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미의 우리풀 우리나무] 얼레지

요염한 자태 뽐내는 산속 숙녀

우리 꽃의 아름다움은 소박한데 있다고 한다. 산골 소녀처럼 청초하고 깨끗하며 잔잔한 느낌이 바로 우리의 아름다움이라고 한다. 하지만 더없이 깊은 산골에 살면서 누구보다도 요염한 자태를 뽐내는 그러면서도 아름다운 우리 꽃이 있는데 바로 얼레지이다.

얼레지는 아름답다. 이 아리따운 얼레지의 자태에 반한 이들은 참 많다. 처음에 얼레지를 보고 그리고 이름을 들어 본 사람은 언뜻 외국식물이려니 생각하기도 한다. 그 큼직한 꽃송이며 독특한 꽃모양, 그리고 색다른 이름이 이러한 상상을 하기에 충분하지만 얼레지는 심심산골에 자라는 우리의 토종 식물인 것이다.

설악산을 오르다가 멀리 대청봉을 바라보며 숨을 가다듬고 있다가 문득 눈에 끌려 몇송이씩 피어 있는 얼레지의 모습을 본 이들은 모두 한눈에 반하고 만다. 혹 늦내린 봄 눈속에서 꽃대를 올린 모습이라도 보았다면 모두 얼레지의 추종자가 되어 버린다. 숲 속에 홀로 피어 있는 그 요염한 자태라니.

얼레지는 백합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 풀이다. 비늘줄기를 가진 뿌리는 아주 깊이 박혀있어 한 포기 캐어 볼 욕심이면 몇십 분은 투자해야 제대로 된 뿌리를 볼 수 있다. 이 비늘줄기는 한해가 지나면 그 밑에 다시 생기므로 해가 갈수록 뿌리가 깊어진다고 생각하면 된다.

두장씩 혹은 한짱씩 땅에 붙어 달린 잎새는 아기손바닥처럼 넙적하고 녹색의 두터운 잎에는 자색의 얼룩이 있어서 구분하기 쉽다. 그 잎새 사이로 꽃자루가 올라오고 고개숙이고 다소곳이 맺혀있던 꽃봉오리는 개화기 진행되면서 여섯장의 꽃잎을 한껏 펼쳐내면서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여느 꽃들처럼 그저 활짝 꽃잎을 벌리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뒤로 젖혀져 꽃잎의 뒷면들이 서로 잇닿을 정도이다. 그러노라니 긴 보라빛 암술대며 이를 둘러싼 수술대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산골의 수줍던 처녀치고는 파격적인 개방이다.

꽃잎이 꺾이어 드러나 보이기 시작한 그 부분에는 톱니같은 보라색 무늬가 선명한데 영어로 이 식물의 이름이 독그 투스 바이올렛 (Dog - Tooth Violet)이라고 부르는 것은 이 무늬 때문인 듯 싶다.

강원도에서는 이 얼레지의 잎으로 나물로 해먹는다. 산을 내려와 시장을 반찬삼아 먹는 산채비빔밥 같은 음식에 간혹 얼레지 나물이 나오기도 한다. 약간 새큼하면서도 참나물이나 취나물과는 또 다른 얼레지나물만의 색다른 맛이 있다. 얼레지 묵나물로 국을 끓여 먹기도 하는데 미역국 맛이 난다 하여 이 나물을 '미역취'라고 부르기도 한단다.

간혹 설악산 근처의 토산품점에서 이 얼레지 나물을 말려 팔기도 하는데 아직 얼레지를 재배했다는 소식은 들은 바 없으니 모두 산에서 캐왔을 터인데 맛있다고 무작정 먹을 수만은 없는 일이다. 사실 이 식물의 꽃을 아는 사람은 아까워서 먹기 어렵다.

얼레지는 약용으로도 이용한다. 한방에서는 편율접분(片栗澱粉)이라는 생약명으로 이용한다. 봄이나 여름에 채취한 인경을 채취하여 말리거나 생것을 그냥 이용하는데 건위, 진토(鎭吐), 지서(止瀉) 등에 효능이 있어 위장염, 구토, 화상, 최고급 전분 원료를 쓰이며 물에 달려 마시거나 생잎을 찧어 상처에 부치기도 한다.

얼레지를 보면 식물 공부를 처음 시작하던 그 즈음, 그 꽃을 보겠노라고 점봉산을 오르던 기억이 난다. 그 후 수없이 얼레지를 만났건만 매번 처음 만나러 길을 떠났을 때의 설레임이 되살아 나곤 한다. 그만큼 매력있는 우리 풀인 것이다.

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사

입력시간 2002/04/17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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