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꽃 우리식물] 히어리

히어리? 그냥 한 단어로 이 이름을 들으면 도대체 무엇을 뜻하지는 알 수가 없다. 영어냐고 물어 오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이 이름은 나무, 그 중에서도 우리나라에서만 자라는 특산식물의 이름이다. 세상에 우리가 우리 식물을 모르다니.

더욱이 이른 봄, 조랑조랑 매어 달리는 환하고 귀여운, 그래서 한번 보고 나면 좀처럼 잊혀지지 않을 것만 같은 그 꽃송이들을 일단 알고 나면 그동안의 우리 식물에 대한 무지와 무관심에 대해 자책감까지 불러일으킨다.

히어리는 가을이면 낙엽이 지는, 넓은 잎을 가진 활엽수이다. 줄기는 굵어지지 않으며 대신 가는 줄기가 많이 모여 한 그루가 되는 작은 키 나무이다. 학명이 콜리롭시스 코레아나(Corylopsis coreana)이다.

한국에 있는 개암나무를 닮은 나무라는 뜻이 된다. 잎의 모양이 정말 개암나무를 닮았다. 영어 이름도 코리안 윈터 하젤(Korean Winter Hazel), 즉 한국의 겨울 개암이란 뜻이 된다.

히어리란 우리 이름도 참 곱다. 어떻게 해서 이런 이름이 붙어졌는지 오래 전부터 알고 싶었지만 아직 정확한 유래를 알 수 없다. 그저 참나리, 개나리, 싸리, 원추리, 고사리, 미나리처럼 이름 뒤에 ‘리’자를 붙인 우리말인 것만 확실하다.

예전에는 히어리를 송광납판화라 불렀는데 이 나무가 조계산 송광사가 있는 곳에서 처음 발견되었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그 이외에 송광꽃나무, 납판나무라고도 부른다.

이른 봄, 히어리는 백색의 숨구멍이 남아 있는 누런 줄기에 잎보다 꽃이 먼저 매달린다. 꽃이 달리는 모양은 너무나 귀엽고 개성이 있어서 세상이 이런 모양의 꽃도 있었구나 신기하기도 하고, 우리나라에 히어리 말고 이러한 모양의 꽃을 만드는 식물이 있을까 싶기도 하다.

삼월이면 벌써 노랗고 작은 종지 같은 꽃들이 포도송이처럼 모여 달리는데 나무 가지마다 이 아름다운 꽃송이가 수백, 수천개씩 달려 히어리가 절정일 때는 그야말로 장관을 이룬다. 때론 그 노란 색이 너무 맑아 푸른빛이 도는 듯 느껴지고 그래서 한참을 들여 다 보면 슬퍼지곤 한다. 노란꽃이 맑은 것은 참 드문 일인데.

히어리가 우리나라에서 처음 발견되어 특산식물임이 알려지고 학계에 등록을 마친 것은 1924년이다. 처음에는 조계산과 지리산 그리고 섬진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 서있는 백운산이 그 서식지이어서 남쪽에 자라는 나무려니 했다.

하지만 그 이후로 남해, 수원의 광교산, 강원도 백운산 등 곳곳에서 발견되어 이젠 식물형태적으로는 물론 분포적으로도 우리나라 전체에 골고루 자리잡은 의미있는 우리나무로 인정받고 있다.

아직 이 좋은 히어리를 구체적인 쓰임새로 개발하여 활용한 경우는 보지 못했다. 가지가 작고 섬세하지 않아 작은 정원에는 어울리지 않지만 생울타리로 만들거나 공원에 무리를 지어 심어 놓으면 얼마나 빨리 그리고 밝은 마음으로 봄을 맞을 수 있을까 싶다.

또 너무 귀하여 누가 약으로 쓰려고 시도해볼 기회가 없겠다 싶은데 중국에서는 비슷한 식물을 약으로 쓰고 있다니 이 부분에도 관심을 한번 두어 볼 필요가 있다.

지난 주에 남도의 외딴 섬에 갔다가 그 산자락에서 살고 있는 히어리를 새로 만났다. 새롭게 기록될 이 나무의 자생지이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그 긴긴 세월이 이 외진 곳에서 외롭게 꽃을 피우며 살아 왔을 그 나무들이 새삼 대견스러웠다.

입력시간 2002/04/01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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