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평론] 대통령이 아들문제 결단 내려야

최근 한나라당은 김대중 대통령의 아들인 홍일(弘一) 홍업(弘業) 홍걸(弘傑)씨의 각종 비리 연루 의혹을 들어 세 아들에 대한 구속 수사와 특검제의 도입 및 국정조사 실시 그리고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하고 나섰다.

물론 여당은 이에 대해 수용할 수 없는 정치공세라며 검찰 수사를 일단 지켜보는 것이 옳다고 반박했다.

대통령 아들의 비리 의혹 문제는 그 사실 여부를 떠나 대선정국에서 정치공세의 중요한 호재가 될 수 있으며 따라서 이 문제는 그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밝혀진 여러 정황으로 볼 때 문제의 본질은 정치공세의 측면이 아니라 권력 비리 의혹의 측면에 있다.

권력 비리사건에 대한 국민의 시선은 따갑다. 심지어 지긋지긋하다는 사람들도 많다. 독재로부터 벗어나 민주화가 되었다는 지금에도 정경유착의 권력 비리가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고 더구나 그러한 비리가 수없이 반복되고 있음에도 정치인들은 여전히 무감각하고 뻔뻔스럽다는 사실에 국민은 분노를 넘어 절망과 허탈까지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최근 들어 권력 비리사건이 빈발하고 있지만 그 규모는 과거에 비해 상당히 줄어든 것으로 판단된다. 전두환과 노태우정권 시절에 대통령의 통치자금이라는 명분 하에 수천 억원에 달했던 검은자금은 이후 수백 또는 수십 억원 단위로 축소되었으리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한 권력의 강력한 은폐 기도로 그 비리가 덜 드러났을 과거에 비해 권력의 힘이 약화된 근래의 상황에서 비리 은폐는 더욱 쉽지 않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권력 비리 해결의 궁극적인 대책이 그것을 없애는 것이라는 점에서 그 규모의 축소나 상황 논리가 사태를 정당화해줄 수는 없다. 그런 점에서 대통령 아들의 비리 의혹 문제는 그 진상이 명백히 밝혀져야 한다.

뿐만 아니라 최근 확인되고 있는 국민의 정치의식 변화, 즉 민주당의 국민경선에서 나타난 국민의 정치참여 열기와 색깔론 등 터무니없는 억지 주장에 쉽게 현혹되지 않을 정도로 진일보한 국민의 정치안목이 이 같은 비리 의혹문제를 적당히 덮고 넘어가는 것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결국 이제 시작되고 있는 국민 참여라는 아래로부터의 정치는 권력 비리 같은 정치권의 각종 부정부패를 척결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김 대통령이 국민의 정치의식 변화를 가져온 단초를 상당부분 제공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김 대통령이 여당인 민주당 총재직을 사퇴함으로써 당내의 상층 통제가 약화되었고, 이 과정에서 여당은 아래로부터의 정치를 활성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찾을 수 있었던 것이다.

국민경선 제도는 이 같은 가능성이 현실화한 제도로 그 동안 제대로 발현되지 못하던 국민의 정치 참여 욕구가 분출하는 통로가 된 셈이다.

임기 말 레임덕 현실에서 여당 총재직을 사퇴한 김 대통령의 결정은 무척 고독한 결단이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바로 그러한 고독한 결정이 다 쓰러져가던 민주당을 살려내는 한편 한국 민주주의 발전의 기회를 제공했다는 점을 기억하지 않으면 안 된다.

바로 여기에 대통령 스스로 자신의 권력을 축소할 때보다 긍정적인 새로운 정치의 가능성이 열릴 수 있는 한국정치의 긍정적 역설이 존재한다.

대통령 아들의 권력 비리 의혹이 전면 제기된 현재의 상황에서 김 대통령은 어떠한 선택을 해야 할 것인가? 일단은 검찰의 조사를 지켜보아야 될 것이다. 그러나 검찰이 그 의혹을 충분히 밝혀내지 못할 때 김 대통령은 특검제 도입 등 결단을 내려야 할 것이다.

죄에 따라서는 자신의 아들마저 처벌할 수 있는 그 냉정한 고독의 결단만이 우리 사회의 부정부패를 진정 척결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전직 대통령들이 하지 못했던 결단을 현직 대통령이 내릴 수 있을 때 우리는 거기에서 부패 단절의 희망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정해구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ㆍ한국정치

입력시간 2002/04/16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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