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미의 우리풀 우리나무] 때죽나무

오월은 햇살만 보아도 눈이 부신 계절이다. 오월은 신록의 계절이며 꽃 중에 가장 화려하고 향기롭다는 장미의 계절이기도 하다. 하지만 필자에게는 그 햇살보다도 신록보다도 장미보다도 더 기다려지는 자연의 모습이 있다. 바로 때죽나무의 개화이다.

나무에 가득히 때죽나무 꽃송이들이 매달려 일제히 내려다 보고 있고 그 나무 아래에 서서 꽃들을 올려 보며 서 있는 나를 생각하면 저절로 즐거워 진다. 꽃 가운데는 흰빛이 많기도 하지만 때죽나무처럼 순결한 백색 꽃을 가진 꽃이 있을까?

작은 종 같은 하얀 꽃들이 살랑대는 봄바람에 흔들리기라도 하면 사방으로 퍼져 가는 그 꽃의 향기는 상큼한 레몬향 같기도 하고 앳된 숙녀에게서 전해 지는 여린 화장품 냄새 같기도 하다. 때죽나무의 향기를 그 나무 가지 아래서의 음미하고 있노라면 시간마저 향기에 취해 멈춘 듯한 착각에 빠져들게 된다.

때죽나무는 때죽나무과에 속하는 낙엽성 교목이다. 그러나 실제 교목으로 자란 큰 나무는 구경하기 어렵다. 흔히 진한 갈색 수피사이로 잎새가 달릴 때만 해도 여느 나무들처럼 평범해 보이지만 오월이 오고 이 때죽나무의 층층이 자란 긴 가지와 그 사이의 잔가지 사이마다 마친 은종처럼 아래를 향해 몇송이씩 모여 매달리는, 헤아리수 없을 만큼 많은 백색꽃이 일제히 피어나면 장관이다.

가을이 오면 꽃이 진 자리에 달리는, 도토리 같은 모양의 백록색 열매가 긴 자루에 주렁주렁 매달린 모습 또한 보기 좋다.

때죽나무의 열매는 독성이 강해서 예전에는 물고기를 잡는데 썼으며 물에 풀면 기름 때를 없애 주는 비누의 대용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심지어는 동학혁명 때 동학의 농민들은 무기가 부족하자 총알을 직접 만들어 썼는데 바로 이 때죽나무의 열매를 빻아 반죽하고 화약과 섞어 사용했고 한다. 민간에서는 때죽나무의 꽃을 인후통이나 치통에 쓰기도 했다.,

제주도에서는 그 용도가 좀더 특별하다. 제주도는 예로부터 물이 귀한 곳이다. 그래서 외진 산골의 사람들은 지붕이나 나무줄기를 타고 내려오는 빗물을 받아 모아 놓고 식수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나뭇가지로 받은 것을 '참받음물'이라고 했는데 특히 때죽나무는 정결한 나무로 여겨져 이 참받음에 가장 많이 이용되었다고 한다.

이 밖에도 때죽나무는 장기알이나 여러 목기, 지팡이 등의 재료로 사용됐고 꽃의 향기는 향수의 원료로 활용되기도 했다.

최근에 때죽나무가 크게 주목을 받은 것은 공해문제 때문이다. 서울의 도심에 있는 남산이나 비원 같은 곳의 숲들이 산성우와 대기 오염때문에 큰 피해를 입곤 하는데 유독 때죽나무의 어린 나무는 별 탈이 없이 잘 성장한다.

그래서 이 때죽나무가 공해의 피해를 알려 주는 지표식물로서의 가능성에 대해 연구가 진행중에 있다. 정원수로도 좋은데 특히 우리나라의 때죽나무는 추위에 견디는 힘이 강하다고 하여 외국에서는 많은 관심을 가지고 품종개발을 하고, 이미 보급하고 있다고 한다.

시대가 달라지면서 한 나무의 가치도 변한다. 중요한 것은 여전히 아름답고 가치있는 이 우리나무를 아직도 우리들은 알아보지도, 소중하게 여기지도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이 찬란한 5월에 때죽나무가 주는 그 기쁨을 모두가 나누어 가졌으면 좋겠다.

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사

입력시간 2002/05/10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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