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이 돼서도 집회에 나올거야'

일본군 위안부출신 할머니들의 한맺힌 절규, 수요집회 500회

“일본 정부야, 국민기금 철회해라! 우리를 두 번 다시 죽이려 하지 마라!”

13일 정오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 수요일이면 어김 없이 나타나 시위를 해온 일본군 위안부 출신 할머니들은 한 맺힌 절규를 토해냈다.

노환과 온갖 질병에 시달리는 노구를 이끌고 이날 집회에 참석한 황금주(82) 할머니 등은 일본대사관을 향해 “이 놈들아! 십년이면 강산도 변하는 데 언제까지 귀를 틀어막고 있을 셈이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세계 역사상 유례없는 최장 집회기록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ㆍ상임대표 지은희ㆍ池銀姬)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촉구하며 매주 수요일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어온 정기 ‘수요집회’가 이날로 500회. 만 10년을 넘어 햇수로 11년째를 맞는 국내 최장 집회 기록이다.

“일본 정부가 잘못했다고 무릎을 꿇어야 해. 그렇지 않으면 여기 있는 할머니들 모두가 세상을 떠나더라도 귀신이 되서라도 수요집회에 나올 거야 .”10여명의 할머니들은 마지막 유언이라도 하듯 말했다.

깊게 패인 눈가 주름을 따라 흘러내리는 할머니들의 눈물에 높은 철문과 담장에 둘러싸인 일본대사관은 언제나 그랬듯 모든 창문에 블라인드를 내린 채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았다.

“기자양반, 노인네 사진만 자꾸 찍어가면 뭐해. 일본 정부가 아시아평화기금인가 하는 꼭두각시를 내세워 우리한테 돈 몇 푼 주고 입을 틀어 막으려 하고 있어. 좀 신문에 크게 내봐.”할머니들은 “한국 정부는 일본의 ‘국민기금’에 대한 반대입장을 명확히 표명하라”고 촉구하며 벽창호 같은 일본 정부뿐 아니라 언론과 정부의 무관심에 대해 서운함을 감추지 않았다.

일본정부는 5년 전 민간차원에서 ‘여성을 위한 아시아 평화 국민기금’을 구성, 위로금 형식으로 수천만원을 할머니들에게 제공하겠다고 나섰지만 할머니들은 “돈으로 우리의 명예를 더럽히는 것”이라며 위로금을 받기를 거부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일본 정부는 위로금 제공시한을 올 1월10일에서 5월1일로 연장했다.

“일본대사관을 테러 하는 것도 아니고 힘겨운 싸움을 하는 할머니들 손을 잡아드리려는 데 왜 막는 겁니까.” 할머니들이 집회를 하고 있는 일본대사관에서 50여㎙ 떨어진 곳에서는 ‘할머니 지킴이’발대식에 참석하려던 대학생과 시민 100여명이 대한민국 전투경찰의 방패장막에 가로막혀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이날 할머니들과 시민단체 회원들이 한 마음으로 외친 주장은 10년 전 첫 집회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일본 정부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공식 사죄하고, 법적 배상하라!”

첫 수요집회가 열린 것은 1992년 1월8일. 미야자와 기이치(宮澤喜一) 전 일본총리의 방한을 앞두고 할머니들과 정대협 회원 등 30여명이 일본대사관 앞에서 ‘종군 위안부 강제연행 이전과 희생자에 대한 손해배상’ 등 6개항을 요구하면서 대장정이 시작됐다.


민간차원의 반일집회로 자리매김

당시 일본 총리의 방한에 즈음한 일회성 행사로 여겨지기도 했다.

하지만 역사적 책임을 망각한 일본 정부의 배짱에 수요집회는 어느덧 100회(1993년 12월22일), 200회(1996년 1월7일), 300회(1998년 2월18일), 400회(2000년 3월1일)를 넘어 500회에 이르렀다.

수요집회는 1997년 일본 고베(神戶) 대지진 당시 고베, 나고야(名古屋) 시민들에게 위로의 뜻을 전하는 것으로 시위를 대신한 것을 제외하고는 눈, 비바람의 거친 날씨에 아랑곳 않고 매주 열렸다. 일본정부의 공식사죄와 법적배상이 이뤄질 때까지 반드시 지켜야 할 약속이자 항구적인 민간차원의 반일 집회로 자리매김한 것.

지금까지 수요집회에 참가한 연인원은 약 2만5,000명. 참석자들은 선생님의 손을 잡고 온 유치원생에서부터 독립군으로 활약했던 80대 할아버지, 양심적 일본인, 세계 인권단체 회원들까지 망라돼 있다.

이념과 성별, 세대를 초월한 연대의 장이자 살아 있는 역사 교육의 장으로 거듭났다.

“내 조국, 내 조상이 상상도 못할 이런 끔찍한 일을 저질렀다니 믿어지지 않습니다.” 수요집회를 목격한 한 일본인 관광객은 “대신 사죄합니다. 일본 정부의 공식 사죄와 배상을 위해 미약한 개인이지만 노력하겠습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수요집회는 많은 것을 변화시켰다. 정신대문제는 더 이상 수치스럽고 감춰야 할 개개인의 문제가 아닌 일 제국주의에 의해 피해를 본 한민족 전체의 문제라는 국민적 공감대를 만들어냈다.

또 국제사회가 정신대문제를 세계 여성인권 회복운동의 대표적 사례로 인식토록 했다.

지난 10년간의 수요집회와 국제 연대 활동 등이 빛을 보면서 지난 해 12월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2000년 일본군 성노예 전범 여성국제법정’에서는 일본정부의 유죄 인정과 법적 책임 이행 판결을 이끌어내는 쾌거를 올리기도 했다.


10년의 외침에 우리 정부는 팔짱만

무엇보다 조국에서조차 어느 누구의 따뜻한 관심과 애정을 받지 못한 채 수치심에 갇혀 지냈던 할머니들이 수요집회를 통해 피해의식을 극복하고 나름대로의 역사의식과 여성의식을 체득한 것이 큰 성과로 평가 받고 있다.

정대협 윤미향(尹美香) 사무처장은 “10년 전에는 시위대의 가장 뒤에서 얼굴을 가리고 주변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던 할머니들이 이제는 맨 앞으로 나서 떳떳하게 이름을 밝히고 주장을 하는 시위의 주체가 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10년 세월 속에 비바람을 헤치고 수요집회에 참석했던 할머니 한명 한명씩 유명을 달리 했다. 지난 1991년 위안부 경험 등 한 많은 생을 처음으로 실명 증언,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던 김학순(金學順)할머니 등 60여명의 할머니가 가슴에 응어리진 한을 풀지 못한 채 눈을 감았다. 정부에 피해자로 등록된 할머니 203명 중 141명만이 생존해 있다.

“위안부 출신 할머니들이 다 돌아갈 때까지 정부는 팔짱만 끼고 있을 겁니까. 강덕경(姜德景) 할머니는 하늘에서도 자작하신 노래(‘아아 산 넘고 바다 건너 멀리 천리길 정신대로 아득히 떠 있는 반도 어머님의 얼굴이 떠오르네’)를 부르며 한을 달래고 있을 겁니다.

정대협 관계자와 할머니들은 “죽는 날까지 수요집회를 계속할 것”이라며 “정부는 일본 정부가 사죄하고 배상토록 발 벗고 나설 것”을 촉구했다.

최기수 사회부 기자

입력시간 2002/03/20 18:28


최기수 사회부 mounta@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