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 르네상스 오나] 시청자들, 책 속에 빠지다

책읽기 붐 조성에 나선 TV, 교양과 오락을 하나로 묶는데 성공

대통령 선거, 월드컵 축구, 지방 선거, 부산 아시안 게임 등 올해 벌어질 대형 사건들은 출판업계에 마이너스 효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바깥 세상이 정신 없이 돌아가는 판국인데, 한가하게 책장 넘길 짬이 있겠느냐는 것이다.

지금은 그러나 그 같은 고정 관념을 불식시키기라도 하듯, 대중 문화의 총아 TV가 경쟁적으로 책 읽기 붐 조성에 나서고 있다.

KBS1-TV 의 ‘TV 책을 말하다’와 MBC-TV의 ‘!(느낌표)’ 등 교양과 오락을 겸해 새로이 편성된 독서 프로는 책 읽기야 말로 즐거운 시대 읽기라는 사실을 각기 독특한 방식으로 알리고 있다.


책 읽기는 즐거운 시대 읽기

3월 3일(토) ‘!‘는 화제의 소설을 공략하던 기존 방침에서 탈피했다. 소설의 배경이 된 마을 등지에서 벗어나, 보다 넓은 주제로 나아간 것이다. 네 번째 집중 토론 도서로 잡힌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서서’가 변신의 계기였다.

인기 개그맨 김용만과 유재석이 부석사 무량수전이 있는 고장 영주까지 가서 그곳 주민들과 익히 보던 유쾌한 대화를 나눴다. 영주 시민과 부석사가 갖는 각별한 의미 등에 대해 이야기 하는 모습을 지켜 본 시청자라면 함께 소개된 이 책에 관심이 갈 수 밖에 없었다.

이 프로는 앞서 ‘괭이부리말 아이들’, ‘봉순이 언니’,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등 당시 화제에 올랐던 소설을 테마 도서로 선정, 코믹한 현장 취재 등으로 관심을 모아 오던 터였다.

종로 등 서울 길거리에 나가 주부, 학생들과 나누는 담소 시간은 여느 개그 프로 뺨치는 재미와 함께 시청자를 자연스레 책 속으로 유인했다.

KBS1 TV가 매주 목요일 오후 밤 10시에 방송하는 ‘TV, 책을 말하다’의 접근 방식은 보다 진지하다.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박명진 교수, 개그맨 이윤석 등 두 명의 MC는 학문성과 오락성을 겸비한 프로의 모범을 보여준다.

인문과 과학 등 분야별로 저자를 초청, 박교수와 나누는 대화는 명쾌하고 해박한 논리로, 이 시대에도 지적 즐거움은 존재한다는 사실을 입증해 보이고 있다.

“감각성과 1회성을 특징으로 하는 천박한 매체인 TV가 최근 독서라는 진지한 문화 행위에 눈 뜬 것은 다행입니다.

그들 공중파가 신간과 베스트셀러에 시선을 집중한다면 우리는 반드시 읽어야 할, 그러나 막상 쉽게 손이 가지 않는 책에 발언권을 주고 있습니다.” EBS TV의 독서프로 ‘책과 함께 하는 세상’ 김평진 PD의 말이다. 고전은 어떻게 하느냐는 문제 제기다.


진지한 접근방식, 지형도에 한 획

자칫 대중성에 기울 우려도 없지 않은 에듀테인먼트(교양+오락) 프로와는 달리, EBS-TV의 독서 프로인 ‘책과 함께 하는 세상’ 은 진지한 접근 방식으로, 길이 30분의 프로지만 홈 페이지상의 깊이 있는 시청자 소감 등 자기만의 팬덤을 형성하고 있다.

매회마다 선정된 ‘테마 도서’에 대한 집중 소개는 이 프로가 다이제스트보다는 교양에 무게 중심을 두고 있음을 보여준다.

셰익스피어의 ‘햄릿’, 시오노 나나미가 아닌 토마스 불핀치의 ‘그리스 로마 신화’, 채만식의 ‘탁류’, 스코트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 ‘세르반테스의 ‘돈 키호테’ 등 고전들은 이미 집중 탐구 됐다. EBS는 FM(104.5㎒)의 독서 프로 ‘책과의 만남’(이협희 PD) 에서도 진행중이다.

현재 30분으로 편성된 ‘책과 함께…’는 월드컵을 앞두고, 변신을 계획중이다. 5월 6일~6월 21일까지 매주 월~금 10시부터 방영 예정인 1시간짜리 프로 ‘2002 세계 월드컵 개최 기념 세계 명작 드라마’가 그것이다. ‘뿌리’, ‘폭풍의 언덕’, ‘레 미제라블’ 등 고전 35편을 극화, 사실성을 더 한다.

가장 대중적인 매체인 TV가 책에 개안, 21세기 한국의 문화 지형도에 새 등고선을 그어 가고 있다.

장병욱 주간한국부 차장

입력시간 2002/04/10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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