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나미의 골프세상] 필드 위의 패션스타

여름이 성큼 다가 왔다. 꽃샘 추위도 지나가고, 도심 거리에는 벌써부터 화사한 의상 패션 쇼가 시작되고 있다. 아직은 다소 이른 감이 없진 않지만 벌써부터 알록달록한 꽃무늬 치마에 민소매 셔츠를 입은 채 거리를 활보하는 여성들이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본래 패션을 리드하는 멋쟁이들은 계절보다 약간 이른 의상을 입는다고 한다.

스포츠 중에는 의상에 제한을 두는 종목이 있다. 골프가 그 중의 하나다. 골프는 운동 자체가 예의를 중시하는 스포츠라 골프장마다 골퍼들의 의상을 약간씩 제한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모 골프장은 남성의 경우 윗도리에 정장을 하지 않은 골퍼의 입장을 제한한다.

또 어떤 골프장은 남성이 경기 중 반바지를 입는다거나 목 컬러가 없는 상의를 입으며 퇴장 명령을 내린다. 여성들도 허벅지가 드러나는 미니스커트 같은 선정적인 의상을 입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지난해 젊은 여성들 사이에게는 ‘김남주 바지’라고 하는 복고풍 팔부 바지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그 영향이 골프계까지 미처 예전에는 감히 상상도 못할 의상인 팔부 바지를 골프장에서 입고 다니는 사람이 부쩍 늘었다.

컬러 없는 라운드 티셔츠에 팔부 바지. 생각만해도 너무 깜찍하고 예쁘다. 예전의 고정 관념으로는 절대 용서할 수 없었던 이런 깜찍한 노출이 이제는 골프장에서도 자연스럽게 받아 들여지고 있다. 시대 변화와 함께 골프계도 변하고 있는 것이다.

요즘 국내 여자프로골프 대회의 TV 중계를 보면 눈에 띄게 화려해진 선수들의 패션 감각을 쉽게 느낄 수 있다. 비근한 예로 패션모델을 무색케 할 정도로 뛰어난 패션감각을 지닌 강수연 프로를 꼽을 수 있다. ‘이번 대회에 강 프로는 어떤 의상을 입고 나올까’하는 궁금증까지 일으킨다.

프로 골퍼들, 특히 여자프로 선수들에게 있어 패션은 골프 실력 못지않게 관심의 대상이다. 선수 마다 옷 입는 스타일이 틀린 데, 한가지 흥미 있는 사실은 프로 선수의 성격과 옷의 스타일간에는 어느 정도 상관 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정일미 선수는 남들의 눈에 별로 띄지 않는 평범한 스타일의 의상을 선호한다. 언젠가 정일미 선수와 연습 라운딩을 함께 할 때 그 이유를 물어 본 적이 있다. "언니는 얼굴도 예쁜 데 왜 평범한 옷만 입어. 이것저것 입어 봐, 매일 흰색 티에 남색바지만 입지말고…” 그랬더니 의외의 대답이 나왔다.

일미 프로는 "입고 싶어도 워낙 오랜 세월 이런 색만 입어서인지 조금만 다른 색 의상을 입어도 내 자신이 안정감을 못 느껴"라고 말했다. ‘어떻게 보면 이런 의상 선택이 자기 마음을 안정시키기 위한 것이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필자도 평소에는 밝은 핑크 색이나 흰색 계통의 민소매 티셔츠에 베이지색 치마를 즐겨 입는다. 하지만 대회에 나갈 때는 밝은 것 보다는 회색 톤의 컬러가 있는 티셔츠를 주로 입는다. 의상에 신경 쓰지 않고 차분하게 경기에만 집중하고 싶기 때문이다.

이런 골프계의 패션 유행을 패션계에선 바람직한 현상으로 보지만 골프계의 일부 지도자들 중에는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다.

예로 미국에서 활동하는 박지은(23) 선수의 패셔너블한 의상 선택은 미국LPGA투어 내에서도 정평이 나있다. 호쾌한 드라이버 샷을 날리고 난 뒤 피니시 자세에서 약간 드러나는 배꼽 티의 모습은 누가 봐도 매력적이다.

박지은 선수는 최근 미국의 성인 잡지인 ‘플레이보이’지가 자사 홈페이지를 통해 조사한 ‘누드를 가장 보고 싶은 미LPGA 여성 골프 선수’중 4위에 오르기도 했다.

예전 운동 선수는 다른 것은 다 제쳐두고 오직 운동에만 전념해야 했다. 하지만 지금은 매스 미디어의 시대인 만큼 운동과 패션을 다 겸비해만 하는 시대가 왔다. 대중은 그런 만능 스타를 원한다. 그래서 전에는 없던 '베스트 드레서'상까지 생겼다.

요즘은 뭐든지 앞서가는 사람만이 살아 남을 수 있다고 하는데 골프계의 패션 또한 예외는 아닌 것 같다. 우선 나부터 변신을 서둘러야 겠다.

박나미 프로골퍼·KLPGA정회원 올림픽 콜로세움 전속 전 국가대표

입력시간 2002/05/03 15:29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