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딩크호는 아직도 실험중?

월드컵 개막 코앞, 골 결정력 부재·포지션 확정 등 해결과제 산적

2001년 1월12일. 한국축구대표팀의 월드컵 16강 진출의 과업을 떠안은 거스 히딩크(56) 감독이 한국 선수들과 처음으로 마주섰다.

첫 대면장에서 그가 던진 말은 “느낌이 좋다(good feeling)”였다. 그러나 출범 14개월, 월드컵 개막이 90일도채 남지 않은 현재의 민심은 불안하다. 과연 히딩크 사단은 ‘미완의 가능성’을 완성형으로 만들수 있을 것인가.

3월은 히딩크 감독이 마지막 승부수를 띄워야 하는 달이다. 3월5일 출국하는 대표팀은 스페인에 베이스 캠프를 차린 뒤 튀니지(13일) 핀란드(20일) 터키(27일)와 잇따라 평가전을 갖는다. 실전과 함께 강도 높은 훈련을 병행할 수 있는 긴 전지훈련 동안 한국대표팀은 어떤 모습으로 변모할까.

또 히딩크 감독이 풀어야 할 과제는 무엇일까.


옥석 가리기 마지막 기회

히딩크 감독의 공약대로 이번 전지훈련을 통해 베스트 멤버가 사실상 확정될 것으로 보인다. 히딩크 감독은 이미 ‘90%는 이미 확정, 10%는 유동적’이라고 말해 왔다.

10%의 열려 있는 가능성을 놓고 선수들의 생존경쟁이 치열할 전망이다. 이용수 축구협회 기술위원장은“베스트 멤버가 점점 좁혀지고 있는 중이며 이번 전지훈련은 선수들의 경쟁과 긴장이 한층 증폭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까지 베스트 후보로 히딩크 감독의 마음 속에 확실하게 도장을 찍은 선수는 황선홍(34ㆍ가시와) 유상철(31ㆍ가시와) 설기현(23ㆍ안더레흐트) 송종국(23ㆍ부산) 최성용(27ㆍ수원) 최태욱(21ㆍ안양) 이천수(21ㆍ울산)등 7명 정도. 황선홍 설기현으로 굳어진 공격수보다는 미드필더와 수비라인 후보들의 치열한 경쟁이 불 보듯 뻔하다.

테스트 기간 1년 동안 대표팀을 들락거린 선수만 60여명. 한국은 3월 말 베스트멤버를 확정해 16강 진출의 열쇠인 조직력을 극대화 할 계획이다.


별자리는 계속 바뀔까

히딩크 감독에게 첫 골을 선물한 선수는 고종수. 지난 해 1월24일 홍콩에서 열린 칼스버그컵 대회 노르웨이전에서 였다.

고종수는 한동안 히딩크 사단의 뜨는 별로 자리잡았으나 컨페더레이션스컵에서의 부진과 이후 부상이 겹치면서 대표팀에서 멀어져 갔다. 히딩크 사단 최다 득점자(5골)인 김도훈도 한때 우등생 반열에 올랐지만 이번 골드컵 등에서의 부진으로 낙제하고 말았다.

이제 관심은 홍명보(33ㆍ포항) 윤정환(29ㆍ세레소) 안정환(26ㆍ페루자)이뜰지, 아니면 완전히 질지의 여부이다. 부상도 이유였지만 히딩크 감독으로부터 수비 능력을 지적 받았던 홍명보는 약 8개월여만의 대표팀에 복귀했다.

홍명보가 베테랑 선수의 필요성이라는 경기 외적인 필요성에 의해 살아 남을지 아니면 그라운드 내에서 확고하게 제자리를 차지할지 큰 관심이다.

윤정환은 플레이메이커로 테스트를 받게 된다. 히딩크 감독의 지적 사항이었던 체력과 수비가담 능력 등에서 합격점을 받아야 한다. 안정환 역시 여론과 기술위원회의 의견을 등에 업고 탈락 4일만에 대표팀에 합류했지만 생존을 자신할 수 없다.


