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와 오늘] 대통령이 되려면…

새천년 새세기 새로운 대통령 뽑는 무섭기 보다 서글픔을 던져 준다. 그 숫한 격동과 격변속에 민주선거 라는 것을 해본지 50여년이 넘어서 세대가 여러 차례 바뀐 가운데서 더욱 그렇다.

그러나 아직도 색깔론에 ‘좌파’니 ‘중도’니 ‘지역 싹슬이’의 용어는 날이 서 있다.

아직도 ‘당권’, ‘대권’, ‘후보 총재분리’등의 웅성거림속에 뒤늦게 “그렇다면 나도 나서겠다”는 엉뚱한 몸짓도 생겼다.

이들 대통령이 되고픈 사람들은 지난 대선때 낙선한 후보를 포함해 그동안 무엇을 했기에 지금 세상이 난리들일까. 이 사람들은 한반도의 남쪽 반쪽을 어떻게 끌고 나갈 궁량을 가졌기에 이런 우울한 정치바람을 불러 이르키는 것일까.

해답이 될는지 모르겠다. 올해 치매상태에 91세를 맞은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1981~89년 집권)이 캘리포니아 주지사(1966~1974년)를 마치고 라디오와 신문의 컬럼니스트가 되어 직접 쓴 원고를 엮어 만든 책이 그답을 줄 것 같다.

작년 년말에 나온 직접쓴 원고속 레이건. 부제목은 ‘그의 미국을 위한 혁명적 통찰력을 볼수 있는 작품들’이라고 길다. 우울하고 서글픈 시각으로 이 책을 흩으면 “이렇게 생각하면 대통령이 되겠구나”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이제는 미국인이 된 영국의 센데이 타임스의 편집국장 출신 해롤드 이번스는 1889~1989년의 세기를 ‘아메리카 세기’(98년간)라고 이름 짓고 이를 책으로 냈다. 이 책에는 벤저민 해리슨(1889~1893)에서 조지부시(1989~1993)까지 18명와 대통령이 나와 있다. 이중 레이건은 이혼 경력자로 첫 대통령. 미국 산업노조의 평생회원으로 대통령이 된 첫번째사람으로 요약되어 있다.

그러나 그의 두번째 아내인 낸시는 남편을 복잡하거나 엉뚱한 사람으로 생각안했다. 다만 무척 사적이지만 까다롭지는 않다고 봤다. 그녀는 그가 “대단히 훌륭한 작가다. 그는 대통령이나 주지사 이전에 그의 발상과 사색은 형성 되어 있었다. 그는 목욕하며 생각하거나 T.v를 보며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니다”고 평했다.

이런 레이건은 1963년 대선에 나선 공화당의 극우 보수 골드워터 상원의원을 지지연설을 하며 정치계에 발을 디뎠다. 그때까지 허리우드 배우 노조의 위원장이었고 민주당이었지만 60년 대선에서 닉슨을 지지하면서 민주당, 우파가 됐다. 골드워터를 지지하며 땅을 바꿨다.

그때 그는 정치인 10계명의 제1조인 공화당원으로 지켜야 할 일에 대한 맹서를 가슴에 새겼다. “당신은 어떤 공화당원에게도 해가 될일을 해서는 안된다.

이 가슴속 서약은 그가 주지사 임기를 마치고 76년 대선에서 맞설 포드대통령의 부당성을 지적이나 비난 못하게 하는 멍에가 됐다. 그래서 그는 “인프레를 지금 당장 후려 쫗아 내자”는 당의 강령을 잊은 포드를 비난 못한채 예선에 나서야 한다. 그 결과는 5천표 대의원 표중 117표 차로 지는 것이었다.

많은 공화당원들이 포드 대통령이 “국민들에게 한표도 얻지 못한, 닉슨의 지명에 의한 대통령”임을 잘 알고 있었다. 레이건은 질서 차례, 전통을 선호하는 측에 속하는 보수정치인으로 “이런 대통령은 ‘부적절한 대통령’이라고 생각했지만 예선 중에 그를 비난 하거나 비판 하지 않았다.

레이건은 76년 8월 19일, 패배 연설을 하며 청중을 울렸다. ‘우리 너무 냉소적이 되지 맙시다. 우리는 이상을 버리지 맘시다. 수백만의 미국인이 저 ‘언덕위에 찬란한 도시’(성경에 나오는 도덕이 살아 있는 열린 도시)를 이상으로 삼고 있음을 인정 합시다.”

레이건은 그리고 다시 2백여 개 방송국을 통해 그의 9개월간 중단된 그의 컬럼을 방송하기 시작했다.

첫 방송이 9월 1일 나갔다. “나는 지난 9개월 동안 실망하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많은 국민에게 감사합니다. 특히 예선 연설회에서는 연설하는 사람들 보다는 시민들이 그들의 의무를 느꼈습니다. 결국 후보자들은 직업을 찾는 사람들이고 시민들이 주의력 깊은 고용주 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직도 일부 지역에 보스 정치가 여전 하지만 언제까지 계속 되겠습니까. 그래도 정당은 정책 대결로 가야만 미래가 열립니다.” 레이건은 건국 2백주년 해인 그해 9월 21일자 방송에서 왜 정치을 하게 되었으며 미국은 어떤 나라인가를 확신에 차 차분히 설명했다.

“미국이 앞으로 2백년 후에도 확실히 자유로운 것임을 다시 알려 드립니다. 2백년전 워싱턴 장군은 프랑스 라파에트장군의 미 독립군은 어려움속에서 어떻게 그렇게 사기높게 싸울수 있는가의 물음에 대한 대답 했습니다.

이곳에는 자유가 있고 혼자 생각하고 살수있는 장소가 있고 무엇보다 사랑을 함께 나눈 친구들과 함께 살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이말에 동의 하면서 우리나라 국민이 나를 종교 정치적 신념을 떠나 현재의 나 자신으로 받아주는 것을 제일 좋아 합니다.

바늘, 쇠고기을 사러 가서 줄을 서지 않아도 되고 편지를 검열받지 않으며 비밀경찰이 친구와 이야기 하는 것을 도청하지 않는 그런 나라인 미국이 ‘인류의 희망’이기에 나는 미국을 사랑하고 지키려고 합니다. “

레이건의 이런 투명한 미국사랑정신은 1981년 그를 제40대 대통령으로 당선시켰다. 레이건의 ‘손수 쓴 원고’에는 그런 나라의 첫자리에 가는 그길이 있다.

입력시간 2002/04/03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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