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3 게이트] 사욕이 빚은 예고된 망신

청와대 비서실 각종 비리사건 연루, 문민정부 시절과 닮은꼴

“사심(私心)을 버리고 대통령을 잘 보필하게나! ”

전두환 전 대통령은 4월22일 장관급인 대통령 정책특보에서 청와대 비서실 총사령탑으로 전면에 나선 박지원 청와대 비서실장의 취임 인사를 받는 자리에서 우선적으로 ‘무욕(無慾)’을 당부했다.

그리고 그 이튿날 박 실장은 청와대 직원들과 함께 연 화요 세미나에서 ‘최규선 게이트’에 연루돼 파문이 일고 있는 비서실 직원들의 비리의혹과 관련 “이유야 어떻든 국민들은 대통령과 청와대에 가혹하리만큼 엄격한 도덕기준을 요구하고 있다”며 “국민들 앞에 많은 반성과 함께 앞으로 잘 해 나가야 한다”고 각별한 언행주의를 강조했다.


임기말 신드롬 시각, 위기감 팽배

최근 청와대는 박 실장의 조직 분위기 쇄신과 내부 긴장감 불어넣기 작업으로 겉으로는 다소 독려 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실상 하루가 멀다 하고 터지고 있는 각종 의혹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위기감에 직면해 있다.

임기 말 대통령의 직계ㆍ친인척 관련 비리와 청와대 관계자들의 비리 연루 의혹이 불거지면서 청와대가 방향타를 상실한 경험은 어제와 오늘 일 만이 아니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1997년 김영삼 당시 대통령의 차남 현철씨의 구속을 전후해 청와대가 사실상의 ‘국정 불능’ 상태에 빠졌던 것과 상황이 유사하다”고 말할 정도다. 이를 두고 정권의 임기 말 신드롬이라고 보는 시각도 만만찮다.

청와대를 제집 안방처럼 드나들었던 최규선씨의 ‘청와대 커넥션’은 비서실의 구조적인 문제점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 최씨는 검찰의 ‘게이트 수사’가 김 대통령 3남인 홍걸씨를 겨냥하는 모양새를 취하며 수사망이 좁혀 들던 4월 10일을 전후해 김현섭 청와대 민정 비서관과 수 차례 전화 접촉을 했다.

미국에 도피 중인 최성규 총경이 청와대에서 노인수 사정비서관과 이만영 정무 비서관을 만난 것도 바로 이 때다. 해당 비서관들은 당시 접촉 이유를 한결같이 업무상 혹은 개인적 친분 때문이라고 주장했지만 그 개연성은 아직도 수사선상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다.

특히 대통령 수행 비서인 이재만 청와대 제1부속실 행정관은 최씨로부터 금품을 받고 대통령의 공식일정 등 극비사항을 유출해 사표를 제출했다. 신광옥 전 청와대 민정수석은 진승현 게이트와 관련돼 구속됐다가 최근 보석으로 풀려났다.

이에 앞서 1,2월 이용호 게이트 등의 수사 과정에서 박준영 전 청와대 공보수석과 이기호 경제복지노동특보 등도 옷을 벗어야 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최근 대통령 아들들의 비리의혹에 관한 문제는 비공식적으로 맺어진 권력 내부의 온정주의적 인간관계로 빚어진 것들로 청와대 내부에서 조차도 또 언제 어디서 어떻게 그 의혹이 터질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시한폭탄”이라고 우려감을 표명했다.


자기사람 심기 관행이 만든 커넥션

청와대 비서진들의 이 같은 비리 시비가 끊이지 않는 원인은 우선적으로 무원칙 한 인력충원 방식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일반직과 달리 정무직의 경우 인적인 관계에 의존해오고 있으며 공석이 생길 때마다 해당 수석 비서관이 주변의 추천을 받아 신원조회를 거쳐 이뤄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청와대의 신원조회는 까다롭지만 전과 등에 대한 외형적 평가일 뿐 정작 중요시해야 할 국정운영의 보좌능력이나 공직자로서의 자질 등을 따지는 잣대는 아니다. 현재 400명에 달하는 청와대 직원 중 호남출신이 40%이상을 차지하고 비서관 이상의 경우 60%를 뛰어넘는다.