포지션 전문화

지난 13개월 동안 히딩크 감독의 ‘만능선수론’에 따라 대표 선수 대부분은 골키퍼를 빼고 포지션을 넘나들었다.

대표적인 ‘팔색조’ 선수가 유상철, 송종국, 박지성(21ㆍ교토) 등이었다. 유상철은 최전방 공격수, 공격ㆍ수비형 미드필더, 중앙수비수 등 공격과 허리, 수비 등 모든 위치를 망라했다.

송종국도 윙백, 수비ㆍ공격형 미드필더, 중앙수비수 등을 두루 테스트 받은 ‘팔색조’다. 히딩크 감독의 만능 선수론은 타당성 논란을 야기했던 부분.

다양한 위치를 소화해낼 수 있는 유럽 선수들과 달리 한국은 하나의 포지션이라도 제대로 수행하는 게 중요하다는 게 반대론의 핵심이었다. 베스트 멤버 선정으로 큰 틀을 잡게 될 히딩크 감독이 주전들의 포지션을 전문화할 것인지도 이번 유럽 전지훈련의 관전 포인트이다.


골 없이 16강 어림없다

북중미 골드컵을 통해 대표팀의 가장 큰 문제로 등장한 부분이 골 결정력이다. 히딩크 사단은 지금까지 총 24차례 경기에서 26골을 기록했다. 한 경기 평균 골은 1.08개.

98년 프랑스월드컵 때 2라운드(16강) 진출국의 조 예선 평균득점은 2.0골. 94년 미국대회 때는 1.46골이었고 90년 이탈리아 대회 당시에는 1.56골이었다. 그렇다고 실점(34점)이 적은 것도 아니기 때문에 한국의 16강 진출은 수치상으로는 낙관적이지 않다.

선수 개개인의 슈팅능력도 문제이지만 세트 플레이 등 골을 만들어내는 과정을 시급히 개선해야 할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골잡이들의 마무리 능력 부족 등도 총체적으로 도마에 오른다.

문제는 골을 작전으로만 해결할 수 없다는 점이다. 히딩크 감독이 ‘킬러 본능(killer instinct)’을 말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번 전지훈련에서 히딩크 감독이 한국축구의 고질병인 골 결정력 문제를 어느 정도 치유할수 있을지 관심이다.


기술위원회와 히딩크의 힘겨루기

히딩크 감독은 올해 들어 새로운 ‘장애물’을 만났다. 바로 이용수 위원장으로 대표되는 축구협회 기술위원회. 이 위원장은 북중미 골드컵 당시 히딩크 감독이 여자친구를 훈련지에 동행한 데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이성교제가 훨씬 개방적이라고는 하지만 서양에서도 일터에 여자친구나 부인을 데려오는 일은 흔치 않은 일인 데다 장기간 ‘독수공방’하는 선수들에게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히딩크 감독은 북중미 골드컵을 마치고 우루과이로 떠나면서 흑인 여자친구와 ‘생이별’을 했지만 지난 달 20일 국가대표 유니폼 발표회장에 다시 동행해 건재를 과시했다. 히딩크 감독의 고집으로 보아 언제다시 터질지 모르는 뇌관이다.

산드로(22ㆍ수원 삼성)의 귀화 추진 문제는 기술위원회와 히딩크 감독의 엇박자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다.

이용수 위원장의 ‘16강 강박관념’에 대해 히딩크 감독은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고 결국 별다른 실익 없이 백지화 됐다. 기술위와 히딩크 감독이 ‘따로논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줬다는 점은 의미가 있었다고 해야 할까.

윤정환의 발탁과 안정환이 탈락 4일만에 구제된 것 모두 기술위원회의 작품이다. 히딩크 감독의 본심과는 동떨어진 추천이었다. 자칫 선수들이 기술위와 히딩크 감독의 신경전 제물이 될 수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김정호 체육부 기자

입력시간 2002/03/06 19:26


김정호 체육부 azur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