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칼럼] '文' 우위의 사회…공무원부터 변해야

유교 문화권 국가 가운데서도 우리는 유별나게 문과를 우대한다. 세월이 가면 조금씩 나아지려나 기다려 보지만 예나 지금이나 크게 변함이 없다.

최근에 젊은 사람들의 이공대 기피 분위기가 심각해지자 언론들이 이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기 시작하였다. 나는 며칠 전에 이공대 출신으로 성공한 Q사의 대표이사를 만났다.

“내 세대로 충분합니다. 부모 만큼 아이들의 장래를 걱정하는 사람도 없지 않습니까? 나는 아이들을 이공대로 보내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남의 자식보고 이공대로 가라고 할 수 있습니까? 큰 아이는 법대를 갔고 지금 고시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 사회의 분위기이다. 캠페인을 전개하고 시끌벅적하게 떠들어 봐야 한 때의 바람에 불과하다.

얼마 전 서울 명문대 이공대생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 결과가 나온 적이 있다. 놀랍게도 217명의 조사 대상자 가운데 36%에 해당하는 78명이 각종 고시를 준비한 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 고시란 것이 사법고시, 변리사 그리고 공인회계사 시험이라고 한다. 표본집단에 대한 공정성을 따져봐야 하겠지만 이공대생들이 스스로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그리고 앞으로 한국 사회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날 것인가에 대한 의미 있는 조사였다.

우리는 이 사회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지, 왜 젊은 사람들이 이공대를 지원하는 것을 꺼리는지를 솔직하게 바라 볼 수 있어야 한다. 인간의 여러 가지 특징 가운데서도 아주 강한 점은 자기 이익에 충실한 존재라는 점이다.

한비자에 이런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뱀장어는 뱀을 닮았고, 누에는 뽕나무 벌레와 비슷하다. 뱀을 보면 누구나 다 놀라고, 뽕나무 벌레를 보면 소름이 오싹 끼친다. 그런데도 고기잡이들은 손으로 뱀장어를 만지고, 여자들은 손으로 누에를 만진다. 결국 이익이 된다며 누구나 맹분(孟賁)과 전저(專諸)와 같은 용사가 된다.’

이익이 되면 사람들은 그곳으로 몰려들기 마련이다. 이익이 되지 않으면 아무리 멋진 명분을 갖고 이야기해 봐야 소용이 없는 일이다. 앞의 설문 조사 결과에서 이공대생 스스로 위기에 처한 이유를 ‘84명은 공부한 만큼 사회에서 대우를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라고 답했고, 나머지 76명은 ‘엔지니어를 천시하는 사회적 풍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지금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지도층들은 대부분이 문과 출신들이다. 이들은 스스로 변화에 대해서 무척 소극적이다. 대표적으로 공무원 사회를 들여 다 보자. 행정직 출신들의 약진은 눈부시다. 자리가 생겨나면 행정직들은 밀어주고 끌어주면서 자기증식을 계속해 나간다.

이공대 출신들이 선택할 수 있는 토목직이나 화공직 등은 기(氣)를 펼 수가 없다. 자리 싸움은 제로섬 게임이고 여기서 행정직들이 승리를 항상 거두게 된다. 이미 공무원 사회의 승진이나 보직 제도에도 철저하게 문 우위로 운영되고 있다.

기술고시를 통해서 입신한 사람들은 올라갈수록 점점 더 문호가 좁아지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그들은 스스로 다시 한번 더 기회가 주어진다면, 행정직으로 출발하고 싶다고 말한다. 이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이익을 두고 다투는 사기업들에서 이공대 출신의 스타 플레이어들이 이따금 눈에 띤다. 벤처 붐이 그런 분위기를 다소 고양시켰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평균적인 수준에서 보면 이공대 출신들의 상대적인 박탈감은 크다.

게다가 지금은 지식의 반감(反減) 기간도 무척 빨라지고 있다. 관리직으로 멋지게 전환하는데 실패한 이공대 출신들이 더더욱 어려운 상황에 빠져들어가기 마련이다.

물론 모든 것을 제도나 시스템 탓으로 돌릴 수만은 없다. 그러나 한 사회의 구성원들이 어디에 자신의 재능을 쏟느냐는 한 사회가 가진 인센티브 구조에 달려있다. 그것은 바로 신호등과 같아서 그 신호등을 보고 사람들은 자기의 이익에 충실하게 선택을 하게 된다.

제도가 문 우위를 보장하고, 의식이 문 우위를 지배하는 사회에서 변화를 기대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공무원 사회부터 변화가 시작되어야 한다.

공병호ㆍ공병호경영연구소 소장

입력시간 2002/04/09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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