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 밸리 24時] "이게 공짜라고요?"

"이게 공짜라고요? 2년 전 회사를 방문한 일본의 모 통신회사 간부가 ‘한국식 공짜 마케팅’에 놀라 내게 몇 번씩 묻던 말이다.

당시 지오이네트는 PC의 중요 파일을 인터넷을 통해 원격지에 안전하게 저장 보관하는 인터넷개인금고라는 서비스를 B2C형태로 무료 제공하고 있었다. 경우 당시 유료화 마인드가 거의 없었지만 서비스를 공짜로 하면 질이 나빠진다는 생각에 유료서비스와 무료서비스를 동시에 제공했다.

유료서비스를 포기하지 않았던 또 다른 이유는 당장 큰돈을 벌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무료로 제공되는 다른 경쟁사보다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기술 개발에 한층 박차를 가할 수 있는 동기로 작용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또한 서비스의 특성상 무료로 제공하기에는 분명 무리가 있었지만 당시 국내 마케팅 트렌드는 공짜 그 자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인터넷금고서비스는 국내에서는 최초로 제공되던 서비스였지만 기획 단계에서 상당 부분 미국 A사의 서비스를 벤치마킹하였다.

일본의 경우 무료 콘텐츠가 거의 없고 소액이라도 유료화에 대한 마인드가 이미 보편적이었기 때문에 지오이네트를 방문한 통신회사 간부가 지오이네트의 무료 정책을 이해를 못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러던 2년 후인 올해 초 지오이네트는 일본의 모회사와 라이센싱 계약을 체결했다. 일본에 서비스를 수출하기까지 꼬박 2년이 걸렸던 것이다. 더욱 의미 있는 사실은 사업기획 당시 벤치마킹의 대상이었던 미국의 A사와의 비교평가에서 기술력과 서비스의 안정성을 인정받았다는 점이다.

e비즈니스에 관한 한 한국이 일본보다 기술경쟁력이 우수하다고 하지만 작년까지만 해도 일본 진출에 성공한 기업들은 극소수에 불과한 실정이었다.

불과 2년 전과 지금을 비교하면 그야말로 국내 e비즈니스 산업은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했으며 외국업체에 비해 무서운 경쟁력을 키워 왔다. 과연 무엇이 우리의 경쟁력을 키웠을까? 다양한 요인들이 작용했겠지만 여기에 공짜마케팅도 한몫을 한 것은 틀림없다.

물론 공짜 마케팅은 기업간 경쟁을 더욱 부추겨 종국에는 수익부재로 인해 기업의 도산을 가져오는 중요 원인중의 하나였으며 그 손해는 투자자에게 고스란히 넘겨지고 말았다.

하지만 이 같은 공짜 마케팅은 업체의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역설적인 효과를 가져왔다. 수많은 사용자들은 무료로 제공되는 서비스를 이용하며 기업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문제점까지 지적했고, 기업들은 빠른 시간에 이 문제점들을 해결하고자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면서 서비스와 기술이 개선돼 부지불식간(不知不識間)에 경쟁력이 강화됐기 때문이다..

불과 1,2년 전만 해도 국내만큼 경쟁이 치열한 시장이 없었을 것이다.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회사가 세워지고 더 좋은 서비스로 시장을 파고들었다. 어느 기업하나 돈을 내라고 하지 않았으므로 네티즌은 좋은 서비스만 골라 쓸 수 있었다.

게다가 한국만큼 네티즌의 힘이 대단한 곳도 없었다. 동종서비스를 하던 모회사는 무료로 서비스를 운영하다가 한 순간의 데이터 파손이라는 실수로 사이트를 폐쇄 당한 일까지 있었으니 어찌 보면 물에 빠진 사람을 건져준 후 보따리도 꼭 찾아 주어야 사업을 유지할 수 있는 형국이었다.

시장환경이 이 정도니 살아남은 기업의 노하우와 기술력은 시장에서 자연적으로 살아 남기 위해서라도 부단히 노력해야 했다.

'한국식 공짜 마케팅'은 분명 기업의 부실과 거품을 양산했던 주범이다. 하지만 뭐든 일장일단(一長一短)이 있기 마련이다.

버블을 양산했던 요인이 버블을 없애버리는 역할도 동시에 담당했던 것이다. 치열한 생존의 법칙 속에서 제대로 경쟁력을 갖춘 기업만이 살아 남게 해 주었다. 또한 국내 e비즈니스 대중화와 양질의 인프라 구축에 수훈갑의 공로를 세운 셈이다.

2,3년 전만 하더라도 거의 모든 업종의 회사에서 벤처, 인터넷, 디지털 이 세가지 말 중 하나라도 들어있지 않으면 시대의 조류에 둔감한 기업으로 인식되어 버리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작년부터 벤처기업이 마치 비리의 온상인양 매도되기 시작했다. 요즘도 언론들이 연일 벤처 때리기에 열을 올리는 것 같아 안타깝다.

하지만 이미 거품은 상당 부분 빠졌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그 치열한 생존경쟁에서 살아남은 기업들이 비로소 세계로 뻗어나갈 때이다. 벤처는 한국경제 성장의 또 다른 한 축을 담당하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전성영 지오이네트 CEO

입력시간 2002/04/10 16:42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