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전자투표 시스템 구축한 이백용 ㈜바이텍씨스템 사장

전자민주주의 구현한 진짜 주역

민주당과 한나라당이 각각 대선 후보를 선출하는 경선 투ㆍ개표에서 헌정 사상 최초로 도입한 전자투표(e-voting) 시스템이 성공을 거둬 화제가 되고 있다.

이 시스템을 개발한 국내 벤처기업 ㈜바이텍시스템의 이백용 사장(48)은 민주당과 한나라당을 다른 클라이언트(고객) 업체들과 마찬가지로 ‘기업고객’ 이라고 부른다.

특히 어떤 한 가지 현안을 놓고도 대립 각을 세워 날카로운 신경전을 벌이는 여야간의 뿌리깊은 불신풍조를 고려할 때 한 정당이 채택한 동일한 업체를 다른 정당이 채택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이들 ‘기업고객’은 전자투표 시스템 도입을 통해 선거관리의 공정성과 신속성, 정확성 등 세 가지 사업목표를 한결같이 요청했고, 바이텍은 고객의 기대에 맞춰 ‘투표용지 없는 21세기형 투표 시스템’ 을 완벽하게 구현하는데 성공했다.

최근 두 달 가까이 양당의 경선이 벌어지는 매 주말이면 ‘혹시나’ 하는 우려감에 한 순간도 긴장감을 늦추지 못한 이 사장은 “초반 시스템의 불안정성에 대한 정당 관계자들의 일부 우려감도 있었지만 ‘전자 민주주의가 바로 정당의 경쟁력’이란 원칙에 여야를 불문하고 이의가 없었다”며 “후보간 박빙의 득표 전에서도 아무리 작은 표 차이로 승부가 가려져도 재검표를 요구하거나 이의를 제기한 후보는 단 한 차례도 없었다”고 설명했다.

바이텍은 선거비용 측면에서도 상상을 초월하는 경비절감 효과를 이들 고객에게 돌려줬다. 선거인 명부 조회에서부터 수작업으로 일일이 이뤄지는 개ㆍ검표, 감독 등의 인건비를 포함한 각종 운영비는 시스템 도입 이전 보다 무려 10배 이상 줄일 수 있었다.

투표 종료 후 결과 집계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10여분. 1위부터 꼴찌 후보까지의 득표수는 물론 득표율에 그래프까지 곁들여졌다. 이 사장은 “투표결과를 보기위해 TV앞에 앉아 밤잠을 설치며 가슴을 졸이는 상황은 ‘그 때 그 시절’ 이야기가 된 셈”이라고 말했다.

색깔론과 음모론 등이 난무한 이번 경선과정에서 ‘정치는 아직도 3류지만 전자투표 시스템만은 세계 초일류’라는 말이 나올 만큼 바이텍의 기술력과 운영 성과는 현해탄을 건너 일본의 NHK 방송까지 보도되는 기염을 토했다.


전자민주주의 구현한 디지털 혁명

투표용지 대신 교통카드 형태의 RF카드, 투표함 대신 은행의 현금지급기(ATM) 형식의 터치 스크린 전자 투표기를 통해 경선이 이뤄지는 전자 투표는 말 그대로 ‘전자 민주주의’를 구현하는 디지털 혁명의 현장이다.

터치 스크린의 화면 오른쪽엔 후보 얼굴과 이름, 기호가, 화면 왼쪽엔 자신이 선택한 후보자의 선호별 순서가 각각 표시된다.

그러나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규정한 선거법에 맞춰 전자투표 방식의 프로그램을 적용하는 데는 선례가 없기 때문에 선거법의 미묘한 해석을 놓고 각종 난제가 이 사장의 뒷머리를 잡아당겼다.

이 사장은 “선거의 공정성을 위해 경선 후보자들의 얼굴을 일렬로 배치해야 하지만 컴퓨터 스크린의 한정된 크기 때문에 후보자들을 기호에 따라 2열로 배치하기로 직접 후보들과 협의를 통해 최종 결정했다”고 당시의 상황을 설명했다.

이 사장은 또 고객의 각종 요구사항을 시스템으로 최대한 구현하기 위해 각종 선거법상의 검증절차 작업에 발품을 들여야 했다. 이 사장은 “정당 관계자들은 터치 스크린에 음성 메시지도 추가해줄 것을 요청했지만 선거의 4대 원칙인 ‘비밀선거’의 특성을 고려해 적용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 밖에도 민주당의 경우 선호투표제를 채택해 유권자가 사퇴한 후보자를 1순위로 선택한 경우 2순위로 찍은 후보의 표를 인정해줘야 할 지 무효처리로 할 지를 놓고 이 사장은 민주당 선관위의 유권해석을 받아야 했다.

또 사퇴한 후보자의 얼굴을 스크린에 계속 남겨놓아야 할 지 여부 등 세밀하고 사소한 부분까지도 신속 정확하게 대처하는 운영의 묘미를 살리는데 주력했다.


