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의 봄봄봄] 봄바람·돈바람…여의도 24시

1,000포인트 대세론에 증시 후끈…

증권사 객장에 애기 울음소리가 들리면 주식시장의 과열을 알리는 신호탄이라는 것이 증권업계의 통설이다.

그러나 그 과열 정도를 파악하려면 일단 아기가 울기 시작할 때 ‘아줌마’의 태도를 잘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 증권가의 ‘아기 업은 아줌마론(論)’ 최신 버전이다. 우는 아이를 달래도 그치지 않을 경우, 아기를 데리고 나간다면 증시가 꼭지에 이르기까지는 아직 한참 남은 것으로 봐야 한다.

만약 우는 아이를 달래다 엉덩이라도 때린다면 주가가 80% 이상 올라 위험 수위에 육박한 것을 의미한다. 또 때려도 울음을 그치지 않는 아기를 증권사 여직원에게 맡긴 채 벌그스름한 얼굴로 상담을 계속 한다면 이는 필시 ‘상투’라는 것이다.


‘부자 되세요’ 덕담 타고 온 여의도의 봄

여의도의 봄은 객장에서부터 온다. 올해 화두인 ‘부자 되세요~’로 부터 출발한 여의도의 봄 소식은 주식시장이 2년(2000.3.29 종합주가지수 908.51) 만에 900선을 돌파하고 1000포인트를 눈 앞에 두면서 성큼 다가왔다.

우리나라의 국가신용등급도 외환위기 이후 4년 3개월 여 만에 A단계로 뛰어올라 세계 금융 메이저리그에 복귀했다.

여의도 증권 가는 일단 경기가 살아나고 기업실적도 호전되면서 1000선 돌파를 ‘대세론’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무엇 보다 주식을 사려는 시중의 유동성(3월말 기준 고객 예탁금 12조3.900억 원대)이 그 어느 때보다 풍부하다.

오히려 이제는 1000선 위에서 추가 상승이 가능할 것인지 ‘대안론’에 시장의 관심이 대거 옮겨가고 있다. 하지만 황사가 4월까지 몇 차례 불어 닥칠 것이라는 기상청의 예고는 여의도 시황에도 경고로 작용하고 있다.

이미 높아진 주가 앞에서 고민이 앞선다. 1000선 위에서 번번이 무너진 과거의 전례가 있어 더욱 조심스럽기 때문이다. 서울의 일부 객장에는 애기 업은 아줌마가 하나 둘 등장하면서 한 편으론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봄 볕에 더 검게 그을린다’는 속담처럼 지수가 단기간에 급등세를 탔기 때문이다. 외국인도 주춤하고 있는데다 금리인상이라는 현실적인 문제도 도사리고 있다.

‘이쯤에서 한 번 쉬었다 갈 것인가. 아니면 이대로 계속 올라가버릴 것인가’ 봄볕 가득한 여의도 증권 가는 요즘 남모를 춘곤증에 깊이 시달리고 있다. 단기 급등에다 2ㆍ4분기 반도체 D램 가격 조정 등이 맞물려 당분간 조정이 불가피하다는 목소리도 흘러나온다. 오히려 월드컵이 열리는 상반기 내에 큰 장이 올 것이라는 관측도 만만치 않다.

그러나 대부분은 아직 객장에 애기 우는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는 점을 더 주목하고 있다. 경기회복과 함께 호전된 기업실적, 한국 시장의 선진국 편입 등으로 국내 주식 시장이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지수대의 대세 상승론, 그 ‘장밋빛 전망’이 더 힘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강남 객장에 강아지 안은 주부의 등장

굿모닝 증권의 이근모(47) 전무 겸 리서치센터 본부장은 최근 주가가 탄력이 붙으면서 봄기운도 느낄 틈 없이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 전무는 9ㆍ11 테러 사태 이후 검은 먹구름이 우리 증시를 둘러싸고 있던 지난해 10월 증권업계에선 이례적으로 경제계에선 제일 먼저 올해 우리경제의 봄을 예견한 인물. 그는 지난해 가을 ‘우리경제의 빠른 경기회복과 내년 상반기 주가 1000 돌파 전망’ 보고서를 내놓고 ‘대세 상승론’의 굼 불을 지폈다.

증권가에선 그의 과욕어린 낙관론에 혀를 내찼지만 6개월이 지난 현재 대다수가 쓰린 가슴을 어루만지는 분위기다.

“당시 주가지수가 550선으로 그때 투자만 했어도 지금 70~80%를 먹은 셈”이라고 말하는 이 전무는 앞으로 2개월간 조ㆍ중ㆍ석식 비즈니스 약속이 외국 투자자 등과 빽빽이 예약 돼 있을 만큼, 각종 투자상담과 해외 마라톤 컨퍼런스 콜로 밤낮을 잊는 채 봄 열기에 휩싸여있다.

강남 아파트 밀집지역에서 근무하고 있는 홍진우 대우증권 개포 지점장은 최근 출근 때 마다 어떤 넥타이를 매야 할 지 고민이다. 증시에 봄이 오면서 오랜 겨울잠에서 깨어난 ‘개미’고객들의 지점 나들이가 눈에 띠게 늘었기 때문이다.

그는 문화수준이 높은 강남 주부 고객들에게 밝고 색깔 있는 이미지를 남기기 위해선 봄 내 음 물씬 풍기는 넥타이를 고르느라 거울 앞에서 5분간 골몰해 한다.

