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들 "나 떨고 있니?"

검찰 엑스터시 복용리스트 확보, 20~30명선 될듯

연예가에 또다시 마약 폭풍이 불고 있다.

지난 해 연말 톱 탤런트 황수정의 히로뽕 복용에 이어 가수 싸이와 영화 배우 정찬이 대마초 흡입혐의로 구속되더니 올 들어 신종 마약 엑스터시를 복용한 연예인들 줄지어 처벌을 받고 있다.

인기 댄스 그룹 코요테의 김구,탤런트 성현아가 연이어 구속된 뒤 서서히 실체가 드러나는 마약 연루 연예인은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을 것이라는 검찰의 판단이다. 이 중에는 톱 클래스 연예인도 상당수 포함돼 있는 것으로 밝혀져 충격을 던져 주고 있다.

서울지검 마약수사부 정선태 부장검사는 “지난 해부터 엑스터시가 급속도로 국내에 퍼지고 있다”며 “P, J 나이트클럽, T 가라오케 등에서 공공연히 거래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서울지검 마약수사부는 20~30명의 연예인 리스트를 확보하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하지만 수사 과정에서 새로운 관련 정보가 속속 입수되고 있어 수사는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 신종 마약 엑스터시와 함께 새롭게 문제로 떠오르고 있는 연예계 마약 사태를 들여다 본다.


대마초, 히로뽕에 이어 엑스터시 복용 늘어

연예인이 마약과 관련해 물의를 일으킨 건 70년대로 거슬러 올라 간다. 1975년 가수 신중현 이장희 윤형주 김추자 등 무려 18명이 대마초 흡연으로 구속된 사건을 시작으로 76년 가수 김세환 김도향 개그맨 송영길, 77년 가수 하남석 이동원 채은옥 등이 대마초를 흡연해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

80년대에도 가수 김수희 이승철 신해철, 개그맨 주병진, 배우 염해리 등이 대마초 흡연 혐의로 구속 또는 불구속 입건됐다.

90년대에 들어서는 그 빈도가 더욱 잦아졌고 연루된 스타들도 점점 더 거물급이 돼 갔다. 가수 신성우 이현우 신해철 심신 김승진 전인권 등이 대마초 흡연으로 구속됐고 현진영은 히로뽕 상습 투약 혐의로 수 차례 구속돼 충격을 던져줬다.

영화 배우 박중훈 또한 대마초 흡연으로 구속됐고 인기 VJ 겸 탤런트 재키림은 코카인 복용 혐의로 구속돼 활동을 완전히 접어야 했다. 톱 클래스 개그맨 신동엽은 미국 유학중 대마초 흡연으로 구속돼 세상에 큰 충격을 던져 주기도 했다.

지난 연말 ‘예진 아씨’ 황수정이 히로뽕 복용 혐의로 구속되면서 연예계는 다시금 마약 충격에 휩싸였고, 이후 싸이 심신 정찬 성현아 등이 줄줄이 체포돼 긴장감을 높이고 있다.


경쟁심리 등으로 인한 스트레스로 손 대

일반인들보다 연예인이 마약에 쉽게 빠져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단연 소외감이나 불안감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수많은 팬들을 몰고 다니지만 보통사람처럼 섞여 지낼 수 없는 모순과 갈등이 존재한다. 군중 속의 고독인 셈이다.

뿐만 아니라 빡빡한 스케줄 때문에 운동 휴식으로 스트레스를 풀만한 여유마저 없고,가족 간의 화목한 시간을 보낼 시간조차 없는 긴장과 피로가 계속된다.

또한 떨어진 인기는 다시 회복하기 어렵다는 연예계의 속성 때문에 끊임없는 경쟁심리로 항상 불안할 수밖에 없다. 이런 심리적 불안정성이 마약의 유혹에 쉽게 넘어가는 이유이다. 결국 인기를 향한 스타들의 강박심리가 비극적인 결말을 낳고 있는 셈이다.

3월 7일 탤런트 성현아는 구속되면서 “슬럼프 기간 동안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접하게 됐다”며 울먹였다. 그 역시 인기인이라는 자리가 주는 중압감에서 자유로울 수 없어 마약이라는 수렁에 빠졌음을 시인한 셈이다.


