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나미의 골프세상] 내기 골프

어드레스가 사뭇 진지해 진다. 어드레스에서 백 스윙까지 인터벌도 조금씩 느려진다. 평소 하던 연습장에서 오고 가는 인사도 한마디 없이 한타 한타가 아주 신중하다.

“혹시 이번 주말 필드 나가세요”라고 묻자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음, 이번에 한판 크게 붙기로 했거든. 그 놈이 지난 번에 내 돈 엄청 따 갔어”라며 전의를 불태운다. “이번에 반드시 되찾아 와야지. 이자까지 붙여서…”

마치 영화 속에 나오는 복수 혈전 같다. 아니 실제로 골프 혈전이다. 여하튼 주말에 내기 골프가 걸려 있는 아마추어 골퍼들은 연습장 입구에서 타석까지 걸어오는 걸음부터 틀려진다. 우리나라 남자 아마추어 골퍼들 사이에는 언제부터인지 ‘내기 골프’ 문화에 너무 익숙해진 듯하다.

사실 프로인 본인도 골프를 직업으로 삼고 있지만, 1,000원짜리 스트로크도 안 하는 플레이는 김 빠진 맥주와 같다는 표현을 하고 싶다. 골프 중 부담 없는 수준의 내기는 적당한 긴장감을 줘 골프의 재미를 배가 시켜 주기 때문이다. 프로 골퍼들도 상금이 단 한푼도 걸려 있지 않는 대회에 출전한다면 아마 기운이 빠질 것이다.

어쨌든 내기를 하면 아무런 타이틀이 걸리지 않았을 때보다 감정의 기복이 훨씬 심해진다. 내가 안될 때는 죽도록 슬프지만, 상대방이 어처구니 없이 1m 기브 퍼팅을 놓쳐서 내기를 이기게 되면 본인이 잘 쳐서 땄을 때보다 훨씬 맛있기 때문이다. 골프를 치는 사람이라면 이 맛이 어떤 느낌인지 알 것이다.

솔직히 내기를 할 때 사람 속 마음은 똑같다. 특히 내기 골프를 할 때 ‘상대방이 퍼트가 언덕으로 내려가 3퍼트 안 하나', ‘드라이브 샷이 도로를 타고 해저드로 들어가지 않나’하고 바란다. 또 자신이 스윙 할 때는 ‘이 퍼팅이 안 들어 가면 얼만데...’, ‘내 볼은 잘못 치더라고 나무 맞고 페어 웨이로 들어왔으면’하는 생각을 갖게 된다. 특히 더블 판(상금이 두 배가 걸린 홀)이면 상대방이 퍼트 어드레스에 들어가기도 전에 받을 돈부터 계산한다. 내기 앞에는 지식인이든 팔순 할아버지든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내기 골프를 안 하면 안될까. 그러면 골프가 재미 없겠고, 돈 내기를 하자니 분쟁이 생겨 친구간 의리도 상하고, 친구도 잃고… 어쨌든 내기라는 것이 누구나 이기고 싶은 마음이 들기 때문에 결과가 좋기 힘들다.

골프장에서 내기 골프를 하다가 토라져 서로 다투는 장면을 흔하기 볼 수 있다. 어렵게 부킹을 해서 즐거운 마음으로 나갔다가 사소한 내기 골프 때문에 감정이 상해 돌아오고 골퍼들을 보면서 ‘이런 내기 골프 문화를 다른 것으로 바꿀 수는 없을까’ 생각해 본다.

이런 소수의 내기 골퍼들 때문에 골프에 대한 이미지가 많이 흐려지는 게 사실이다. 남들은 일터에서 땀 흘리며 일하고 있을 때 골프장에서 운동하면서, 그것도 타당 수 만원, 수 십만원 대의 내기 골프를 하고 있다면 아무래도 일반인으로서는 반감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골프를 ‘가진 자들의 운동’이라 부르는 것도 고액 내기 골프와 관계가 깊다.

골프는 최근 대중화의 길을 가고 있다. 골프가 보다 대중적인 스포츠로 발전하려면 앞으로 이런 내기 골프 문화는 자제 했으면 한다. 올바른 골프 문화를 위해 이런 내기는 어떨까 제안해 본다. ‘잘 친 사람이 못 친 사람에게 맛있는 밥 사주기’, ‘내기에 진 사람에 라운딩 끝내고 운전해 주기’, ‘생맥주 값 내주기’는 어떨까.

이렇게 하면 이기는 사람을 즐겁고, 지는 사람도 큰 부담이 없을 것이다. 다음 번 플레이를 위해, 또 못친 사람의 골프 발전을 위해, 그리고 국내 골프 문화를 위해서…

박나미 프로골퍼·KLPGA정회원 올림픽 콜로세움 전속 전 국가대표

입력시간 2002/05/10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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