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리는 昌 "난 뭘 내놓지?"

부총재단 사퇴로 한나라 내분 새 국면, 비상기구 발족

“수습에 도움이 된다면 누가 자리에 연연하겠나. 우리가 그만둬서 총재가 새로 구성할 수 있게 해 드려야 하지 않겠나.”(한나라당 박희태 부총재) “당 어려운데 도덕적 책임 져야 한다. 총재께서 빨리 수습안을 마련하도록 프리 핸드를 드리자.”(이환의 부총재)

3월 25일 오전 8시30분부터 열린 한나라당 총재단 회의의 화두는 예상대로 부총재단의 일괄사퇴 문제였다.

이날 회의에는 8명의 부총재단 중 강재섭 이연숙 부총재를 제외한 최병렬 양정규 박희태 이환의 김진재 강창희 부총재 등 나머지 6명이 참석했다. 자연스럽게 부총재단이 전원 사퇴하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이회창 총재가 보다 탄력적인 당 내분 수습책을 마련할 수 있도록 용퇴하자는 취지였다.

자유로운 논의를 위해 잠시 자리를 비웠다가 돌아온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는 부총재단의 당 내분 수습방안을 듣고 괴로운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모두 전적으로 나에게 책임이 있다. 사퇴 이야기를 들으니 안타깝고 괴롭다. 지금 바닥에 와 있지만 합쳐서 극복할 수 있다. 당을 위한 충정에 고맙다. 나도 무엇에 집착하는 것은 아니다. 지난번 수습안도 합리적이고 실천 가능한 방안으로 만들었지만 수습이 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앞으로 단합하면 할 수 있다.”

남경필 한나라당 대변인은 회의직후 브리핑에서 “부총재 8명 전원 연명으로 사직서를 작성해 연장자인 이환의 부총재가 이 총재에게 오늘 중 제출키로 했다”면서 “해외 출장중인 이연숙 부총재와 개 인 일정때문에 회의에 참석치 못한 강재섭 부총재의 서명은 들어있지 않지만 강 부총재는 전화로 동의한다는 뜻을 밝혔다”고 전했다.


이회창 총재, 새 해법 제시 암시

남 대변인은 그러나 “부총재단 회의에서 총재권한대행 문제 등에 대한 토의가 있었으나 총재가 최종 결정을 내리도록 했다”면서 “지도체제나 당 수습방안 등에 대한 논의는 없었다”고 밝혔다.

회의후 최병렬 부총재는 “총재가 사태를 수습하는데 ‘프리 핸드’를 드리자는 취지로 부총재단이 전원 사퇴키로 한 것”이라고 말했고, 박희태 부총재는 “비상대책기구 등에 대해선 논의한 것이 없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이 총재의 수습방안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 총재는 금명간 총재권한대행을 임명, 자신은 당무 2선으로 물러나거나 5월 10일 전당대회까지 한시적으로 기존의 총재단을 대신할 비상관리기구를 발족하는 방안 등을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총재는 이미 지난 주말에 ▦ ‘측근정치’ 청산을 요구하는 최병렬 부총재와 김용갑 의원 등 보수중진 ▦ 부총재직을 사퇴한 하순봉 의원 등 ‘측근세력’과 신경식 정창화 목요상 의원 등 지지파 ▦오세훈 의원 등 미래연대를 포함한 소장파 대표 ▦윤여준 국가혁신위원장 등 보좌진들과 두루 접촉, 광범위한 의견을 수렴했다.

이 자리에서 일부 소장파와 중도 주류측은 5ㆍ10 전당대회까지 과도체제로, 주류와 비주류 및 당직을 맡지 않은 중진의원과 소장파가 두루 참여하는 ‘비상관리기구’를 구성할 것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벌써부터 비상관리기구 대표까지 거론되고 있는데 최다선인 박관용(6선) 의원을 비롯 서청원(5선) 지도위원과 김용환 국가혁신위원장, 이환의 부총재 등이 유력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 총재는 3월 22일 부산을 방문한 자리에서 “밑바닥에 내려와 보니 안 보이던 게 보인다”며 새로운 해법을 제시할 것임을 암시했었다. 이 총재는 수습책을 통해 내분이 진정되면 곧바로 대선출마를 선언할 것으로 보인다.

