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미의 우리풀 우리나무] 생강나무

이 세상의 봄은 노란색으로 시작한다. 도시의 가로변엔 샛노란 개나리가 흐드러지고 따뜻한 봄빛이 내리쬐는 양지 녘엔 양지꽃이 그 밝은 모습을 나타낸다.

조용히 귀를 기울여 겨우내 얼었다가 녹아 흐르는 시냇가 물 소리를 따라가면 동의나물이 그 노랗고 아름다운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가장 늦게 봄을 맞는 산속에서는 생강나무가 노란 꽃을 피워 봄이 시작되었다는 첫 신호를 함께 사는 산속의 이웃들에게 보낸다.

도시가 이미 온통 꽃잔치로 절정을 이룰 때에도 숲 속의 봄은 아주 천천히 찾아와 모처럼의 봄꽃 산행을 떠난 이들에게 실망감을 주기도 하지만 그래도 언제나 봄이면 어느 산에서나 꽃을 피워내 그 발길에게 위로가 되는 나무가 바로 생강나무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꽃잎이 피어 있는 생강나무를 숲 속에서 만나면 생강나무라고 불러주지 않고 산수유라고 부른다. 마른 가지에 잎도 없이 노란 꽃송이들이 매어 달리는 모습을 보고 말이다. 생강나무는 잎자루도 없이 달리는 꽃을 보면 산수유 꽃과 구별이 된다.

산수유는 누가 심어야 볼 수 있는 나무가 거의 대부분이어서 마을 근처에 자라는 나무이고 그야말로 숲 속에서 강인한 생명력으로 누구하나 돌보아 주는 이 없이 혼자의 힘을 살아가는 나무가 바로 생강나무이다.

생강나무라는 이름은 잎이나 꽃을 비비면 생강냄새가 나기 때문이다. 생강이 아주 귀하던 시절에는 말린 이 잎을 가루로 만들어 생강 대신 쓰기도 했다.

강원도나 중부이북 지방에 살고 계시는 분들이 이 생강나무를 두고 산동백 올동백 동박나무 등으로 부른다. 동백나무라고 하면 요즈음은 꽃을 보기 위해 키우지만 예전에는 열매에서 기름을 짜는 것이 아주 중요한 쓰임새였다.

하지만 동백나무는 따뜻한 남쪽지방에서만 자라므로 겨울이 추운 곳에서는 이 생강나무의 씨앗에서 기름을 짜서 긴요하게 썼으니 그런 별명이 붙었다.

김유정의 동백도 바로 이 생강나무를 말하며 한다. 강원도 정선 아리랑의 한 가락을 들어 보면 " 떨어진 동박은 낙엽에나 쌓이지 사시장철 임 그리워서 나는 못 살겠네"라는 대목이 나온다. 이 역시 아우라지 나룻터에서 강건너 피어 있는 생강나무의 꽃을 보며 열매를 주으며 만났던 님을 그리워 하는 사연이 담긴 노래이다.

생강나무는 꽃이 지고 나서 피어 나는 잎도 재미나다. 손바닥만한 생강나무 잎의 모양은 그 향기만큼이나 독특하다. 잎의 맥은 크게 세 개로 갈라지고 갈라진 맥을 중심으로 하여 잎의 윗부분이 크고 둥글게 세 개로 갈라져 마치 우리의 부드러운 산봉우리를 보는 듯 하다.

이 잎에도 향긋한 생강냄새가 나서 연한 잎은 상추처럼 고기를 싸서 먹기도 하고, 더 어린 새순은 산사의 향긋한 작설차로 대접을 받는다.

한방에서는 생강나무를 황매목이라 한다. 매화처럼 일찍 노란 꽃이 피기에 붙은 이름인 듯하다. 위를 튼튼히 하는 건위제로 많이 이용되고 그 밖에 복통, 해열에 효과가 있으며 간을 깨끗이 하거나 심장을 튼튼히 하는 데에도 쓴다고 한다.

그밖에도 누가 그런 호사를 누렸는지 모르겠지만 생강나무로 이쑤시개를 만들어 사용하면 그 향기가 일품이라고 한다.

요즈음 간혹 민트향이 묻어 나는 이쑤시개를 볼 수 있는데 혹 생강나무를 이용하는 옛 어른들에게서 힌트를 얻은 것은 아닐까? 산골의 아낙들은 봄에 새순이나 어린 잎을 채취하여 나물로 무치거나 찹쌀 가루에 묻혀 튀기면 그 상큼한 향기를 입안에서 즐길 수 있다고 한다.

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사

입력시간 2002/04/23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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