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칼럼] 땜질식 정책은 이제 그만

"돌아가는 길이 가장 빠른 길이다"라는 말이 있다. 전쟁에서도 많이 언급이 되는 말인데 아무리 명분이 있는 싸움이고, 또 우리 쪽에 우위가 있다 하더라도 조급하게 밀어 부쳐서 전쟁을 이긴 예는 거의 없다는 뜻이다.

오히려 우리 쪽에 명분이 있음을 널리 알려 상대방의 사기를 꺾고 일단 교전이 시작되었을 때를 대비한 전술의 정비, 그리고 그 전술들을 실행할 인력, 그들을 이끌 리더들의 정비 등이 제자리를 잡았을 때 손쉽게 이길 수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물론 이 방법은 언뜻 보기에 바로 공격을 하는 것보다 시간이 낭비되는 것 같이 보이기 쉽지만 목적을 이루는 데까지 드는 최종적인 시간을 따지면 언제나 더 빠르다는 것이 동서고금을 막론한 전략가들의 가르침이다.

이렇게 돌아갈 줄을 알려면 큰 그림을 보는 전략적 안목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 그래야 어디를 피해 가고 어디를 공략할 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 정부가 일을 처리하는 방식, 특히 국민 모두에게 파급효과가 큰 사안들을 처리하는 방식에서는 전략적인 안목과는 거리가 먼 경우가 많다. 우리가 귀가 아프도록 듣는 '땜질식 처방'이라는 말이 바로 그것이다.

재정적자 문제가 갈수록 심각해지는 건강보험을 한번 보자. 고령화가 계속 진행되어 아픈 사람이 많이 생기고 있다. 예전에는 질병으로 여기지 않던 것이 점점 질병으로 간주되고 있고 사람들도 질 높은 의료서비스를 원하고 있다. 의료서비스에 대한 수요는 앞으로 계속 늘어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이에 비해 정부의 지불능력은 현재 구도에서는 지금보다 나아질 것이 없다. 적자폭이 더욱 확대되는 것은 도저히 피할 수 없는 현실인 것이다. 해결책은 들어오는 돈을 늘리거나(이것은 환자의 부담이다) 아니면 나가는 돈을 줄여야 하는데(이것은 의사, 약사, 제약회사들의 몫이다) 정부는 의사들을 한번 건드려 봤다가 반발하면 한 발 물러서고, 환자들의 부담을 조금 올리다가 시끄러워지면 또 한발 물러서고, 다음에는 제약회사들을 상대로 한번 밀어붙여 본다.

이거야말로 '땜질식 처방'의 전형이다. 건강보험 재정적자 문제는 어느 한 집단을 쥐어짠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건강보험 재정적자 문제는 일반국민들의 입장에서는 이해가 잘 안 가는 사안이다.

"의료분업이다 뭐다 해서 예전보다 불편해진 것은 확실하고, 오히려 내 주머니에서 나가는 돈은 더 늘어난 것 같은데 재정이 적자라니. 의사들이 너무 많이 가져가서 그런가, 약사들인가, 아니면 제약회사들인가"하는 의문이 들게 된다.

건강보험의 운영주체이며 이러한 정보를 국민들에게 제대로 알려줄 책임이 있는 정부는 그 답을 주지 않고 오히려 환자-의사-약사-제약사 사이의 불신과 갈등을 부추기는 역할을 하고 있다.

건강보험의 규모는 따지고 보면 국가경제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작다. 공적자금이나 사교육비 같은 것이 훨씬 더 큰 규모일 것이다. 이렇게 작다면 작은 일 때문에 국가전체가 서로 나뉘어 반목하고 결국은 모두가 패자가 되고 마는 혼란이 와서야 되겠는가.

현정부든 곧 들어설 다음 정부든 이 문제는 전체적인 구도를 이해하고 이해당사자 모두가 조금씩 양보하지 않으면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일부 욕먹을 각오는 하고(지금은 아무한테도 욕 안 먹을 요량으로 접근을 하다 보니 모두에게서 욕먹고 있는 현실이다) 문제의 본질을 시간을 두고 깊이 있게 설명하고 국민들에게는 필요한 만큼 더 부담할 것을 설득해야 한다.

동시에 의사들이나 약사들이나 제약회사들에게는 정당한 소득을 보장해 주고 거기서 비신사적으로 행동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엄벌을 내릴 수 있는 제도를 정비하는 한편 현 제도의 비효율을 찾아내어 제거하는 것만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길이 아닌가 싶다.

의사든, 환자든, 약사든 이해당사자들도 억지에 가까운 과도한 요구를 내세워 정부를 곤란하게 하지 말아야겠다.

예를 들어 몸에 좋다는 풍문만으로도 검증이 되지 않는 건강조보식품 등에 아낌없이 돈을 쓰면서 정작 병원과 약국에 지불하는 돈을 아까워하고, 좋은 의료서비스는 원하면서 돈을 더 못 내겠다고 나오면 그게 말이 되는가? 시간은 걸리더라도 확실하게 결과를 낼 수 있는 정부의 전략적인 마인드를 기대해 본다. 제발 한번쯤은 그들의 진정한 보스인 '대한민국 국민들'을 위해서.

김언수 고려대 경영대학 교수

입력시간 2002/04/16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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