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회창 대반격] 昌의 변신 "대중 속으로"

귀족적·권위적 이미지 탈피에 안간힘, 대쪽 인식도 부담

“마누라 빼고 다 바꾼다.”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의 한 측근은 최근 이 후보가 애쓰는 이미지 변신을 위한 노력을 한마디로 이같이 표현한다. 그간 ‘이회창’ 하면 떠오르는 것은 ‘대쪽 같은 성격에, 귀족적이고 권위적 이미지’가 주류였다. 모든 부정 부패는 법대로 단호히 처리할 것 같은 이 후보의 이미지는 갖은 부패로 얼룩진 DJ 정권의 대칭에 선 야당 총재로서는 상당히 어필한 것이 사실이다.


‘서민 대 귀족’ 대결구도 땐 불리

그러나 서민적이고 개혁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는 노무현 후보가 민주당 대선 주자로 확정되면서 이 후보는 서둘러 이미지 변신에 착수했다. 이 후보는 지난번 호화 빌라 파문으로 빚어진 귀족적 이미지, 그리고 집단 지도체제 도입 논란으로 제왕적 총재라는 인상이 부각된 것에 무척 당황하고 있다.

이 후보는 이런 일련의 사건들이 여론 지지도에서 민주당 노 후보에 밀리게 된 주된 원인이라 분석한다. 이 후보 측은 12월 대선이 ‘서민 대(對) 귀족의 대결’ 구도로 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도 합법적으로 유권자들과 접촉할 수 있는 당내 경선 기간동안 자신의 귀족적인 이미지를 최대한 털어 버리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이 후보가 하고 있는 이미지 변신의 큰 틀은 ‘최대한 몸을 낮춰 대중 속으로 파고 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이 후보는 지방 유세 기간 중에 거의 대부분을 현지에서 숙박하며 경선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그것도 호텔이 아닌 하루 숙박비가 3만원 내외의 장급 여관에 주로 여장을 푼다. 일정이 바빠도 서울 집으로 돌아와 잠을 잔 뒤 다음날 지방으로 내려갔던 예전과는 사뭇 달라진 모습이다.

식사도 시골 장터나 길가 국밥 집 같은 허름한 대중 식당을 이용한다. 아침에는 기사식당에서 택시 기사들과 함께 식사를 하며 여론을 수렴한다. 시장 장터 순회 중 돌발적으로 떡이나 가락 국수 같은 길거리 음식을 사서 그 자리에서 시식하는 것도 예전에는 보기 힘들었던 모습이다. 이 후보는 하루 두 곳에서 경선이 치러지는 날에는 차 안에서 햄버거 같은 패스트 푸드로 끼니를 때우기도 한다.

이동 수단도 가급적 승용차 대신 관광버스나 승합차를 이용한다. 최근 지방 유세 중에는 참모진과 함께 승합차에서 내리는 이 후보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이 후보는 대형차인 에쿠스 자동차를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달 초 서민 후보를 자처하는 민주당 노무현 후보가 체어맨 승용차 소유 문제로 논란이 된 후부터는 가급적 개인 승용차 이용을 자제한다.

의상도 가급적 노타이 차림의 세미 정장이나 가벼운 점퍼를 입고 다니는 경우가 늘었다. 와이셔츠 소매를 걷어 붙인 채 상인들의 물건을 날라주거나, 고개를 숙인 채 악수를 청하는 모습도 잦다. 일과 시간이 끝난 시간에는 가벼운 캐주얼 차림으로 거리 호프 집에 가서 젊은이들과 생맥주를 나누며 담소를 나누는 대화의 시간도 자주 마련한다.


온화한 모습으로 서민들과 눈높이 맞추어

이 후보는 특히 TV 토론회에서 자신의 대중적이고 친화적인 이미지를 보여 주려고 노력한다. 예전에는 비서진이 준비한 원고를 본인이 일일이 교정한 뒤 원고 범위 내에서 답변했으나, 최근에는 특별한 준비 없이 즉석에서 답변한다. 토론 도중 빌라 문제 같은 민감한 질문이 나와도 정색을 하면 변명을 늘어놓지 않고 “지적해 줘서 고맙다. 앞으로 참고해 시정 하겠다”는 식으로 수용하는 자세를 보인다.

한나라당의 한 고위 간부는 “예전 이 전총재는 소속 의원들과도 저녁 술자리를 한 적이 별로 없었을 정도로 접근하기 다소 어려웠던 게 사실”이라며 “최근 들어 일반 시민들과 눈높이를 맞추려고 다가가는 노력은 예전에는 보기 힘들었던 변화된 모습”이라고 말했다.

이 후보는 현재의 위기 상황을 탈출하기 위해 강ㆍ온 양면 정책을 쓰고 있다. 여당을 상대로 한 정치 공세에서는 전에 없는 강공책을 쓰면서도, 국민을 상대로는 온화하고 서민적인 이미지를 각인 시키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과연 ‘이회창의 승부수’가 결실을 이룰 지 두고 볼 일이다.

송영웅 주간한국부 기자

입력시간 2002/05/03 11:58


송영웅 주간한국부 herosong@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