공보실은 한 때 5명의 비서관 중 3명이 특정고교 출신이었을 정도다. 이 같은 지역적 분포는 문민 정부 당시도 마찬가지다. 영남출신이 51.8%를 차지했고 이중 부산ㆍ경남 출신이 37%에 달한 적도 있다. 결국 청와대에 자기사람을 주변에 심는 것이 일반적인 관행으로 여겨져 오고 있다.

비서실은 유력 정치인들의 망원으로 활용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권노갑 민주당 최고위원의 경우, 한 때 40명에 가까운 비서관 중 자기사람을 3,4명 심은 적이 있다. 중견 정치인들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비서실을 청와대와의 창구로 삼은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러다 보니 인사 때 마다 ‘누구는 누구의 사람’이라는 소문이 나도는 것은 당연하다. 비서실은 정치색이 덧씌워지고 공익보단 사익(私益)을 추구하는 커넥션의 접점으로 활용되는 경우가 많다. 정치권 관계자는 “16대 총선 당시 자천타천으로 출마설이 나돌았던 비서관은 20여명에 달했다”며 “비서실이 정계로 나가는 가장 확실한 통로로 꼽히는 것도 이 같은 이유”라고 지적했다.

16대 국회에 민주당의 이강래ㆍ장성민, 한나라당의 이성헌ㆍ정병국, 자민련의 이양희 의원 등 청와대 비서실 출신이 10여명에 달하는 것도 ‘청와대 커넥션’의 산실이다.


제도ㆍ조직에 의한 비서실 운영 정착해야

문민정부 당시 홍인길 총무수석과 장학로 부속실장에 이어 최근 다시 터진 이재만 행정관 등의 비리사슬은 어느 곳 보다 높은 도덕성이 요구되는 비서실의 대표적인 닮은 꼴 비리다.

홍 전 수석은 상도동 집사장으로 통했고 이 행정관은 김 대통령의 지팡이를 드는 일로 시작해 11년간 김 대통령의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그의 수발을 든 보좌관이다.

특히 최근같이 사정기능과 대통령 친인척 관리기능을 조정하는 비서관들의 잇따른 비리연루는 결국 비서관 자신의 사적인 동기가 주 원인이다. 하지만 한나라당측은 비서관의 잘못은 대통령에 더 큰 책임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최평길 연세대 교수(행정학과)는 “입법 행정 사법의 3권을 틀어 쥐었던 전제군주의 왕권 같은 권한을 대통령이 행사하는 데 근본적인 원인이 있고 권력의 사인화가 문제”라며 “인물중심의 비서실 운영보다는 제도ㆍ조직적 직업주의의 정착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함성득 고려대 교수는 “앞으로 여야 모두 당권ㆍ대권이 분리되고 대통령의 공천권도 배제되는 상황이 정착되는 정치개혁이 이뤄질 경우 청와대 비서실의 권력도 예전 같지 않을 것”이라며 “청와대 비서실의 비리도 정치개혁 차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청와대 비서실의 구성은?

청와대 비서실은 비서실장과 2명의 특보, 8명의 수석비서관 체제로 대통령을 보좌하고 있다. 총인원은 450명 내외(정원 400여명ㆍ파견 50여명)로 문민정부시절 470명보다 조금 줄어든 상태다.

비서실은 대통령이 국정을 챙기는데 필요한 업무를 보좌하고 있다. 정책기획수석실은 총괄기능을, 최근 기능이 축소된 정무수석실은 정당ㆍ행정ㆍ치안업무 등을 맡는다.

비서실 조직은 대통령령만으로도 직제 개편이 가능해 현 정부 들어 수 차례 개편된 바 있다. 출범 당시는 과거 정권에서 월권시비 등 비판을 받았던 민정수석과 총무수석 등을 없애고 사정기능도 축소, 6 수석체제로 비서관 35명 등 정원이 380명이었다.

장학만 주간한국부기자

입력시간 2002/05/03 13:22


장학만 주간한국부 local@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