체모검사로 들통

엑스터시는 히로뽕 등 다른 마약류와는 달리 복용 사실을 입증할 수 없다는 잘못된 인식이 팽배해 있는 점이 한 요인이다. 모발 등 체모 검사를 통해서는 발각되지 않고 소변 검사를 통해서만 밝혀지기에 복용 후 24시간 내에 소변검사를 받지 않으면 적발되지 않는다는 잘못된 생각이 엑스터시 복용을 부추기고 있다.

하지만 최근 새로운 감정 기술이 개발돼 복용 후 6개월까지 입증할 수 있게 됐다. 성현아도 2월 21일 안심하고 검찰에 자진 출두했다가 체모 검사에서 양성반응을 보이는 바람에 들통난 것도 이 때문이다.

또한 엑스터시는 알약을 물과 함께 삼킴으로써 위를 통해 급속히 퍼져 환각 효과가 즉각적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체중 조절이 생명이나 다름 없는 모델 등의 연예인들은 술 대신에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엑스터시를 찾고 있다.

서울지검 마약수사부의 정선태 부장검사는 “연예인들이 술 등으로 스트레스를 많이 풀고 있는 걸로 안다. 하지만 모델 등 여자 연예인들은 체중관리를 위해 술을 많이 마실 수 없다. 대신 단 한 알로도 엄청난 양의 술을 마신 것과 같은 효과를 얻을 수 있는 엑스터시를 복용하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누구누구 먹더라” 꼬리 문 소문

요즘 연예인 마약 수사와 관련해 가장 큰 쟁점을 이루고 있는 것은 ‘인기 연예인 A씨가 연루됐다’는 소문이다.

A씨는 직업도 나이도 성별도 불분명한 탓에 인기가 좀 있다 싶은 연예인은 모두 마약 관련자 후보가 돼 버리곤 한다. ‘A씨가 인기 개그맨이더라’ 하면 당장 서너 명으로 압축되고, ‘톱가수라고 하더라’ 하면 두세 명의 얼굴을 떠올리게 된다.

여기에 이미 마약을 경험한 사실이 있는 연예인과의 친분 관계까지 더해지면 완전히 리스트가 작성된다.

사실 이에 대해 검찰 등 수사 당국은 단 한 마디도 꺼낸 적이 없다. 아니 꺼낼 수도 없다. 마약 수사는 무척 조심스럽고 비밀스럽게 행해지는데 수사 대상이 알려지면 이미 수사는 종 친 상황이 돼 버리기 때문이다.

서울지검의 관계자는 “항간에 떠도는 리스트에 대한 소문을 들으면 우리도 놀란다. 하지만 사실 그 소문에 착안해 수사 대상을 정하기도 하니 소문의 도움도 받는 셈”이라고 말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구체적인 이름까지 거론하며 그의 마약 복용 사실을 기정 사실화 해버린다. 가수 K J B S R, 탤런트 K, 영화배우 L P K, 개그맨 S L H 등은 이 때문에 정말 마약을 한 것처럼 ‘언제 잡혀갈 지 모른다’는 악성 루머에 시달리고 있다.

이 바람에 어떤 연예인은 자진해서 자신의 결백함을 밝히기도 했고, 심지어 소환 조사 받고 결백이 밝혀지면 검찰을 상대로 소송을 벌이겠다고 벼르고 있다. 웃지 못할 해프닝이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


검찰 “마약공급책이 수사 표적”

현재 검찰은 조심스럽게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자칫 연예인 인권 문제로 비화될 조짐도 보이기에 더욱 조심스러운 상황이다. 게다가 마약 수사 자체가 확실한 정황 증거 없이는 검거조차 하기 힘든 속성이 있어 자칫 장기화될 가능성도 높다.

서울지검 정선태 부장검사는 “마약을 뿌리 뽑자는 것이지 연예계에 혼란을 주려는 의도는 전혀 없다. 언론의 지나치게 앞서가는 보도는 자칫 마약의 폐단을 알리기 보다 궁금증과 호기심을 불러 일으킬 수 있어 악영향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사실 검찰의 표적도 마약 공급책에 있다. 하지만 사회의 관심이 연예인으로 쏠려 있어 수사 방향이 때론 우왕좌왕하기도 한다.

정 부장검사는 “수사력이 집중될 곳은 마약 공급책인데 사회 분위기 때문에 연예계 쪽으로 쏠리고 있다”며 “최우선적으로 검거해야 할 대상이 마약 공급책인 만큼 연예인 검거는 좀 더 시간을 두고 조심스럽게 접근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동현 일간스포츠 연예부 기자

입력시간 2002/03/20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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