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덕균의 개그펀치] "개고기가 미워요, 비싸잖아요"

거의 10년 전쯤에 방송국에서 아이디어회의를 마치고 귀가하던 중에 교통사고를 당해서 병원에 입원했을 때의 일이다. 대형트럭과 충돌한 사고치고는 기적적으로 목숨은 건졌지만 한달 정도 병원신세를 져야 했다. 결혼 한지 얼마 되지않았을 때의 일이라 양가 친척들은 그야말로 난리가 날 정도로 놀란 모양이었다.

입원해 있는 동안 처가 식구들이 보여준 정성은 나를 놀라게 했다. 아마도 신혼 초에 과부가 됐을지도 모를 딸에 대한 안도감 때문이었는지 내 회복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갖가지 음식들을 병원으로 날라댔다.

도시락에 호박 만두에 삼계탕에......아, 거기다 결정적인 것은 처 외조부의 보신탕이었다. 시골분이셨던 처 외조부는 엄청나게 큰 들통에 푹 끓인 보신탕을 그대로 가지고 오셨다.

"뼈 상한데는 이만한 보약도 없지" 하시며 아예 휴대용 가스렌지까지 치밀하게 준비해 오신 것이다. 노인의 정성이라 안 먹는다고 할 수도 없고 대학병원 병실에서 간호사들의 눈총을 받아가며 며칠 동안 삼시 세끼를 보글보글 끓여서 싹싹 비워내야 했다.

많은 사람들이 보신탕을 최고의 영양식으로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그걸 즐겨먹는 사람은 물론이고 입에도 못 대는 사람까지 말이다. 누구든지 얼큰한 국물에 깻잎과 들깨가 수북하게 얹어져서 부글부글 끓고 있는걸 보고 냄새를 맡노라면 회가 동한다. 먹고는 싶지만 그놈의 철저한 선입견 때문에 도저히 못 먹겠다고 하는 사람도 여럿 봤다.

사실 보신탕만큼 시련을 겪은 음식도 없을 것이다. 이름부터 얼마나 많이 바뀌어져 왔던가. 개장국(아, 이름마저 질퍽하고 정겨워라)에서 보신탕, 사철탕, 영양탕, 땡칠이탕까지.......

시대의 눈치를 살펴가며 온갖 이름으로 변신하는 수모를 겪어도 결코 그 맥이 끊어지지 않은 것은 바로 영양가 때문이다.

내가 아는 한 여자 연예인은 처음엔 국물도 못 먹겠다며 도리질을 쳤었다. 회식 때 오이만 먹고 있는 게 안스러워서 ‘맛만 봐라, 국물만 먹어봐’ 라며 강요하듯이 권유를 했었는데 지금은 너무 달라졌다. 회식 때면 으레 보신탕 집으로 가자고 하고, 가서도 '아줌마, 배바지살 있어요?' 하며 먼저 달려든다.

일간지 기사에서 프랑스 학생들이 보신탕 문화체험에 나서서 무료로 제공된 20인분의 개고기 수육과 탕을 싹싹 비워냈다고 해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사실 프랑스의 브리짓트 바르도라는 왕년의 여배우 할머니 때문에 우리 국민의 심기가 편치 않다. 자기 입맛에 안 맞으면 안 먹으면 되지 그걸 세계적으로 악평을 해대며 우리 국민을 천하의 야만인으로 몰아붙이고 있는 판국에 그 나라의 자라나는 새싹들이 입맛을 다시며 환장을 하고 먹어댔다는 사실에 참 고소하고 통쾌한 기분이 들었다는 걸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누가 바르도 할머니의 조그만 애완견을 들여다보며 '참 예쁜 강아지네요. 한 근에 얼마예요?'하며 입맛을 다신 것도 아니건만 남의 나라의 식문화를 무식하고 편협한 잣대로 저울질하는 오만방자한 태도에는 입맛이 쓰다.

아무리 보신탕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치와와나 요크셔테리어를 보고 군침을 흘리지 않는다. 엄연히 식용과 애완견이 구분되어져 있는데 말이다. 남의 나라 문화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진지한 자세로 토론하고 시식해보며 그 진가를 파악한 프랑스 학생들의 열린 사고가 참 기특하다.

타국의 문화를 이해하고 받아들인 그 순순한 마음이 프랑스로 돌아가 왕따를 당하는 상처를 입지 않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며칠전 방송국 분장실에서 마주친 여자 연예인 K양은 내가 보신탕 얘기를 꺼내자

"개고기 너무 싫어요.”

"왜?"

"너무 비싸요! 되게 맛있는데 비싸서 자주 못 먹으니 너무 짜증나요." 하며 한숨을 내쉬는 게 아닌가.

브리짓트 바르도 할머니,

일단 한번 드셔 보시라니깐요!

입력시간 2002/04/26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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