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량산(870㎙ㆍ경북 봉화군)은 혼자만의 쉼터였다. 한동안 교통의 오지에 속해있었기 때문이다. 영남의 몇몇 산꾼들만 쉬쉬하며 즐겼다. 1982년 일찌감치 경북 도립공원으로 지정됐지만 크게 사람의 때가 타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사정이 다르다. 지난 해 12월 개통된 중앙고속도로 덕분에 전국 어디서나 접근이 용이해졌다. 올 봄부터 청량산 산길은 분위기가 크게 달라질 것이다.
청량산은 돌산이다. 멀리서 바라보면 남성미를 물씬 풍긴다. 거침없이 솟아오른 바위봉우리, 절벽에 뿌리를 박고 끈질긴 생명력을 과시하고 있는 아름드리 소나무, 수십길 낭떠러지에서 쏟아져 내리는 폭포수….
어떻게 저 산을 오를까. 겁부터 난다. 그러나 안에 들면 분위기가 전혀 다르다. 바위를 돌아오르는 아기자기한 등산로 곁에 계곡의 옥수가 따라 흐른다. 이제 대찰의 위용을 갖추어 가는 청량사도 정감을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다.
낙동강 상류를 가로지르는 청량교를 건너면 관리사무소. 약 1㎞쯤 아스팔트 포장길을 올라가면 비포장으로 도로가 바뀌고 시냇가에 세워놓은 팔각정이 보인다. ‘등산로’라는 화살표가 방향을 알려준다. 그리 높지 않은 봉우리지만 바위산 답게 길은 곧추 서있다. 처음부터 서둘면 지치기 쉽다.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 20분쯤 오르면 청량사가 나타난다. 청량산 육육봉(12개의 봉우리)이 연꽃처럼 둘러쳐져 있고 청량사는 연꽃의 꽃술자리에 있다.
풍수리지학상 길지중의 길지로 꼽힌다. 663년 원효대사가 창건한 이 절에는 고려 공민왕이 직접 현판을 쓴 유리보전(琉璃寶殿)과 지불(紙佛) 등 두 개의 보물이 있다. 유리보전은 약사여래불을 모신 곳. 기둥의 나뭇결을 따라 나 있는 풍화의 흔적이 긴 세월을 이야기한다. 지불은 말 그대로 종이로 만든 부처님인데 지금은 금칠을 해 놓았다.
본격적인 등산은 청량사에서 시작된다. 가장 일반적인 코스는 응진전-금탑봉-경일봉-보살봉-의상봉(청량산의 주봉)을 거쳐 다시 내려오는 것. 4시간 30분에서 5시간이 걸린다 길은 바위절벽의 틈새를 타고 기기묘묘하게 뚤려 있다.
한켠은 언제나 깎아지른 낭떠러지이다. 특히 금탑봉에서 의상봉까지 능선을 타는 코스가 인상적이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계속된다. 오르막의 끝에는 어김없이 바위봉우리가 있다. 올라 앉아 쉬면서 사위를 돌아본다. 낙동강 상류의 푸른 물줄기와 함께 영남의 산봉우리들이 물결치듯 다가온다.
다리를 쉴 수 있는 곳은 어풍대와 산꾼의 집 금탑봉의 중간에 위치한 어풍대는 자그마한 절벽 위의 평지로 청량산 전체와 멀리 봉화땅의 푸른 연봉을 조망할 수 있다.
눈과 가슴이 후련해지는 곳이다 산꾼의 집은 원로산악인 이대실씨가 있는 곳. 산악구조대 본부를 겸하고 있다. 9가지 약초를 달여낸 구청차를 공짜로 맛볼 수 있는데 근처에만 가도 구수한 차 냄새가 진동한다.
긴 산행을 원치 않는다면 청량사 입구에서 약 500㎙를 더 올라가 ‘입석’이라는 곳에서 길을 잡으면 된다. 경사가 그리 심하지 않은 길을 잠시 올라가면 바로 응진전을 만난다. 어풍대와 청량사를 돌아 다시 내리막길을 걸어 내려오면 된다.
바위산이지만 산길은 고운 흙길이 많다. 요즘은 긴 가뭄 때문에 흙먼지가 날릴 정도로 길이 푸석푸석하다. 경사가 심한 곳은 미끄럽기까지 하다. 조심해야 한다.
입력시간 2002/03/20 21:24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