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판이 뒤집힌다고?] 인터뷰/ 정동영 후보

"난 경선 특허권자, 끝까지 간다"

파국 직전까지 갔던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이 전북ㆍ경남 경선을 기점으로 어렵사리 제 궤도를 찾았다.

주간한국은 큰 표차로 최하위를 달리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혼신을 다하는 ‘아름다운 꼴찌’ 정동영(49) 후보를 만나 경선 뒷이야기를 듣는 자리를 마련했다.

정 후보는 “경선이 노ㆍ이 양강 구도로 진행되면서 표가 안 나와 자존심이 상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고 고민을 털어 놓으며 “앞으로 본격적인 정책 대결이 시작되면 판세는 달라질 것”이라고 자신감의 끈을 놓지 않았다.

정 후보는 “노 후보의 정계 개편 주장은 3김식 구태의연한 발상이며, 이 후보의 음모론 주장 역시 근거 없는 트집잡기에 불과하다”고 비난했다. 정 후보는 “경선제 도입을 주장한 당사자로서 끝까지 깨끗한 경쟁을 벌이겠다”고 다시 한번 다짐했다. 다음은 정 후보와의 차량 동승 인터뷰 내용.


“정책ㆍ비전으로 검증받겠다”


- 민주당 경선이 가까스로 파국 위기를 벗어났다. 당시 꼴찌임에도 끝까지 경선에 참여 하겠다고 밝혔는데.

“국민 경선이라는 참여 정치를 통한 국민정당화, 전국 정당화 실현은 오랜 정치적 소신이다. 이것은 국민에게 외면 당하던 민주당을 살리는 유일한 대안이었다.

국민 경선 도입을 처음 주장해 여기까지 밀고 온 사람으로서 뜻대로 안 된다고 중도에 포기할 수 없었다. 노 후보와 단둘이 남는다 해도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할 생각이었다.”


- 경선 직전 정 후보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3위 권을 유지했다. 그런데 막상 경선이 시작되고 보니 최하위권으로 밀렸다. 원인이 무엇인가.

“민심과 당심 불일치의 결과다. 선거는 조직과 운동이 생명이다. 선거 자금의 투자없이 당내 선거에서 이기기 힘들다. 그런데 다른 후보들과 달리 아무런 조직 없이 최소의 자금으로 경선을 치르고 있다. 그 결과다. 다시 말해 나는 ‘불공정한 마라톤’을 하고 있는 셈이다.”


- 선두권과의 표차가 많이 나는 종합 3위인데.

“솔직히 자존심이 상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이인제 노무현 두 후보에 초점이 쏠리다 보니 상대적으로 손해를 많이 본다. ‘내가 이 정도로 표를 안 나올 정도는 아닌데’ 하는 생각에 잠을 못 이룬다.

앞서 사퇴한 후보들도 이런 자존심 때문에 경선을 포기했을 것이다. 하지만 본인은 그 사람들과는 다르다. 오늘날 민주당 대선 경선을 있게끔 만든 경선 특허권자로서 마지막까지 경선을 지킬 것이다.”


- 다소의 잡음에도 불구하고 국민 경선이 민주당의 지지도를 끌어 올리는데 큰 역할을 했다는 당 안팎의 평가가 있는데.

“이번 민주당 경선은 본인 정동영이 아니었으면 실시되지 못했다. 지난해 11월 김 대중 대통령이 당 총재직을 사퇴한 다음날 열린 정치개혁 공청회에서 ‘김 대통령이 떠난 민주당을 살릴 방법은 10만 명이 참여하는 국민 경선제 밖에 없다’며 경선제 도입을 제일 처음 주장했다.

당시 대부분의 간부들은 ‘이상적이지만 현실성이 없다’며 동조하지 않았다. 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실시된 국민 경선제는 결국 ‘이회창 대세론’을 단숨에 날려 버리는 엄청난 성과를 가져왔다.

만약 민주당이 과거처럼 당원 대회만 했으면 지금 어떻게 됐겠는가. 국민들이 민주당의 경선을 보면서 한나라당을 낡은 정당으로, 이회창 총재는 낡은 정치인으로 생각하게 만들었다. 이제 민주당에 눈을 돌렸던 사람들이 다소 돌아오고 있다.”


- 일부에서는 첨예하게 대립하는 이ㆍ노 후보의 양자 대결에 밀려 정 후보의 존재가 상대적을 위축되고 있다는 시각이 있는데.

“솔직히 억울한 점이 많다. 사과나무를 심은 사람(경선을 하자고 주장한 사람)은 여기 있는데, 정작 그 과실은 다른 사람(노무현 후보)이 가져 가려는 상황이 됐다.

하지만 사과나무 전체를 뽑아 버리는 잘못(경선 중단)은 막아야 한다는 생각에 ‘경선 지킴이’ 역할을 했다. 그러다 보니 양 후보의 공방 사이에서 내 자신의 정치적 비전을 제대로 밝히지 못했다. 이제 경선이 다시 제자리를 찾은 만큼 정책과 비전으로 당당히 검증 받고 승부하겠다.”


