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경선 이념ㆍ노선 공방 점입가경

색깔 입히기, 갈데까지 가나?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과정에서 벌어지고 있는 노무현 후보와 이인제 후보간의 이념ㆍ노선 공방, 색깔론 시비,언론관련 발언 등을 둘러싼 논쟁이 갈수록 격화하고 있다.

대선후보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사활을 건 싸움인 탓인지 이 후보측은 모든 수단을 동원해 노 후보측을 몰아세우고 있다.

노 후보측은 절대로 밀릴 수 없다는 전략적 판단을 한 듯 이 후보측 공세에 대해 정면돌파를 시도하고 있다.


색깔론 불 지핀 이인제 후보

이 후보측의 색깔 공세는 3월 24일 춘천에서 열린 민주당 강원지역 대선후보 경선에서 이 후보가 아깝게 패하자 전면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강원 경선 패배 이전에 이 후보측은 ‘노무현 후보 1등 만들기’를 위한 정권적 차원의 음모가 진행되고 있다는 ‘음모론’을 제기했었다. 이 후보측은 이러한 공세가 제대로 먹혀 들어가지 않자 방향을 바꿔 노 후보에 대한 사상 검증을 시작한 것이다.

이 후보측은 우선 1988년과 1989년에 노 후보가 국회 발언 또는 현대 중공업 파업 현장에서 ‘노동자가 주인이 되는 세상을 만들자’‘재벌의 주식을 노동자에게 분배하자’‘재벌을 해체해야 한다’는 주장을 했다면서 이것을 노 후보의 급진 좌(左)편향적 경향으로 몰아갔다.

이에 대해 노 후보측은 당시는 노동자가 법적인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일방적으로 억압 받고 있었던 시대였다는 점을 강조한다.

노 후보측은 “당시 정부와 재벌의 일방적인 탄압에 맞서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라도 노동자를 편들어야 하는 시대적 상징성이 있었다”면서 “오히려 그 엄혹했던 시절에 용기 있게 나섰던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다”고 역공을 가하기도 했다.

노 후보는 한 라디오 시사프로그램에 출연해서는 “나는 기업에 대해 적대감을 갖고 있지 않다”고 해명하기도 했다.

이 후보측은 이어 이념ㆍ노선 공방의 초점을 노 후보측의 ‘자발적 팬 클럽’으로 알려진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노사모)’의 실체 문제로 옮겼다.

이 후보측은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이 대구(4월 5일), 인천(6일), 경북(7일) 등 ‘주말 슈퍼 3연전’을 앞두고 있었던 1일 노사모에 이적단체로 규정돼 있는 대학생 단체인 ‘한총련’이 조직적으로 참여하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 후보측은 내친 김에 ▦한총련에 대한 이적규정 철회와 합법화에 대한 입장 ▦노 후보의 민주 대연합 정계개편에 한총련, 민주노총, 민주노동당이 포함되는지의 여부에 대해서도 이념공세를 강화했다.

이 후보측 김윤수 공보특보는 주한미군 철수 문제와 관련, “90년 11월24일 서울 정동 세실 레스토랑에서 노 후보는 고 문익환 목사 등과 함께 공동으로 시국선언을 발표하면서 주한미군 철수와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노 후보측 유종필 공보특보는 한총련 이적규정 철회 문제에 대해 “사법부 판단에 맡길 일”이라고 말한 뒤 민주 대연합 정계개편에 한총련, 민주노동당 등이 포함되느냐는 공개질의에는 “열거된 단체들은 노 후보와 아무 관계가 없다”고 일축했다.

그는 노사모에 한총련 소속 학생이 참여하고 있다는 주장에 대해선 “노사모는 우리나라 최초의 자발적인 정치인 팬 클럽이며 직장인과 학생 등이 다양하게 참여하고 있다”며 “순수한 단체에 색깔 공세를 하는 것은 가슴 아프다”고 말했다.

노 후보측은 나아가 “이 후보도 1988년과 1989년의 국회 발언 등을 통해 주한미군의 존재의미를 재검토해야 하고 국가보안법도 시급히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을 한 적이 있다”고 공개하기도 했다.

