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의 도전] PK민심 '세 얻는 盧, 비상걸린 昌'

'미워도 내자식''효성 깊은 양자' 팽팽한 구도

거세게 몰아치고 있는 `노풍(盧風)'를 바라보는 BGU(부산, 경남, 울산) 주민, 특히 부산시민들의 정서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착잡하다'가 될 것이다.

말을 안 듣는다고 쫓아낸 자식이 어느날 자수성가해 번쩍번쩍한 자가용을 몰고와서는 "아직도 저를 자식으로 받아들여 주시지 않으시겠습니까"라며 넙죽 절할 때 부모가 느끼는 그런 당혹감이라 할까.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로 사실상 확정된 노무현 후보는 그동안 부산시민에겐 `말 안듣는 미운 자식'이었다. 한때 YS(김영삼 전 대통령)군단의 패기있는 젊은 정치인이었던 노후보가 3당 합당 당시 YS를 따라가지 않고 이른바 `꼬마 민주당'에 참여했을 때부터 쌓인 그런 미움은 노 후보를 연거푸 낙마시켰다.

노 후보는 부산시장 선거 한번, 두 차례의 국회의원 선거에서 고향 주민들에게 잇따라 버림을 받았다. 그런데 고향에서의 잇따른 패배가 오히려 노 후보에게 최대의 정치적 자산이 되어 마침내 집권여당의 대통령후보 자리를 사실상 쟁취했으니 부산시민의 마음이 편할 수만은 없게 됐다.

노후보에 대한 인식 달라지는 부산

부산에서도 노 후보에 대한 인식이 크게 달라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김대중 대통령과 김영삼 전대통령이 정치적으로 대립각을 세워온 이래 부산, 경남, 울산에선 반DJ정서가 뿌리 깊었던 것이 사실이다.

노 후보가 YS가 아닌, DJ의 기치 아래 들어갔다는 이유만으로도 그는 이 지역에서 배척(?)받을 충분한 `결격사유'를 갖고 있었던 셈이다. 그러나 노후보가 집권여당의 후보로 사실상 확정되면서 "이제는 노무현을 밀어주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분위기가 생겨나고 있다.

노 후보가 `밀쳐둔 미운 친자식'이었다면 이회창 후보는 `효성스러운 양자'인 셈이다. `효성스러운 양자를 챙겨줘야 한다'는 반응 속에서 `미워도 자식은 자식'이라는 새로운 반응이 조금씩 세를 얻고 있는 형국이다.

언론인 출신인 부산의 소설가 윤정규씨는 "전통적인 반DJ정서가 김대중 대통령의 임기 종료와 함께 서서히 탈색되고 있기 때문에 부산 경남 지역에서도 노풍이 그렇게 쉽게 소멸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며 "앞으로 본격적인 대선정국이 시작되면 지금은 얼떨떨하다는 반응을 보이는 지역 민심 중 상당 부분이 노 후보에게 쏠릴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BGU 지역에서도 노후보에 대한 평가가 세대에 따라 크게 엇갈리고 있다. 김미선 국제신문 논설위원도 "노풍의 진원지는 개혁을 갈망하는 20~40대이며, 그런 지지도 분포는 부산에서도 마찬가지이므로 여론 주도층인 이들의 향배에 따라 노풍이 현실적 표심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50대 이후 중노년층은 여전히 이회창 후보를 선호하고 있다. 따라서 `누가 콩인지, 팥인지' 헷갈려 하는 중노년층의 민심잡기 공방을 벌어질 가능성이 크고, 결국 그 승자가 이 지역에서의 표심을 얻게 될 것으로 보인다.

한나라당 새 전략 마련에 부심

당연히 한나라당에도 비상이 걸렸다. 전통적으로 자신들의 아성이라고 자부해온 BGU가 노후보의 부상으로 민주당으로 넘어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총선이건, 지방선거건 한나라당 깃발만 꽂으면 부지깽이도 당선된다며 당내 헤게모니 투쟁에 몰두해 왔던 이 지역 한나라당 국회의원들도 최근 이 지역 언론 매체들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노무현 후보의 지지도가 이회창 후보에 근접하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추월하는 결과가 나오자 긴장하는 빛이 역력하다.

이른바 `반DJ정서'에 의존해온 민심얻기 전략이 옛날처럼 전폭적으로 통하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새로운 새 전략마련에 부심하고 있는 것이다.

어쨌든 공성(攻城)에 나선 민주당이나, 수성(守城)의 처지가 된 한나라당에 대한 이 지역 민심은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 그 윤곽이 대체적으로 드러날 전망이다. 노 후보 자신이 "부산, 경남, 울산 3곳의 광역자치단체장 가운데 한 사람이라도 내지 못하면 재신임을 묻겠다"고 공언한 마당이니 치열한 공방이 예측된다.

현재로선 경남은 김혁규 현지사가 쌓아놓은 아성이 워낙 튼튼하다는 분석이어서 노 후보의 공략 포인트는 부산과 울산이 될 것이라는 게 현지의 분석이다.

광역 자치단체장 선거가 최대 관건

그러나 울산은 재야활동으로 명망을 얻은 송철호 변호사가 민주노동당의 깃발을 들고 나올 계획이며 부산도 안상영 후보가 전통적인 한나라당 지지세에다 현직시장이란 프리미엄을 갖고 있어 공략이 쉽지는 않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노 후보측은 최근 한나라당 부산시장 경선에서 안 후보에 12표 차로 패한 권철현후보가 불공정 경선이라고 이의를 제기해 한나라당이 내홍을 겪고 있어 재야출신인 문재인 변호사 등 40대의 젊고 개혁적인 후보를 내세우면 충분한 가능성이 있다는 자체분석도 내놓고 있다.

여기다 부산시장 선거를 고리로 YS측과 연대가 이루어진다면 금상첨화라는 것이다. 그래서 YS측 인사인 한이헌 전의원 등도 후보 대상에 놓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BGU 지역의 판도는 한나라당의 유력한 대선후보인 이회창 후보의 `효성스런 양자론'과 노후보측의 `자수성가한 친자론' 중에서 유권자들이 누구의 손을 들어주느냐에 달려있다.

그러나 이 후보는 `수구적이며 귀족적'이란 이 지역 젊은 유권자의 거부감을, 노후보는 DJ의 `꼬붕'이 아니냐는 중노년층 유권자의 반감을 어떻게 희석시키느냐가 가장 큰 과제라는 게 일반적 관측이다.

강 동수 국제신문 문화부장

입력시간 2002/04/24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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