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현, 코트 천하통일

프로농구 출범 최초의 신인왕·MVP등 5관왕

3월 17일 서울 하얏트 호텔에서 열린 2001~2002 프로농구 시상식. 정규시즌을 끝낸 10개 구단의 감독, 선수, 프런트들이 모이는 축제의 자리였지만, 이날의 주인공은 단 한 명이었다. 동양의 신인 김승현(24)이 바로 화려한 등극식을 한 것이다.

김승현은 이날 프로농구가 출범한 지 6년 만에 최초의 신인왕_최우수선수(MVP) 석권, 최초의 5관왕(MVP, 신인왕, 스틸상, 어시스트상, 베스트5)등 각종 기록을 세우며 생애 최고의 날을 보냈다.

신인에게 MVP까지 주는 것은 무리라는 얘기도 나왔지만 최하위였던 팀을 1년 만에 정상으로 올린 공로로 강력한 경쟁자였던 국보급 센터 서장훈(28ㆍ서울SK)를 2표차로 따돌리고 MVP를 차지했다.

기라성 같은 선배 이상민(전주KCC)도 데뷔 무대였던 1997~98시즌 MVP을 차지했지만 신인왕은 주희정(당시 원주 나래)에 양보했었고, 지난 시즌 돌풍의 주역 창원 LG의 조성원도 4관왕을 차지하는데 그쳤었다. 혜성처럼 등장, 올 시즌 농구판을 평정시킨 김승현의 비밀은 무얼까.


김승현 효과…꼴찌서 우승으로

김승현의 소속팀 대구 동양은 1998~99시즌 기록적인 32연패(連敗)를 당하며 최하위에 머물렀고 지난 시즌에도 9승(36패)라는 참담한 기록으로 꼴찌를 벗어나지 못했다.

1998~99시즌에는 주포 김병철_전희철의 군복무로 전력에서 이탈해 있었다 해도 이들이 복귀한 지난 시즌에도 성적은 나아지지 않았다.

득점력 있는 슈터들을 조율할 포인트 가드의 부재를 절감한 동양의 김 진 감독은 신인 드래프트에서 3번 순위로 무명에 가까웠던 동국대 출신의 가드 김승현을 뽑았고 동양은 올 시즌 김승현 효과를 만끽하며 핵 폭풍을 일으켰다.

사실 전문가들은 시즌 전 1차 지명 신인인 중앙대 출신의 포워드 송영진(LG)이나 공격형 포인트가드 전형수(여수 코리아텐더)가 신인왕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3명의 승부는 시즌초반에 이미 결정났었다.

프로농구 선수들 중 두 번째로 키가 작은(178㎝) 김승현은 ‘저 키로 어떻게 농구하나’는 주위의 우려를 무색하게 장신자들을 앞에 두고도 저돌적인 어시스트를 시도했고, 상대가 잠시라도 한 눈을 팔 것 같으면 허를 찌르는 가로채기로 경기의 흐름을 뒤집어놓기 시작했다.

상대 수비수들이 백코트 하기도 전에 김승현의 손 끝에서 출발한 공은 골 밑의 마르커스 힉스나 전희철에게 연결됐고 동양은 어느새 10개 구단들 중 가장 속공에 능한 팀으로 변신해 있었다.

지난해 맞지도 않는 포인트가드 노릇을 하다 시즌을 망쳤던 김병철은 김승현 덕택에 본업인 슈팅가드 자리를 찾아 외곽 슛에만 전념할 수 있게 됐다. 김승현의 등장으로 5개의 포지션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게 된 것이다.

시즌 중 올스타 투표에서도 막판 최다득표를 이상민에게 빼았겼지만 줄곳 선두를 달리는 등 김승현은 어느새 유명스타가 돼있었다.


코트의 야전사령관, 코트 밖선 미소년

“자신이 좋아하는 플레이는 어떤 건가요? ”

“선배들을 놀라게 하는 가로채기, 허를 찌르는 어시스트지요”라고 다소 당돌하게 대답하는 김승현은 사실 ‘연습벌레’ 는 아니다.

낮잠을 즐기며 “언제쯤이면 연습 안 할 수 있나?”를 고민하고 한 손가락으로 휴대폰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 취미여서 별명도 ‘엄지왕자’인 전형적인 신세대 스타다.

자유분방한 성격을 억제하지 못해 김승현은 입단 직후 무단 외박을 했고 김 진 감독으로부터 “당장 팀을 떠나라”는 호통을 들었지만 싹싹 빌기는 커녕 때를 만난 듯 한 달 동안 신나게 자유를 즐긴 것은 잘 알려진 얘기다.

선수들에게 자율을 강조하는 김 감독이지만 어디로 튈지 모르는 김승현을 통제하기 위해 숙소의 자신의 방 옆에 김승현의 방을 배치해 놓기도 했었다.

하지만 김승현은 자유분방함과 달리 코트에서면 몇 년은 뛴 선수들처럼 노련한 플레이를 하고 강력하게 코트를 장악하는 겁 없는 야전 사령관이 된다. 단점이 있으면 곧바로 고치는 유연성도 그의 장점이다.

김승현이 프로입단 전 오랫동안 고개를 숙이고 슛을 쏘는 버릇이 있어 슛 성공률이 떨어지는 것을 김 진 감독이 알아챘고 이를 바로 지적하자 김승현은 10년 가까이 익숙했던 슛 자세를 단숨에 고쳐버렸다.

김승현은 늘 자신의 플레이를 머릿 속으로 여러 차례 복기해보고 문제다 싶으면 당장 코트로 나가 공을 잡는다.

데뷔 첫 해에 신인으로서 이룰 수 있는 것을 모두 손에 넣은 김승현이지만 아직도 목표가 한 가지 남았다.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한 만큼 챔피언전에서 팀을 반드시 우승시키는 것이다. 올 가을엔 국가대표로 뽑혀 아시아 경기에서 중국을 꺾고 우승을 차지하고 싶다는 소망도 있다.

“나도 즐겁고 팬들도 즐거운 농구를 하는 것이 꿈”이라는 신인 김승현이 또 팬들에게 어떤 즐거움을 선사해 줄 것인지 농구팬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고 있다.

이왕구 체육부기자

입력시간 2002/03/31 14:40


이왕구 체육부 fab4@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