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판이 뒤집힌다고?] 정개계편…물밑은 이미 진행중

한나라당을 탈당한 박근혜 의원의 ‘신당 창당’ 선언으로 점화된 정계 개편 논란은 ‘노풍’의 주인공인 노무현 민주당 대선 후보의 가세로 3월 한달간 정가의 핫 이슈로 부상했다.

그러나 박근혜 의원의 ‘영남 후보론’이 노풍에 밀려 수그러 들고, 노 후보의 정계 개편 주장마저 당 안팎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히면서 정계 개편 논란은 수면 아래로 가라 앉을 기미를 보이고 있다.

여기에 심각한 내홍 상태를 겪던 한나라당도 비주류와 소장파에 밀려 이회창 총재가 당초 고집을 꺾고 당ㆍ대권 분리와 집단 지도체제 도입을 전격 수용, 전력 재정비에 들어 갔다. 천지개벽 할 듯 소용돌이 치던 정가가 일단 외견상으로는 소강 상태에 돌입한 것이다.


정계개편은 시작됐다

하지만 정가에선 ‘이미 정계 개편은 시작됐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을 뿐 수면 아래에선 벌써 지역ㆍ정책ㆍ계파간의 이합집산이 발 빠르게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정중동(靜中動) 상태에서 정계의 개편 작업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정치계의 추이 변화를 살피며 자신들의 정치적 이해 타산을 계산하는 ‘주판알 굴리기’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조율 작업이 마무리 되면 국내 정가는 1990년 6월 3당 합당에 맞먹는 초대형 정계 개편이 이뤄질 것이라고 소문이 파다하게 나돌고 있다.

현재 정계 개편의 가장 유력한 추진 동력은 민주당 노무현 고문과 박근혜 의원이다. 여기에 YS를 필두로 한 민주계가 촉매 세력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노무현 고문은 노풍이 무서운 기세로 세를 확장하던 3월 20일 “민주당 후보가 되면 한나라당의 범 민주 세력을 통합하는 정계 개편에 착수할 계획”이라고 밝혀 정가에 파문을 일으켰다. 노 고문은 경선 직전까지 사석에서 “이번 대선에서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에 승리하려면 현재의 민주당 구도로는 힘들다”는 의견을 줄곧 피력해 왔다.

노 고문은 정권 재창출을 위해서는 지방 자치제 이전에 야당의 개혁적 인사들을 포함한 범 민주 세력이 하나가 되는 정계 개편을 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노 고문이 말하는 민주 세력이란 전두환 독재 정권의 서슬이 시퍼렇던 1980년대 중반 DJ의 평민당과 YS의 민주당으로 갈라지기 이전의 통합 양당 시절인 신한민주당의 멤버들을 지칭한다.

현재 민주당과 한나라당으로 뿔뿔이 흩어져 있는 이들을 신민당 때의 구도처럼 재결합, 12월 대선에서 현재 민정계가 주축이 된 한나라당에 맞서자는 게 정계 개편의 골격이다.

이런 노 고문의 구상에 주목하게 된 것은 민주당 대선 경선에서 예상치 못했던 ‘노풍’이 불기 시작하면서 부터다. 그간 민주당내에서 조차 ‘일개 의원의 실현 가능성 희박한 대안’ 정도로 취급됐던 노 고문의 정계 개편 구상이 노 고문의 경선 약진과 함께 비중이 달라진 것이다.

여기에 공교롭게도 민정계가 중심이 된 주류측 의사에 따라 움직이는 한나라당 이 총재의 당 운영 문제가 비주류와 소장파의 강력한 견제를 받기 시작하면서 노 고문의 정계 개편은 더욱 힘을 얻기 시작했다.

또한 앞서 이 총재의 제왕적 체제를 비판하는 박근혜 전 부총재가 한나라당을 탈당하며 신당 창당을 선언한 것도 이런 정계 개편 논란을 불붙게 하는 계기가 됐다.

