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미의 우리풀 우리나무] 깽깽이풀

깽깽이풀이라니, 이름도 참. 얼마나 정다운 이름인지 불러만 보아도 가까워지고 그리고 즐거워질 것 같은 우리 꽃이다.

그리 깊지 않아 숲이기는 하지만 봄볕이 충분히 느껴지는 그런 숲가에 몇 포기씩 무리를 지어 피는 연보라 빛 꽃송이들을 만나는 행운이 있다면 이 또한 얼마나 아름다운지 절로 감탄이나며 이내 마음을 빼앗는 그런 우리 꽃이다.

하지만 이 땅에서 만나보기가 아주 어려운 귀한 꽃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꽃을 보면 더욱 애틋하다.

깽깽이풀은 매자나무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 풀이다. 가을부터 겨울 내내 지상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가 어느 봄날 느닷없이 작은 꽃망울들을 내어 보낸다. 그렇게 올망졸망 맺힌 꽃송이들은 아주 햇볕이 좋은 어느 날 갑작스레 꽃잎을 펼쳐내며 환하게 웃는다.

꽃이 피고 난 다음 마치 '쑥'하고 소리를 낼 것처럼 자라 오르는 잎새들의 모양도 매우 재미있다. 뿌리에서 하나씩 올라오는 잎새는 자주 빛을 띄며 서로 마주 보고 반으로 올라왔다가 이내 자루를 길게 올리고 잎을 펼쳐낸다.

깽깽이풀의 뿌리를 거두어 보면 그 연약하고 신비스런 꽃송이들을 지지하고 있는 뿌리치고는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굵고 빡빡한 부리와 수많은 잔뿌리를 가지고 있어서 땅 위로 드러난 부분보다는 땅속 부분이 더 크다는 느낌을 준다. 하긴 봄 꽃들이야 이렇게 땅속의 저력이 없었던 들, 모긴 겨울을 이기고 그리 훌륭하게 이른봄에 꽃을 피워내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깽깽이풀은 법적인 보호를 받을 정도로 희귀식물에 속한다. 거의 남한에서 없어진 것으로 알려졌지만 요즈음엔 희귀식물을 찾아내는 일반인들의 도움으로 자생지 몇 곳이 확인됐다.

하지만 자생지에 서식하고 있는 깽깽이풀 모두가 매우 위태롭다. 깽깽이풀이 없어진 이유는 몇 가지가 있지만 그 중 하나는 자연적인 조건의 변화 때문이다.

이 풀은 숲 속이기는 하지만 우거지지 않아 다소 볕이 드는 그런 곳에서 자랐지만 요즈음엔 너무 우거져 이런 곳을 찾기 어려워 자연적으로 조금씩 밀려나가는 것이다. 이렇게 불리한 상황에서 더욱 결정적으로 깽깽이풀을 궁지로 내몬 주체는 역시 사람들이다. 예전에는 이 식물의 뿌리를 약으로 쓴다 하여 모두 캐어 내갔고, 요즈음에는 그나마 드문 자생지에서 야생화로 팔기도 했다.

씨앗을 뿌려 조금만 기다리면 금새 많이 늘릴 수 있는데 말이다.

깽깽이풀이 자라는 모습을 보면 원래 있던 한 포기가 자라던 자리에서 줄을 지어 가며 새순이 돋아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 원인을 찾아보니 개미가 이 깽깽이풀의 씨앗을 물고 일정한 길을 따라 자기 집으로 가다 중간에 떨어트린 곳에서 싹이 난 것이 줄모양이 된 것이다.

왜 하필 개미는 깽깽이풀의 씨앗을 좋아할까? 씨앗의 표면에 밀선, 즉 꿀을 분비하는 선이 있어 개미들이 모이는 것이다. 씨앗에 날개도 없고 솜털도 없어 자신의 핏줄을 멀리 퍼트릴 방법이 없는 깽깽이풀이 개미의 힘을 빌리고자 만들어낸 지혜인 것이다.

깽깽이풀을 약으로 쓸 때에는 생약명으로는 모황련(毛黃蓮) 또는 선황련(鮮黃蓮)이라 부르며 줄기와 뿌리를 약으로 쓴다. 건위작용, 설사를 멎게 하고 열을 내리고 해독 작용이 있어 소화불량, 식욕감퇴는 물론 설사 이질 장염에 효험이 있고 구내염과 안질 등에 외용하기도 한다.

물론 화분에 키우거나 정원에 몇 포기 심어 놓으면 금새 보랏빛의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포기로 늘어나 아주 좋다. 때론 너무 뛰어나 사람의 손을 타는 것은 식물도, 사람도 마찬가지 인가보다. 그래도 깽갱이풀이 피어나는 봄의 숲 속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사

입력시간 2002/04/08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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