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대의 한의학 산책] 황토의 효능

지표면의 약 10% 정도를 덮고 있는 황토는 주로 반 건조 지역에 분포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황토는 중국 대륙에서 수십만 년을 날아온 황사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예로부터 황토는 살아 있는 생명체라 하여 엄청난 약성을 가진 무병장수의 흙으로 사용되어 왔습니다.

황토 한 스푼에 약 2억 마리 미생물이 살고 있어 다양한 효소들이 황토 안에서 순환작용을 하고 있지요. 황토의 효소에는 카탈라아제, 디페놀 옥시다아제, 사카라제, 프로테아제의 4 가지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효소들은 각각 독소 제거, 분해, 정화 작용을 합니다.

그러나 가장 큰 효능은 황토에서 발생하는 원적외선입니다. 이 원적외선은 세포의 생리작용을 활발히 하고 열에너지를 방출시키면서 체온을 높이는 작용을 하여 인체의 모세혈관을 확장하고 혈액순환을 활성화하면서 신진대사를 강화, 조직 재생력을 증가시키며 성장촉진에 현저한 효과를 보인다고 합니다. 그래서 원적외선을 생명광선, 또는 생육광선이라고 부릅니다.

아내와 나는 징검다리 휴일에 가까운 친지의 소개로 지리산 자락에 있는 찜질 황토방에 다녀왔습니다. 친지는 우연한 기회에 찜질을 하면서 심신이 쇄락(灑落)한 기운을 느낀 뒤로 황토방의 주인 못지 않게 황토 전도사가 되어서 현대 생활에 찌든 주위 사람들에게 언제나 황토 찜질을 권하곤 합니다. 게다가 오는 길 가는 길에 섬진강의 여정을 느낄 수가 있으니 일석이조라고 하지 뭡니까.

황토방 찜질은 먼저 목욕을 간단히 합니다. 그리고 찜질방에 들어가 땀을 뺀 후 몸을 식히고 다시 찜질방에 들어가는 일을 세 차례 반복합니다. 그 사이 아내와 나는 주인이 마련해 놓은 녹차를 마시며 대금 소리에 취하여 창 너머 지리산의 풍광도 바라봅니다.

흐르는 땀을 닦으며 황토 냄새에 취하다 보니 도시 생활에 웃음을 잃었던 입매와 굳어 있던 어깨 근육이 자연스럽게 풀립니다. 절대로 남이 훔쳐보지 못하게 빗장을 치고 또 쳐 두었던 영혼의 상처들도 어느새 흔적 없이 사라지는 듯 느껴지기도 합니다.

왜 이런 여유를 잊고 살았는지 옆에 앉아 있는 아내를 쳐다보면 병원을 운영하랴 자식 교육에 뛰어 다니랴 여러 가지 역할과 의무에 지친 아내도 소녀처럼 뺨을 발그레 빛내며 땀에 젖어 촉촉한 머리털을 귀밑으로 흘러 제치는데 무척이나 젊고 아름답게 보입니다.

이러다 보니 황토 찜질방의 효과는 일석이조가 아니라 일석삼조, 사조가 될 판입니다.땀을 내기를 세 차례 마치고 귀경하기 위하여 몸을 씻으려고 자리에 일어서는 우리에게 찜질방 주인은 땀을 씻지 말고 그대로 가시라고 간곡하게 만류를 합니다.

그래야만 황토찜질의 효과가 있다는 거죠. 피부도 좋아지고 땀 냄새도 나지 않는다고 호언을 합니다. 주인은 황토의 효능에 대하여 나름대로 자신이 있는 듯 했습니다.

황토의 원적외선을 쪼이고 난 후 땀을 많이 방출하고 나면 인체에서는 각종 유독성 물질과 노페물 및 중금속류가 배출되고, 혈관의 혈전을 분해하여 혈액순환이 활발해질 것입니다.

그러면 혈액이 맑아지고 pH가 상승하여 체질이 알칼리성으로 개선하는 효과를 가져옵니다. 주인의 만류가 완강하여 우리는 목욕을 하지 못하고 어쩐지 개운치 못한 기분으로 서울로 향했지만 어느덧 몸은 보송보송 해지면서 과연 피부가 반짝반짝 윤이 났습니다.

한의학에서는 오래 전부터 질병 치료에 황토를 응용해왔습니다. 흙에서 만물이 생한다(土生萬物)하여 흙을 매우 중요시해 왔습니다. 명나라의 어떤 의가(醫家)는 흙을 61종류로 분류하여 각각의 주된 치료작용과 사용방법에 대하여 기록했습니다.

거기를 살펴보면, “모든 흙은 몸 안의 노폐물을 원활히 배출해 주고 비위의 기능을 도와준다(諸土皆能勝濕補裨)”고 하였으며 내복약뿐 아니라 외용약으로도 사용한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동의보감에는 황토탕(黃土湯)이라 하여 황토를 주된 약(君藥)으로 하고 숙지황이나 백출 등을 넣어서 대변에 피가 나오는 증상을 치료한다고 나와 있습니다. 실제 임상에서도 ‘오래된 가마 밑의 아궁이 바닥의 누런 흙’을 복룡간(伏龍肝)이라고 하여 여러 가지 질환에 사용합니다.

약이 될 수가 있는 물의 종류에 지장수라는 것이 있습니다. 지장수란 누런 흙물을 말하는데 그냥 흙탕물이 아니라 양질의 황토에 물을 붓고 골고루 저은 후 조금 있다가 맑은 윗물을 마십니다. 동의보감에도 독버섯에 중독된 경우에 지장수가 아니면 해독할 수가 없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각종 중금속에 노출하기 쉬운 현대인에게 지장수는 좋은 음용수가 될 것입니다.

신현대 경희의료원 한방병원장

입력시간 2002/03/12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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