물론 노풍이 일어나면서 상대적으로 박 의원의 신당 창당을 통한 정계 개편 시나리오는 다시 약발이 떨어진 상황이다. 그러나 아직 박 의원은 정계 개편에 대한 신념이 확고해 민주당 경선이 완료돼 후보가 결정되면 박 의원이 다시 주요 변수로 작용할 개연성이 높다.


예사롭지 않은 YS 움직임

한나라당이 최근 노 고문의 정계 개편에 주목하고 있는 것은 정가 주변에서 노 고문에게 긍정적인 사인을 보내는 것이 자주 목격되고 있기 때문이다. 정계 개편의 실질적인 키를 쥐고 있는 YS가 노골적으로 노 고문의 손을 들어줄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YS의 대변인 역할을 하는 박종웅 의원은 3월 22일 “동교동과 상도동 이전의 통합 야당 시절로 돌리자는 노 고문의 주장은 지역 감정 해소의 명분이 있는 만큼 광범위한 지지를 받을 것”이라며 “김 전 대통령은 노 고문에게 호감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그간 DJ에 대해 독설을 퍼붓던 YS가 민주당 노 고문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정가에서는 어떤 형태든 정계 개편이 벌어진다면 YS의 역할은 상당할 것이라는 게 공통적인 의견이다.

구 신민당 구도로의 정계 개편을 염두에 두고 있는 노 고문에게 뿐만 아니라 한나라당 이 총재에게도 YS는 무시할 수 없는 세력이다. 당초 예상한 이인제 고문이 아닌, 영남 출신인 노무현 고문이 민주당 대선 후보가 될 경우 YS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가 영남 지역의 대세를 가를 주요 변수가 되기 때문이다.

또한 YS가 전면적인 정계 개편에 동참할 경우 한나라당내 YS의 계보 의원들까지 출당할 가능성이 있다. 이렇게 될 경우 한나라당은 6월 지자체 선거는 물론이고, 대선도 직접적인 타격을 입게 된다.

노무현 고문은 이인제 고문으로부터 정계 개편 문제로 집중 공격을 받는 상황에서도 3월 28일 전주 TV 토론회에서 “조만간 YS에게 (정계 개편에 대한)제스처를 취하겠다”고 말했다. 노 고문은 민주당 후보로 확정되면 맨 먼저 상도동을 예방하겠다는 뜻을 YS측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져 노 고문과 YS간에 상당한 교감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노 고문이 최근 경남 지구당 간담회에서 “(내가 추진하는 정계 개편은)민주당 성향의 한나라당 의원들이 민주당에 들어오는 것이며 이미 통화가 시작됐다”고 말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시각이다.

노 후보는 차후 이 발언이 문제가 되자 “전화 통화가 아니라 상징적 의미로 공감대가 형성됐다는 뜻”이라고 한발 물러 섰지만, 정작 통화 대상자로 지목된 한나라당 두 K의원은 “노 고문의 선전을 축하한다는 인사 내용의 전화 통화는 했다.

하지만 정계 개편 이야기는 한 바 없다”고 밝혀 당사자들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실제 정계 개편이 물밑에서 서서히 진행되고 있을 것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국민적 공감대가 성패 좌우

하지만 아직 변수는 상존한다. 지금 전개되는 정계 개편은 강자가 약자들을 포용하는 흡수식이 아닌, 각자가 원점에서 새로 출발해 더 큰 하나가 되는 통합 방식이다.

노 후보는 “정계 개편이 이뤄질 경우 후보를 포함한 기득권을 포기하겠다”고 밝혔지만 당내 경선을 통해 선출된 대선 후보 자리를 내놓는다는 것은 개인 의지만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다.

또한 그간 DJ에게 적대적 감정을 갖고 있던 YS가 사실상 민주당 중심의 정계 개편에 어느 선까지 참여 하겠느냐도 관건이다. 하지만 이보다 근본적인 과제는 과연 기존 정치인들 간의 이합집산식 정계 개편이 국민들에게 얼마나 공감을 줄 수 있느냐가 정계 개편의 성패가 가를 것으로 보인다.

송영웅 주간한국부 기자

입력시간 2002/04/04 16:23


송영웅 주간한국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