이 총재는 특히 측근 폐해에 대해서도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보고 측근 3인방 가운데 하순봉 부총재와 김기배 국가혁신위 부위원장의 부총재 경선불참을 적극 타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측근문제로 주류, 비주류간 감정 격화

그러면 이 총재는 과연 총체적 위기를 돌파할 수 있을까.

이 총재가 조만간 제시할 것으로 예상되는 수습책에 따라 성패여부가 결정되겠지만 어쨌든 한나라당은 부총재단의 일괄사퇴로 적어도 당분간 숨 고르기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한나라당 당내 갈등의 양대 원인인 측근정치 청산과 대선 후보ㆍ당권 분리 문제에 돌파구가 열린 만큼 소장파 의원 모임인 미래연대측도 구체적인 행동을 일단 자제한 채 당 수습안이 구체화되는 것을 지켜볼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미래연대의 오세훈 공동대표는 “추이를 더 지켜봐야 한다”면서도 “부총재단 사퇴와 함께 지도체제 변경이 이뤄질 경우 우리가 주장했던 게 반영되는 것 아니냐”고 긍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여기에 당내 중진 의원들의 이 총재 지지 움직임도 강해지고 있다. 대구와 부산ㆍ경남 의원들에 이어 정창화 신경식 유흥수 강창희 목요상 최돈웅 의원과 이환의 변정일 전석홍 전 의원 등 12개 시ㆍ도지부장들도 3월 23일 모임을 갖고 이 총재에 대한 지지를 결의했다.

보수의원 모임(대표 김용갑)과 14, 15대 의원 모임인 무심회도 이 총재에 대한 지지를 결의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낙관적인 것만은 아니다. 당내 주류와 비주류, 중진과 소장파 의원간에 당 내분 수습과 측근청산 여부를 놓고 대립이 격화되면서 감정의 골이 패였기 때문이다.

이회창 총재의 측근 3인방의 핵심인물이며 비주류를 쥐새끼로 비하, 퇴진압력을 받아온 하순봉 부총재가 3월 22일 전격 사퇴한 이후에도 당의 내분이 진화되기는커녕 오히려 더 심화한 것도 양측의 불신 및 반목과 무관하지 않다.

여기에 최근 실시된 각종 여론 조사에서 이 총재가 노무현 민주당 고문에게 연패를, 그것도 갈수록 큰 차이로 지고 있는데다 일부 조사에서 당 지지도마저 민주당에 밀리면서 분위기는 더욱 험악해졌다.

3월 23일 열린 12개 시ㆍ도지부장 모임에서 “초선 의원들이 당을 좌지우지하는 것을 더 이상 방치하면 안 된다”는 의견도 개진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강성기류 여전, ‘김ㆍ홍’의원 탈당여부관심

미래연대 역시 강ㆍ온 기류가 교차하고 있지만 이 총재의 수습안이 자신들이 주장하고 있는 쇄신안과 거리가 멀 경우 다시 강성으로 회귀할 가능성이 높다.

미래연대의 한 의원은 “먼저 확실한 측근 청산이 이뤄진 뒤 다음 단계로 이 총재의 총재경선 불참과 집단지도체제 조기 도입 등 제도적 당쇄신 방안을 요구할 것”이라며 “이 총재가 이 같은 요구를 수용하지 않을 경우 최종적인 타깃은 이 총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래연대 일각에선 미래연대의 복잡한 인적 구성과 부총재단 전원사퇴 등을 감안할 때 이 같은 강경입장을 계속 취할 지 알 수 없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지만 강성기류가 여전히 잠복중인 것은 사실이다.


강성기류 여전, '김·홍'의원 탈당여부 관심

또한 측근정치의 표적으로 지목된 하순봉 김기배 의원이 부총재 경선에 출마하거나 출범할 비상대책기구에 중용될 경우 다시 분란이 재연될 가능성이 높다.

이와 관련, 한 중진 의원은 “진전한 측근이라면 스스로 불참을 결심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지만 하 의원측은 “부총재직은 던졌지만, 경선까지 불참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반박하고 있다.

김덕룡 홍사덕 의원 등 비주류 중진의 움직임도 관심거리이다. 탈당을 기정 사실화한 김 의원은 부총재단 사퇴 등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는 반면 홍 의원은 3월 23일 김 의원과 중국에서 귀국한 이후 탈당에 대해 한마디로 하지 않는 등 당 잔류 여지를 남겨두고 있다.

김경철 주간한국부 차장

입력시간 2002/03/28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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