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 카페(99)] 폭력환경과 IQ

조폭들의 IQ를 논하려는 것이 아니다. 폭력환경에 노출된 어린이들의 IQ발달에 관한 이야기다. 구제금융시절, 실업과 가난은 절망감, 가정폭력, 알코올중독, 별거, 이혼, 가정해체 등으로 이어졌고, 이들 가정의 어린이들은 폭력과 고통 속에 망가져 갔다.

공사판을 떠돌던 한 아버지는 알콜 중독자가 되어서 술만 마시면 마구잡이로 주먹을 휘둘렀고 흉기까지 휘두르자 견디다 못한 아내는 남편을 고발해 ‘100m 이내 접근금지’ 라는 법적 보호를 선택하지만, 이후 노숙자로 전락한 아버지는 인근의 빈집에서 시신으로 발견되었던 실화가 있다.

문제는 이들 부부의 아들은 지능지수(IQ) 50의 정신지체아 2급 수준이 되어버렸다는 충격적인 사실이다.

굳이 맹모삼천지교를 떠올리지 않아도, 어린이들의 성장환경은 그만큼 중요한 것이다. 무관심과 학대는 성격형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

그런데 이 경우처럼 이 아이의 지능지수에도 직접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은 치명적이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학대 받는 아동의 기억력과 사고력이 보통 아이보다 현저히 떨어진다는 것을 증명해 주고 있다.

미국 미시간대학 어린이 병원의 버지니아 델라니블랙 박사팀의 최근 연구결과 따르면, 폭력에 많이 노출된 어린이는 동년배 다른 어린이에 비해 지능지수가 7.5가 낮으며, 독서능력 등 학습능력과 잠재력에 손상을 입는다.

특히 폭력에 직접적인 피해를 입지 않더라도 지능이 낮은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 사실은 가정의 폭력을 넘어서 사회 전체의 폭력성은 전체 어린이의 지능지수를 떨어뜨릴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의 전문가들에 따르면 아동학대는 두뇌발달에 영구적인 영향을 미치고 성년이 되어서는 발작, 간질, 비정상 뇌파 등의 심각한 문제를 불러일으킨다고 한다.

감정의 변화 폭이 크고, 우울증이 심하며 기억력마저 떨어지며, 자기 파괴적일 뿐 아니라 타인에 대해서도 공격적이 된다고 한다. 폭력과, 학대의 환경에서 자란 어린이의 낮은 지능과 성인이 되었을 때의 폭력적 성향은 뇌의 비정상적인 발달에 원인이 있다고 해석하고 있다.

뇌가 발달을 위해서는 기본적인 영양의 공급만으로 충분한 것이 아니라, 발달 촉진 호르몬을 비롯한 다양한 화학물질의 공급이 필요하다. 하지만 폭력, 학대, 무관심은 신체적 정신적 스트레스로 작용하기 때문에 뇌의 발달에 필요한 호르몬이나 화학성분의 분비를 감소시키게 된다.

결국 필요한 물질을 제대로 공급 받지 못한 뇌는 발달에 장애를 일으키는 것이다.

이러한 폭력적 환경이 주는 정신적 스트레스는 뇌 조직 중에서 가장 연약하고 감정을 조절하는 곳인 ‘대뇌 변연계’와 좌우 뇌를 이어주는 ‘뇌량’을 가장 먼저 손상시킨다.

결과적으로 좌뇌와 우뇌의 기능을 통합시켜 사용하는 능력이 떨어지게 된다. 그렇게 되면, 사고력과 언어능력, 운동능력이 동시에 필요한 상황을 처리하는 능력이 없어지는 것이며, 당연히 지능도 떨이지게 되는 것이다.

적지 않은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폭력(또는 폭언)을 휘두르며 ‘사랑의 매’라고 치부한다.

하지만 막상 아이가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는 한 그것은 적지 않은 정신적 스트레스가 될 수밖에 없고, 결국 아이의 뇌 발달에 영향을 미쳐 지능이 낮은 아이가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매는 매일 수밖에 없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강압보다는 용기를 북돋우는 진정한 사랑의 실천이 아이를 똑똑하게 만든다는 말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터지는 무장 은행강도와 영화를 통한 조폭의 우상화, 심각한 수준의 학교폭력 등 우리나라의 현실도 어쩌면 사회적인 문제로만 볼 것이 아니라, 어린이들의 지적 경쟁력 차원에서 접근해야 할 고려할 문제가 아닌가 싶다.

이원근 과학커뮤니케이션연구소장 www.kisco.re.kr

입력시간 2002/03/20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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