음성과 또박또박한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군중을 열광하게 만드는 저력의 실체다.

또 아버지의 후광이 본인의 색채를 드러낼 틈조차 주지않을 만큼 대중들로 하여금 정서적 공감대를 이루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우리 사회에 신화처럼 번진 ‘박정희 신드롬’이 그의 분신격인 박 의원에 대한 관심과 지지로 표출되고 있기 때문이다.

1997년 대선에서도 그 저력은 유감없이 발휘됐다. 대선 8일전인 12월 10일 이회창 후보 지지를 공개 선언한 박 의원은 선대위 고문 자격으로 TV 찬조연설과 지방유세에 참여했다. 14일 첫 방영된 TV연설은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한나라당은 16일 이례적으로 재방송을 결정했다.

울산과 대전에서 정당연설회 역시 청중들의 열광은 대단했다. 또 98년 4월 대구 달성 지역구 국회의원 재보선출마에서도 민주당 엄삼탁씨와 접전 예상을 뒤엎고 24.4% 차이로 압승, 정계 진입 5개월 만에 금배지를 달았다.

이 같은 분위기는 박 의원의 탈당 선언 이후에도 큰 흔들림이 없어 보인다. 대구 지역구 관계자들은“어떤 결정을 내리더라도 박 의원의 결정에 따를 것” 이라는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는 등 정서적 공감대는 견고해 향후 정치권의 기류 변화에 따라서는 ‘영남권 후보론’의 최우선 기수로 떠오를 가능성이 한층 높아지고 있다.

장학만 주간한국부 기자

입력시간 2002/03/06 17:24


장학만 주간한국부 local@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