南·北·美 '해빙의 계절'

임동원 특보 방북으로 대화재계 모색, 북한도 관계개선에 전향적 자세

남북 대화를 통해 경색된 북미 관계가 해빙될 것인가.

임동원 대통령 외교안보통일 특별보좌관이 4월 3일 대통령 친서를 휴대하고 평양을 방문함으로써 그 동안 답보 상태였던 남북 관계가 일단 복원될 것으로 보인다. 또 미국과 북한은 뉴욕에서 두 차례(3월 13일과 21일) 접촉을 갖고 북미 회담 재개문제 등을 논의했다.

또 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 인도네시아 대통령이 3월말과 4월초 남북한을 교차 방문해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각각 만나 간접적으로 대화를 중계했다.


임 특보, 김위원장 답장문제 거론 시사

특히 정부는 임 특보의 방북에 상당한 기대를 걸고 있는 듯하다. 이와 관련, 정세현 통일부 장관은 3월 29일 “임동원 특사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9ㆍ11 테러사건 이후 국제질서와 대미 관계개선 실마리를 풀어야 한다는 설명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 장관은 "그 동안 북측 실무자들에게 이 같은 얘기를 전달했지만 북한 체제의 특성상 위로 올라가지 않은 것 같다”며 “김 위원장에게 설명해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도록 하겠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정 장관은 “2003년에는 북한의 미사일 시험발사 문제라든지, 제네바합의 이행 문제 등이 국제 쟁점화될 가능성이 있고 이르면 올 8월부터 또 문제가 복잡해질 가능성이 있다"며 “우리가 지금 나서서 미국과 북한을 잘 설득하고 한반도 위기를 예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 특보도 한나라당을 방문, “지난해 가을부터 한반도에 위기가 조성되고 있다는 이야기가 많이 나왔고 이는 국내보다 국외에서 더 심각하게 인식되고 있다”면서 “북한이 미국과 대화에 나서는 것이 득이 된다는 점을 설득하고 설명하겠다”고 말했다.

임 특보는 또 “현재 진행중인 5개 사업인 이산가족 상봉, 금강산 육로관광, 경의선 복구, 개성공단 건설, 남북간 신뢰구축 등을 집중 논의할 것”이라며 “6ㆍ15 남북합의를 준수토록 북한에 촉구할 것”이라고 밝혀 김 위원장의 답방 문제를 거론할 것임을 시사했다.

하지만 남북한의 현안들이 임 특보의 방북으로 쉽게 해결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일단 대화 재개의 상징적 의미가 중요하며 이를 통해 우리 정부나 북한이 모두 조지 W 부시 미국 정부의 대북 강경 정책이 변화하기를 기대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3월 20일 뉴욕에서 이루어진 잭 프리처드 미국 한반도 담당 대사와 박길연 유엔 주재 북한대표부 대사의 접촉에서 북한은 “북미대화에 앞서 적대적 대북정책을 먼저 철회하라”는 지금까지의 요구를 반복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또 프리처드 대사 이상의 고위급 대화를 희망하는 ‘대화 격(格)’ 상승 요구나 미국이 제시한 핵, 미사일, 재래식무기 등 3대의제에 대해 “일방적이고 전제조건적”이라는 비난도 하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 대화거부자세에 변화

김대중 대통령도 3월 29일 “단언할 수는 없지만 미국과 북한도 대화의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 같다”면서 “북한이 지금까지의 대화거부 자세에서 대화하는 방향으로 태도를 바꾼 것으로 추측이 된다”고 언급했다.

리처드 아미티지 미국 국무부 부장관도 3월 28일 한국특파원단과의 간담회에서 “(북한이) 대화 의지를 분명히 했다”고 밝혀 북한측이 대화에 전향적인 입장을 보였음을 시사했다.

만약 북미 관계가 해빙국면에 들어가면 남북 관계도 역시 빠른 속도로 호전될 수 있다.

이는 지난 10년간의 한반도 정세 변화를 통해 이미 입증된 것으로 구 소련 붕괴이후 북미 회담이 활발히 진행돼 김용순 노동당 비서의 뉴욕 방문(1992년 1월)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남북기본합의서가 체결(1991년 12월)되고 발효(1992년 2월)됐다.

1993년 북미가 전쟁 위기 끝에 북미공동성명(6월11일)을 체결하고 1994년 제네바 핵 합의문에 서명(10월 21일)했을 때 남북정상회담 논의(1993년 6월과 94년 6월)가 활발했다.

1999년 미국이 대북 접근방식을 고립에서 대화와 타협 노선으로 전환하는 페리보고서를 준비하는 때 남북 차관급회담 등 교류가 활발했으며 2000년 북미가 미사일 문제와 제네바합의 이행 문제를 논의하는 가운데 남북은 평양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6ㆍ15공동선언을 발표했다.


북미간 본격 대화시기 예단 일러

그러나 북미간 대화재개 조짐에도 불구, 실질적인 의미의 북미 대화가 언제 시작될지는 예단하기 힘들다.

북미 양측이 뉴욕채널을 통해 프리처드-김계관 본회담 착수를 위한 예비접촉을 계속해 나가겠지만, 북한의 돌발성과 미국내 대북강경파의 입김 때문에 언제든지 북미관계가 돌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미티지 부장관은 “미국은 북한 정권을 전복시키거나 김 위원장을 제거할 방침이 없다”면서도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 이란과 함께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한 것은 지극히 당연하며 북한의 미사일 수출 선박을 나포하거나 격침시키는 것이 미국이 갖고 있는 대안”이라고 강조했다.

아미티지 부장관은 또 “각국들은 테러 자금줄 차단 등에 적극 참여하려 했고 군대를 제공하고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등에 원조 물자 수송과 의료 지원을 제공하기도 했으나 북한은 이중 어느 것에도 참여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때문에 북한의 최근 태도변화가 미국의 가중되는 대북압력을 일단 모면하기 위한 ‘선남후미’(先南後美)의 전술적 변화라는 시각도 나오고 있다.

때문에 뉴욕채널이 원활히 가동되더라도 프리처드-김계관 회담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의제조율 등에서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 정부 당국자들도 “북미간에 실질적인 대화가 성사되기 까지는 시간이 좀 필요하며 너무 성급히 크게 기대할 상황은 아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북한측의 남북, 북미대화 재개에 대한 정확한 입장은 임 특보의 방북 이후 분명히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입력시간 2002/04/04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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