홍 지점장은 “최근 지수 700~800포인트 사이에 기존 투자자들의 추가 주문이 부쩍 늘었고 애견(愛犬)을 안고 객장을 찾아온 미시주부 등 신규 고객은 80명정도 늘었을 정도”라며 “현재 기관장세라는 점과 1000포인트를 목전에 두고있기 때문인지 개미들로선 신규투자에 있어선 다소 조심스러운 반응”이라고 설명했다.

강남 지역 중 보수 층이 가장 많이 살고 있다는 서초동의 봄 바람은 우선 기관 투자자와 중년 남성 층의 움직임만 감지될 뿐, 한 동안 부동산 투자에 마음을 뺏긴 주부들은 가슴만 설레는 분위기다.

신윤균 대우증권 서초지점장은 “주가지수 900~1000대 사이에서 조정기와 위험부담을 고려한다면 ‘더블’에 익숙한 손 큰 사모님들에겐 수익 10%라는 점이 미풍으로 느껴질 뿐”이라며 봄 예찬의 성급한 예단을 가로 막았다.

여의도의 봄은 서울보다 지방에서 체감온도가 더 뜨겁다. 최근 2개월 전 여의도 본점에서 부천지점으로 자리를 옮긴 김경용(41) 현대증권 부천점 차장은 퇴근할 시간도 없을 만큼 바쁜 봄날을 맞고 있다. 이동인구가 높은 부천은 증권계좌에 2,000만~3,000만원을 예금해놓고 이를 굴리며 생활하는 전문 ‘주식 꾼’들이 수도권 지역에서 가장 많이 분포해 있는 곳 중 하나.

김 차장은 “월드컵 경기와 대선 등을 앞둔 올해 샐러리맨의 화두인 ‘부자 되는 정도(正道)’를 풀어줄 해법으로 증시 뿐 이 없다는 공감대가 이미 자리를 잡은 상태”라며 “데이 트레이딩의 경우를 제외하고 최근 추천종목을 물어오는 주부고객 들의 객장 방문상담으로 정신이 없을 정도”라고 혀를 내둘렀다.

또 여의도 증권업계 관계자들이 매시간 서로 정보를 교환하는 메신저 소식통에 따르면 최근 지수 900돌파 이후 대전의 한 지점에서는 인근 파출소에서 40대 중반의 경찰관 2명이 직접 객장을 찾아와 계좌를 만들었는가 하면 부산의 한 지점에는 공사판에서 일하는 일용근로자 한 사람이 목돈을 들고 와 주식투자를 했고, 울산에서는 배를 타는 어부가 직접 객장에 나타나는 등 여의도를 바라보는 시각은 한층 뜨거워져 가는 분위기다.


종목이 아닌 봄 시장을 사라

치열하게 하루 장을 마감한 여의도는 어둠이 깃 들면서 화려한 네온사인에 휘감긴다.

여의도 증권 맨 들은 장 마감 후 1차로 인근 빌딩 지하의 찜질 방이나 사우나, 헬스 클럽 등을 찾는 경우가 대다수다. 그만큼 그들이 받는 봄 스트레스는 주가지수가 오르면 오를수록 동반 상승한다.

일부는 요즘 여의도에 번지고 있는 단학 선원을 찾는 경우도 눈에 띤다. 찜질 방이나 사우나 내부에서도 이들 대화의 주제는 오랜만에 들뜬 봄 증시에 대한 소고다.

“올해 지수의 끝은 과연 어디일까”, “개미들도 요즘은 많이 영악해 졌다”, “모 증권사 여의도 객장에선 외부로부터 들여오는 자금도 선별해 받는다”, “선거철까지 이 같은 장 분위기가 그대로 갈까” 등 희망 섞인 기대감과 점차 달궈지는 증시에 대한 조기 우려감이 분출하는 땀으로 동시에 섞여 나온다.

저녁 6시가 넘으면 고기집이나 일식 집은 항상 붐 빈다. 여의도 백화점과 백상 빌딩 등 증권 가 주변의 웬만한 음식점들엔 고정 단골 고객들로 가득 매워진다. 그러나 최근 들어선 이들의 저녁식사도 강남진출로 바뀌고 있다.

그 만큼 여의도 경기가 살아나고 있다는 반증이다. 증권사 한 관계자는 “IT주가가 뜨던 1999년 하반기 이후 최근 700선을 돌파하면서 2년 여 만에 다시 여의도 맨 들의 밤 문화를 즐기기 위한 강남진출이 활발해 지고 있다”고 말했다.

저녁 8시께 면 영락없이 발길이 향하는 곳은 주점이다. 여의도의 단란주점 수는 대략 200여 개. 그 중에서도 손꼽히는 ‘베스트 10’중 가장 인기 있는 쌍마 빌딩 지하의 룸 살롱 ‘대하’에는 평일에도 1주일 전에 이미 20여 개의 룸이 줄줄이 예약돼 있을 정도다.

또 ‘윈저’는 ‘북창동’식 고객접대로 최근 떠오르는 룸 살롱. 이 곳의 한 여 종업원은 “증권 가에 모처럼 봄바람이 부니 증권 맨 들의 어깨에도 힘이 들어가는 느낌”이라며 “강남 룸 살롱의 여 종업원 들이 여의도로 몰려올 날 도 머지 않은 것 같다”고 지수 1000대를 향해 가는 여의도의 들뜬 분위기를 전했다.

경기를 선행해 움직이는 것이 투자심리를 나타내는 주가지수라면 봄날의 여의도 밤은 이미 지수 1000선을 돌파한 듯 뜨거운 열기가 넘쳐 흐른다.

장학만 주간한국부기자

입력시간 2002/04/04 17:05


장학만 주간한국부 local@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