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평론] 국민경선이 정치혁명이 되려면

정치의 활력이 되살아나고 있다. 오랜 동안 정치는 국민의 불신대상이었다. 정치인은 있으되 정치는 없고 국회의원은 있어도 국회가 없는 상황이었다. 오로지 정쟁만 있었다.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처럼 제멋대로 달리는 '고장난 정치'에 대해 국민은 설레설레 고개를 흔들었다. 정치인들이 입만 열면 '국민을 위해서' , '국민의 뜻'을 되뇌었지만 그 말을 곧이곧대로 듣는 국민은 거의 없었다.

정치는 국민이 외면하는 가운데 정치인들만이 진흙탕 싸움을 벌이는 '그들만의 리그'였다.

그런데 국민이 정치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국민의 눈길을 끌어 모은 것은 바로 민주당의 국민참여경선제였다.

정당의 후보 선출에 사상 처음으로 국민이 참여하는 국민참여경선제는 미국의 예비선거제(preliminary election)와 성격이 비슷하다. 정당의 가장 중요한 행사에 지금까지 정치의 객체로만 존재했던 국민이 직접 참여하도록 함으로써 정당과 국민이 만날 수 있는 길을 만든 것이 결과적으로 민주당을 살리고 나아가 정치를 되살려내고 있는 것이다.

국민참여경선제 도입 계기는 김대중 대통령의 민주당 총재직 사퇴이다. 민주당의 '모든 것'이었던 김대중 대통령의 사임으로 맞이한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민주당이 선택한 것이 국민참여경선제라는 정치실험이었다.

특정한 지역에 압도적인 지지기반을 갖고 있는 카리스마적 1인 보스를 중심으로 한 '패거리 정치'가 막다른 골목에 몰리자 국민참여의 통로를 마련한 것이 바로 국민참여경선제였다.

일부에서 국민참여경선제를 '화려한 쇼'라고 깎아 내렸지만 어쨌든 지금까지 국민참여경선제의 흥행성적은 성공적이다. 많은 국민이 민주당 경선을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으며, 경선에 직접 참여하는 국민의 숫자도 예상보다 많다.

조직 동원도 있지만 자발적인 국민 참여도 매우 많다. 떨어지기만 하던 민주당 지지율이 경선을 치르면서 조금씩 높아지더니 마침내 한나라당 지지율보다 높아진 것이다.

무엇보다도 큰 성과는 경쟁력 있는 후보의 등장 가능성이다. 그 동안 민주당에서는 ‘이인제 대세론’이 세를 이뤄 왔다. 이인제 대세론은 민주당 안의 대세로서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와의 대결에서는 약세를 보였다.

그런데 경선을 거치면서 이런 추세가 깨지고 있다. 노무현 민주당 고문의 상승세가 이회창 대세론을 압도하고 있음이 각종 여론조사를 통해 밝혀졌다. '노무현 대안론'이 대쪽을 가르는 기세로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이인제 민주당 고문도 노 고문과의 대결을 통해 경쟁력이 살아나 이회창 총재와 대등한 수준의 지지율을 보이고 있다.

경선은 아직 반환점에도 도착하지 못했지만 문제점이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이것을 해결하지 못하면 민주당 경선은 상처뿐인 영광으로 끝날지도 모른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새로운 제도가 만들어졌지만 아직도 낡은 정치 행태를 벗어 던지지 못한 데서 문제가 생겨나고 있다.

돈 선거, 동원, 줄 세우기, 지역정서 자극 등이 바로 그것이다. 김근태 민주당 고문이 자기고백을 통해 돈 문제를 제기했지만, 김 고문만 쓸쓸히 퇴장했을 뿐 돈 선거 해결의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광주 경선에서 영남과 충청 출신의 노무현 고문과 이인제 고문이 호남 출신의 한화갑 고문을 앞질러 1,2위를 차지하면서 지역정서 극복의 실마리가 보였다. 그러나 대전 경선을 거치면서 지역주의가 되살아 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경선과정에서 문제점이 나타날 수 있다. 이미 예상했던 것이다. 따라서 민주당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것이 바로 국민참여경선제가 살고, 민주당이 살고, 나아가 한국정치가 사는 길이다.

만 명 안팎의 대의원으로 치렀던 종래의 경선도 크고 작은 문제점이 있었다 예비경선제의 본 고장인 미국도 제도가 정착되기까지는 60년이 걸렸다. 문제점을 부각시키기보다는 보완책을 마련해서 경선이 멋지게 끝나기를 기대한다.

손혁재 시사평론가ㆍ참여연대 운영위원장

입력시간 2002/03/26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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