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와 오늘] 새 정치를 기대한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장녀 박근혜(50) 의원이 조국을 위해서라며 한나라당을 탈당했고, 한나라당 사무총장 출신이며 부총재인 강삼재 의원(50ㆍ전 경희대 학생회장)은 당직을 사퇴했다.

부총재이며 YS 때 정무장관을 역임한 김덕룡 의원(61ㆍ전 서울대 학생회장)은 “중대 결심을 곧 밝히겠다”며 탈당을 시사했고, 재야에서 새 천년 민주당 의원이 된 김근태 상임고문(55ㆍ민청 1ㆍ2대 의장)은 불법정치 자금에 대한 고해성 발언을 했다.

네 의원들의 발언을 들으며 앞으로 대선까지 박정희-김영삼-김대중이란 한국정치의 세 기둥을 뒤따르는 차세대 대통령 후보군들의 비슷한 발언이 잇따를 것으로 보인다.

이런 때에 1990년대 빌 클린턴의 시대가 열리기 전후에 폭로 전문 언론인으로 우파의 선봉에 섰던 데이빗 브로크(39ㆍ버클리대 출신. 워싱턴 타임스 기자)가 2월 말 출간한 ‘우파에 눈이 멀어- 한 전 보수주의자의 양심’이란 회고록이 떠오른다.

미국과 한국의 정치 문화가 크게 달라 브로크와 네 의원을 엄밀하게 상대 비교할 수는 없지만 이들이 워싱턴과 서울의 정가에 모습을 나타냈을 당시에는 상당한 인기와 관심을 끌었다.

그러나 이들은 최근 참회, 고해, 중대결심, 변신, 변환 같은 놀랄만한 발언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등장했을 당시보다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네 의원의 등장시기에 대해 새삼 다룰 생각은 없다.

브로크는 1986년 버클리대를 졸업하고 워싱턴에 갔다. 버클리에 있을 때 대학 신문이며 지역신문인 데일리 캘리포니아의 기자였던 그는 니카라과에 반군을 돕는 것을 반대하는 좌경적인 버클리대 분위기에 반발해 반공 성향이 강한 청년 공화 보수주의자가 된다.

그는 자신의 논조를 싫어하는 신문 편집위원회에 맞서 기자직을 계속했고, 자신을 우파라고 선언했다.

그가 워싱턴에 왔을 때 도널드 레이건을 지지하는 신 보수주의자들은 니카라과 개입에 반대하는 민주당을 상대로 신보수주의, 반공주의를 내세우며 이를 지지하는 변호사, 재벌, 통일교의 문선명 교주 등과 함께 보수주의 연합을 구성하기 시작했다. 그는 통일교가 인수한 워싱턴 타임스의 주간지 인사이트의 기자로 일했다.

그는 조지 부시 대통령 때인 1991년 대법원 판사에 임명된 토마스 클러런스 판사를 성 추행 혐의로 고발한 아니타 힐스의 상원 청문회를 취재하면서 필명을 얻기 시작했다. 낙태, 인종차별 문제에 보수적인 시각이 뚜렷한 흑인 고등법원 판사출신인 클러런스를 좌파와 자유 및 진보주의자들은 힐스를 내세워 ‘성희롱자’'여성차별자'로 몰아붙이며 그의 인격을 스캔들화 한 것이다.

브로크는 클러런스를 지지하는 보수 변호사들의 조언을 들으며 담배 및 금융재벌인 리차드 메론 스케이프가 수백만 달러를 지원하는 월간 ‘아메리카 스펙테이터'에 힐스를 탐사보도하기 시작했다. 그는 그녀를 ‘광기어린 헤픈 여자'라고 추적 보도했다.

클러런스는 상원의 승인을 받았고 브로크가 낸 '아니타 힐스의 진실'은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아메리카 스펙터이터는 10만부에서 30만부로 부수가 급증했고 브로크의 연봉은 12만5,000 달러가 됐다.

이어 닥친 클린턴 정부와 공화당 보수 연합과의 대결은 스캔들 정국을 가져왔다. 클린턴의 여색과 힐러리의 물욕과 명예에 대한 도전과 응전이었다.

브로크는 시카고 금융업자 피터 스미스의 후원으로 아칸소주 리틀록에 가서 클린턴의 주지사 시절 경호원이었던 사람들로부터 클린턴의 여성 행각을 추적 했다. 또 한번 ‘스펙테이터’는 부수를 늘렸고 폴라 존스의 이름이 처음으로 그를 통해 미국과 세계에 알려졌다.

그러나 브로크 말고도 숫한 탐사 기자와 스캔들 추적 기자들이 클린턴 부부를 뒤져도 클린턴의 인기는 여전했다. 클린턴은 공화당의 좌파, 민주당의 중간에서 사회보장제도, 작은정부, 경제우선 정책으로 중산층을 탄탄한 지지기반으로 확보해 재선에 성공했다.

브로크는 클린턴이 1996년 재선되기 직전 ‘클린턴 힐러리의 속임수’라는 책을 냈다. 힐러리를 범죄자로 만들기 위한 내용이다. 그러나 정작 공화당의 우파 변호사와 그를 후원했던 재벌들을 “이건 힐러리를 변호하는 책이다.

브로크는 보수의 코트를 자유주의자의 정장으로 바꿨다”고 평했다. 브로크는 ‘우파에 눈이 멀어’에서 참회하고 있다. “나는 거짓말쟁이다. 나는 대통령 인격 살해자다. 나는 변신자다. 나는 공화당의 공격수였다. 나는 외롭고 정신이 찢어진 인간이다. 잘못된 언론관을 실천한 자이며 끔찍한 놈이다."

그러나 그의 참회록 곳곳에서 그의 신보수주의에 대한 저항이나 그 실체를 밝히겠다는 의지는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그를 채용했던 한 잡지 사주는 “그는 항상 발행인이 무엇을 바라는지를 알고 있었고, 무엇을 출판하면 돈이 되는지도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브로크의 참회록은 미국에서 그다지 인기를 끌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험한 정치 환경을 딛고 선 네 의원들이 브로크의 경우와는 달리 중대 변신하면서 대권에만 연연하지 말고 국민적 여망인 새로운 정치를 펼쳐 보이겠다는 의지와 뼈를 깎는 자성도 함께 하기를 기대해 본다.

박용배 언론인

입력시간 2002/03/12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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