“남이 하면 불륜이고 자기가 하면 로맨스냐”는 반론인 것이다. 노 후보는 주한미군 철수 주장 논란에 대해선 “주한미군 철수를 비롯한 여러 주장이 담긴 성명서에 서명한 것 같으나 당시는 광주학살에 대한 미국의 책임론이 제기되고 있었고, 국가적 자존심 때문에 미국에 강한 거부감도 있었으며 나도 그랬던 게 사실이며 그때 나는 재야단체 주장에 동조하고 있었다”라는 다소 장황한 ‘해명성’발언을 하기도 했다.


한나라당도 노후보ㆍ민주당 정면 공격

이 같은 상황에서 한나라당 이회창 전총재가 3일 “급진세력이 좌파적 정권을 연장하려 하고 있다”며 민주당 정권과 노 후보를 정면 공격하고 나서자 이념ㆍ노선 공방, 색깔 시비는 여야가 뒤엉켜 벌이는 이전투구가 돼 버렸다.

이 후보측은 이 총재의 시도를 비난하면서도 노 후보 장인이 한국전쟁 당시 ‘좌익 활동’을 했다는 전력을 문제삼는 ‘이중 플레이’를 마다하지 않았다. 노 후보측은 “한나라당이 더 수구적인지, 이 후보가 더 수구적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다”며 “이 후보는 한나라당 2중대 노릇을 하려면 아예 한나라당에 입당, 한나라당 후보가 되면 될 것”이라고 꼬집기도 했다.

노 후보 장인의 좌익경력 문제에 있어서는 당내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올 정도로 문제제기 방식이 이중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 후보는 대구지역 경선에 앞서 가진 합동 TV토론에서 “연좌제를 찬성하지 않으며 그런 느낌을 줬다면 유감”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토론장 밖에서 이 후보측의 공보팀은 기자들에게 노 후보 장인의 수감기록이 담긴 문건을 배포하고 있었다. 철저히 이중적 행태였던 것이다. 대구 경선에서 패하자 이 후보는 6일 인천 지역 경선부터 본인이 나서 유세를 통해 노 후보 장인의 좌익 경력을 문제 삼았다.

이 후보는 인천 경선 유세를 통해 “(노 후보는) 장인의 좌익활동이 드러나자 ‘부인을 사랑해서 결혼했다’고 했고 나 역시 감동했지만 대통령은 러브스토리의 주연을 뽑는 자리가 아니다”며 “대통령에게 가장 영향력 있는 영부인이 남로당 선전부장으로 7명의 우익인사를 살해하는 현장을 지켜보고도 전향하지 않고 교도소에서 사망한 사람의 딸이라면 70만 국군의 사기에 영향을 미치지 않겠느냐”고 공세 수위를 높였다.

이에 대해 노 후보는 장인문제에 대해 “내 장인은 좌익활동을 하다 돌아가셨지만 해방되던 해 실명해서 무슨 일을 얼마나 했는지는 모르겠다”며 “결혼 전에 돌아가셨는데 나는 이 사실을 알고 아내와 결혼했고 사랑한다.

여러분이 그런 아내를 가진 사람은 대통령 자격이 없다고 한다면 나는 후보를 그만두겠다”고 심경을 피력했다. 이를 두고 당내 일부에서는 “이 후보가 너무 나가고 있다”면서 “이렇게 되면 이 후보가 주장하는 이념ㆍ노선 검증이 한꺼번에 색깔시비가 되는 것 아니냐”고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이념공방 이어 언론관련 문제 제기

이 후보측의 공세는 이제 노 후보가 몇몇 기자와 저녁을 먹는 자리에서 했다는 ‘메이저 언론 국유화’‘동아일보 폐간’등의 발언으로 초점이 옮겨졌다. 그야말로 모든 것을 까발리겠다는 자세로 나오고 있는 것이다.

노 후보측은 물론 이 같은 공세를 ‘조작’이라며 이 후보측의 공격 뿐만 아니라 특정 언론이 부당하게 공격한다면 거기에 당당하게 맞서 싸우겠다고 천명하고 있다.

언론관련 발언을 둘러싼 공방은 노ㆍ이 두 후보의 차원을 넘어서 노ㆍ이 두 후보와 특정 언론 사이에 치고 받기식 싸움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고태성 기자

입력시간 2002/04/09 15:12


고태성 tsgo@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