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식의 문화읽기] 왜 복고인가?

※ 다음은 영화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홈페이지에 마련되어 있는 ‘복고문화 기억력 테스트’의 문제들 중 일부이다.(http://www.waikikibrothers.co.kr/behind/old.htm) 잘 읽고 물음에 답하기 바란다.

(1) 흡사 라면을 닮은 모양을 하고 있으나, 끓여먹을 필요가 없다는 점에서 보통 라면과 틀리며, 스프가 들어있지 않다는 점에서 ‘뿌셔뿌셔’와 다르다. ‘뽀빠이’라는 명칭으로 불리기도 했다. (4점)

(2) 가가멜의 조수인 어린 꼬마 남자애의 이름은? (6점)

시험지 째려본다고 해서 답이 떠오를 리 없다. 막 바로 정답풀이에 들어간다. 1번 문제를 틀린 사람이 있다면, 1980년 이후에 출생한 신세대이거나 아니면 기억력 감퇴로 고생하고 있는 구세대일 것이다.

정답은 당연히 라면땅. 새로운 포장방식을 선보였던 ‘자야’까지 정답으로 인정한다. 2번 문제는 조금 어렵다. 스머프들을 괴롭히는 마법사 가가멜의 주변에는 고양이 아지라엘과 주근깨 투성이의 더벅머리 소년이 있었다.

그 소년이 바로 가가멜의 조수 스크러플이다. 심드렁했던 처음과는 달리, 어느덧 마음은 낡은 흑백사진과도 같은 지난 시절로 되돌아가 있다.

중앙아시아에서 건너온 황사가 온 세상을 누렇게 물들였던 2002년의 봄. 대중문화의 가장 주요한 키워드는 누가 뭐래도 복고(復古)가 아닐까 한다. 일반적으로 복고는 과거의 정치체제나 전통으로 되돌아간다는 의미인데, 파괴된 것을 본래의 상태로 고친다는 치유와 복원의 함의도 내포하고 있다.

서구에서는 세기말의 불안의식과 관련을 지으며 복고적인 움직임이 나타났고, 우리나라의 경우 1997년 IMF 구제금융을 계기로 복고풍이 본격적으로 가시화되기 시작했다.

‘더 어려웠던 과거’를 떠올리며 ‘어려운 현재’를 이겨내자는 것이 1990년대 후반기 복고의 컨셉이었는데, 복고의 열풍은 21세기의 문턱을 넘어 2002년 봄까지 이어지고 있다.

IMF를 졸업했다고는 하지만 일반대중의 마음 깊은 곳에 여전히 상처로 남아있음을 보여주는 문화적 표지인 셈이다.

복고의 물결이 가장 뚜렷한 영역은 만화이다. 작년부터 「꺼벙이」 「도깨비 감투」 「로봇 찌빠」 「두심이 표류기」 「철인 캉타우」 「고인돌 왕국」 등과 같은 1960-70년대의 작품이 복간되었으며, 최근에는 「로보트 태권 브이」가 25년 만에 재출간되기도 했다.

그 밖에도 순정만화의 고전인 「캔디 캔디」 「베르사이유의 장미」 「올훼스의 창」, 턱밑 회오리바람의 「마징가 제트」, 테즈카 오사무의 「아톰」 시리즈 등이 시간을 역류해서 우리를 찾아왔다.

영화 쪽에서는 「스타워즈」와 「ET」가 디지털 마스터링 작업을 거쳐 재개봉되었고, 60년대 한국영화의 촌스러운 분위기를 재현한 디지털 영화 「다찌마와리」가 우리를 한동안 즐겁게 했다.

어디 그뿐인가. 폴크스바겐은 뉴비틀을 내놓아 딱정벌레차에 대한 낭만적인 향수를 자극하고 있으며, 비틀즈(Beatles)나 아바(ABBA) 등의 편집 앨범은 음반업계의 불황을 비켜서 있다.

「단장의 미아리 고개」 등과 같은 악극(樂劇)은 메이저 방송국들의 후원 아래 확실한 효도상품으로 자리를 잡았고, 김민기의 뮤지컬 「의형제」는 ‘아이스께끼통’으로 상징되는 70년대의 풍경 속에서 한국현대사의 맥락을 되짚어내고 있다.

인터넷에서는 갤러그, 인베이더, 벽돌깨기, 테트리스 등과 같은 전자오락실 시대의 게임이 다시 등장해서 별도의 매니아층을 형성하고 있고, 서점에서는 괴도 루팡과 셜록 홈즈가 은근한 미소를 지으며 손짓하고 있다……

기억의 후미진 모퉁이에 숨어있던 과거의 흔적들이 현재를 향해 숨가쁘게 거슬러오고 있다.

복고는 문화생산의 주류인 386세대의 보수화 경향을 보여주는 전조일 수도 있고, 새로운 문화적 컨텐츠를 생산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제기된 상업적 타개책일 수도 있으며, 중장년층의 문화적 정체성 찾기의 과정에서 분출된 키덜트(kid와 adult의 합성어, 어린애 같은 어른)적인 양상일 수도 있다.

하지만 현재 진행중인 복고가 디지털 문화와 관련된 퓨전(fusion:이질적인 요소의 융합)적인 상상력에 기반해서 문화적 다양성을 마련해 가는 과정이라는 점만은 분명하다. 가치판단은 나중에 하더라도, 시간을 거슬러 온 다양한 과거들을 즐거운 마음으로 만나보는 것은 어떨까. 2002년 봄, 문화적 시간은 고물창고와 박물관 사이를 바람처럼 왕복하고 있다.

문화평론가

입력시간 2002/04/08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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