정계개편은 ‘구태, 음모론은 ‘트집잡기’


- 노무현 후보의 정계 개편 주장과 이인제 후보의 음모론에 대한 정 후보의 개인적 생각은 어떠한가.

“노 후보와는 정책적인 부분에서 비슷한 점이 많지만, 노 후보의 정계 개편에는 찬성하지 않는다. 노 후보가 말하는 정계 개편은 새로운 비전이 아니라 ‘야당 의원 빼내기’에 다름 아니다.

현 시점에서 야당 의원이 합류할 가능성도 별로 없지만, 설사 한 두 명이 온다고 해서 대선에서 얼마나 도움이 되겠는가. 이런 식의 정계 개편은 구태의연한 3김식 발상이다. 시기도 적절치 못하다. 경선을 완성한 후는 생각해 볼 수 있다.

또한 이인제 후보가 쟁점화한 ‘음모론’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국민들은 아마도 이 후보의 주장을 ‘트집 잡기’ 정도로 생각할 것이다.”


- 노 후보가 3월 28일 전북지역 TV 토론회에서 ‘YS에게 모종의 제스처를 보내겠다’고 공식적으로 발언했는데.

“YS 같은 구시대 정치인들이 정계에 복귀하는 식의 과거 회귀는 분명히 반대한다. 백해무익하다.”


- 노 후보가 예상외의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데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연구 과제다. 노 후보는 당초 경선을 찬성한 사람이 아니다. 그런데 지금 그가 경선의 최대 수혜자가 됐다. 태풍이 다른 곳에서 불었다.”


- 정 후보 자신은 경선 과정에서 불법 행위 등으로 손해를 본 적이 없나.

“국민들은 잘 모르겠지만 첫번째 경선지인 제주에서 억울한 일을 당했다. 솔직히 제주를 ‘정동영 태풍’의 진원지로 삼고 총력을 다했다. 그리고 당시 상당한 바람의 조짐을 확인했다.

그런데 경선 몇일 앞두고 제주 대의원들의 가가호호에 ‘정동영은 여자 문제가 복잡하다’, ‘부당한 축재를 했다’는 내용의 흑색 선전물이 일제히 뿌려졌다. 어느 세력인지 모르지만 비열한 공작정치에 정동영 태풍이 일어나려다 소멸 했다. 제주에서 이런 일만 없었으면 지금 경선은 판이하게 달라졌을 것이다.”


- 정 후보는 경선 직전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후보 등록비(2억5,000만원)를 포함해 3억3,000만원을 썼다고 했다. 경선 한 달여가 지난 현재까지 쓴 선거 자금은 얼마나 되나.

“다른 후보와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초라한 경선을 치르고 있다. 돈을 거의 안 들이고 운동을 하고 있다. 그래서 정동영의 표는 그야말로 ‘소금 같은’ 표다. 진짜 의인들이 주시는 표다. 후보 등록비를 포함해 어림잡아 올해 들어 약 4억원 정도 쓴 것 같다.”


- 한 때 정 후보의 서울시장 출마설이 나돌기도 했고, 실제 당내에서 ‘경선 지킴이역을 톡톡히 한다‘며 호의적인 시각이 많다. 차기를 노리고 있나.

“‘차기를 노린다’는 소문 때문에 큰 손해를 보고 있다. ‘정동영은 다음 번에 하고, 이번에는 될 사람을 밀자’며 내 지지자들 조차 1위 표는 타 후보에 주고, 2위 표만 주는 경우가 허다하다. ‘차기’라는 말에 노이로제가 걸릴 지경이다.

지금은 오직 경선에만 전념할 뿐이다. 경선이 성공해야 민주당이 살고, 민주당이 살아야 정권 재창출이 가능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경선을 국민적 축제로 성공리에 마치는 것이다.”


“정치개혁 이뤄낼 서민 후보”


- 앞으로 경선 전망을 어떻게 보나.

“그 동안 후보들의 잇단 사퇴로 경선판이 깨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 때문에 후보간에 제대로 된 정책 대결을 펼치지 못했다. 본인은 정치 경력은 많지 않지만 국정 운영에 대한 구체적인 비전을 갖고 있는 사람이다.

또한 17년간 기자로서 생활하며 서민들과 고락을 같이한 유일한 서민 후보다. 국제적 감각도 누구보다 앞선다. 앞으로 한달간 경선은 엄청난 변화와 곡절이 있을 것이다. 또 한차례 요동칠 것이다.

개인적으로 유권자의 절반이 모여 있는 수도권에 기대를 걸고 있다. 국민들은 개혁을 원하고 있다. 그리고 그 개혁은 정동영만이 제대로 이뤄낼 수 있다는 것을 국민들은 알고 있다.”

전주=송영웅 주간한국부 기자

입력시간 2002/04/04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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