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女 + 美] 성적 상상력에 갇힌 나른함

간판 그림 또는 이발소 그림이라고 불려질 만큼 통속적인 미술이 고급미술의 자리를 차지했던 시기가 있었다.

햄버거와 담배의 잡지광고를 찢어 붙인 그림, 되는 대로 찍어낸 듯 보이는 유명인사 얼굴 판화, 과장되게 확대한 만화 그림… 바로 1960년대 미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작품들이다.

당시 고급미술로 받아들여졌던 드 쿠닝, 잭슨 폴록 같은 추상표현주의에 대한 염증과 ‘나는 소비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유행어를 낳을 정도로 팽배했던 소비문화가 낳은 ‘팝아트’가 바로 그것이다.

대표작가로 앤디워홀, 로이 리히텐스타인 등은 작품에 패스트 푸드나 유명인사, 성 풍속도 등을 이용해 예술을 개인적인 것에서 대중적인 것으로 개방하였다.

팝 아티스트의 한 사람이었던 탐 웨셀만은 그 시대 남성들이 동경하고 소유하고 싶은 이상적 여인을 ‘미국의 누드’ 시리즈에서 깔끔한 ‘에로티시즘’으로 표현했다.

여러 가지 재료들을 혼합해서 붙이던 꼴라쥬 기법의 작은 작품에서 탈피한 웨셀만은 개방된 성적 이미지의 여인을 캔버스에 가득 메웠다. 여인은 마치 마네의 ’올랭피아’와 같은 선정적인 포즈를 취하고 있다. 하지만 과감히 생략된 형태와 평면적인 색채감으로 마치 매끄러운 일러스트레이션을 보는 듯 농후한 성의 표현에 대한 거북함을 느낄 수 없다.

당시 미국의 한 갤러리에서 남편이 집안에 장식하고자 고른 웨셀만의 그림을 부인이 못 사게 했다는 일화를 보면 많은 이들의 사랑과 질투를 동시에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비록 ‘팝아트’ 물결은 예술적 가치를 폭 넓게 인정 받지 못했지만 소비사회의 주체인 대중의 의식을 가장 친근하게 표현한 예술 형태라는 점에서는 세계 미술사에 일조를 했다고 할 수 있다.

정지선 미술칼럼니스트

입력시간 2002/05/10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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