보안기술과 아이디어의 결합

원래 e-비즈니스 통합솔루션 분야와 모바일 그룹웨어 솔루션 개발 전문업체인 바이텍이 전자투표 시스템 개발사업에 처음 관심을 갖게 된 동기는 2년 전 국회의원 선거 당시부터다.

한 공중파 방송국의 의뢰를 받아 휴대폰을 이용해 국회의원 선거 당일 출구조사 진행에 LG텔레콤 등 국내 대형 전자 업체들과 공동으로 참여하면서 선거결과를 미리 예측하는 짜릿한 속보(速報)경쟁을 체험할 수 있었다.

“선거 결과를 정확히 예측하는 것은 ‘신의 경지’ ”라고 말하는 이 사장은 “당시 통계 시스템상의 문제로 예측결과가 들어맞지 않았지만 전자투표시스템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는 계기가 됐다”고 설명했다.

바이텍은 기술력과 당시 익힌 노하우를 바탕으로 민주당이 2월초 실시한 대선후보 경선에 적용할 전자투표 시스템 공급업체 입찰에서 국내 10개의 e-비즈니스 통합솔루션(SI) 업체들을 제치고 기술ㆍ가격 부문에서 최우수 업체로 선정됐다.

경기고와 서울대 전기공학과를 졸업한 이 사장은 “입찰에 참여할 당시만해도 민주당과 가까운 관계 기업이 될 줄 알고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며 “그러나 보안 기술력과 신선한 아이디어가 인정을 받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사실 바이텍의 전자투표시스템은 128비트 암호화 및 PKI(공개키 기반구조)방식과 데이터 압축, 오프라인 데이터 전송 등 5단계의 완벽한 보안기술을 갖춘 점이 입찰 과정에서 부각됐다.

한나라당 역시 당초 수작업으로 진행하려던 대선후보와 최고위원 경선 투ㆍ개표를 1주일도 채 남겨놓지 않고 전자투표로 갑자기 전환했다. 그 배경에는 민주당 경선과정을 통해 ‘기술력=정당 경쟁력’이란 유권자들의 일반적 인식을 감안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은 결국 민주당 경선에서 안정성 검증을 받은 바이테크 제품을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민주당측은 자신들이 제안해 만든 전자투표 시스템을 한나라당이 사용하는 데 즉각 반발, 특허권 출현 등 법적조치까지 강구하는 등 치열한 신경전을 펼쳤다.

이 사장은 “기업들 보다 경쟁심과 신경전이 더 치열한 곳이 바로 정당”이라며 “변호사측으로부터 ‘선거가 비즈니스 모델이 될 수 없다’는 조언을 받고는 민주당도 이를 수용하게 됐다”고 당시의 진통과정을 설명했다.

이로써 바이텍은 여야를 불문하고 전자투표 시스템을 단일기종으로 통합하는 명실상부한 ‘전자민주주의의 선구자’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보ㆍ혁논쟁은 소모적인 정치 마케팅

오리콤과 두산컴퓨터 등을 거쳐 1988년 바이텍을 설립한 이사장은 최근 여ㆍ야 간에 벌어지고 있는 보ㆍ혁 논쟁과 관련, 기업 최고경영자(CEO)의 관점에서 본 마케팅론을 강조했다.

“ ‘색깔론’ 이나 ‘음모론’ 에 이어 최근 정치권의 쟁점이 되고 있는 보ㆍ혁 논쟁은 기업(정당)의 입장에선 한마디로 마케팅 전략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소비자(유권자)들이 기업의 소모적인 마케팅 전략에 식상해 제품에 대해 고개를 돌린다면 당연히 그 전략은 실패한 것이다. 그렇다면 시장의 논리에 맞춰 하루라도 빨리 그 전략을 바꿔야 한다.”

지난해 매출 140억원 대로 솔루션업체로는 절대 작은 규모가 아닌 바이텍의 다음 목표는 6월 지방선거에서 전자투표 시스템의 도입여부에 맞춰져 있다.

여야 각 당의 경선과는 차원이 다른 대단위 규모의 시스템 지원이 필요한 지방선거가 과연 전자투표로 이뤄질 지는 아직 미지수다.

이사장은 이번 두 정당의 경선사업 참여로 사업상 ‘대박’을 터뜨린 것 아니냐는 질문에 대해 “민주당 서울경선에 필요한 LCD모니터만도 120대(장애인용과 여유분 포함)로 PC항체와 서버 등 전국의 모든 렌털 업체들로부터 제품을 한 번에 끌어 모아도 모자라는 상황”이라며 “여야 두 정당의 이미지 개선 효과와 렌털 업체들의 ‘대박’과는 달리 수익성은 오히려 크지 않은 편”이라고 고개를 흔들었다.

내년쯤 바이텍의 코스닥 상장을 계획 중이라는 이사장은 “오히려 계속된 밤샘작업으로 이혼 당할 위기까지 맞고 있다”고 미소를 지어보였다.

장학만 주간한국부 기자

입력시간 2002/04/26 17:48


장학만 주간한국부 local@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