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LP여행] 김두수(下)

보헤미안의 향취가 느껴지는 음악세계

김두수 아니 지서종을 기억하는 대학동창생은 아무도 없다. 학교보다는 무명 통기타 가수와 방랑으로 세월을 보냈기 때문이다. 김삿갓 행세를 했던 당시를 김두수는 ‘어설픈 치기였다’며 쓴 웃음을 머금는다.

생활비의 95%가 술값이었을 만큼 삶의 허무감에 비틀거렸던 그에게도 어머니는 늘 그리운 대상이었다. 집에서 15리 길이었던 어머니 묘소를 오가며 품었던 애절한 그리움은 조곡 ‘꽃묘(시오리길2)’로 생명력을 얻었다. 창작의 첫 발자국이었다. 1985년 만든 이 곡은 음악활동을 반대했던 아버지의 마음도 돌려 놓았다. ‘아들이 당신을 위해 만든 곡이라며 어머님 묘 앞에서 녹음기를 틀며 눈물을 흘리던 아버님’을 생각하는

김두수의 눈가에는 어느덧 이슬이 맺혔다.

대학 졸업 후 남미대륙 여행을 꿈꾸며 조양 상선에 입사를 했지만 넥타이를 매자 숨이 막혀와 퇴사했다. 집안에 박혀 시집을 읽던 중 노래 가락들이마구 떠올랐다. 즐겨 마시던 술도 멀리하고 창작의 물꼬를 텄다. 그의 마음을사로잡았던 시는 미당 서정주의 <귀촉도>. 허락을 받으려 미당의 자택을 찾았다.

노래를 들은 서정주는 ‘좋군.부르게’하며 흡족해 했다. 용기가 생겨나자 킹 프로덕션을 찾아가 즉석 오디션을 받았다. <시오리길>의 네 소절만 듣고서 킹 박은 ‘그만 됐다. 판 내자’고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장충동 스튜디오에서 작업 중이던 신중현은 데뷔 앨범녹음에 열심인 김두수를 격려하며 용도폐기 직전의 마틴 기타를 선물로 주었다.녹음을 마치자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러나 온통 시위정국으로 뒤숭숭한 세상은 고려대 출신 가수의 비탄조의 가사가 영 못마땅했다. 심의불가 철퇴가 내려졌다. 대박을 꿈꾸던 킹 박은 발 빠르게 사무실 미스 리의 제안대로 문제 곡 <철탑>을 <작은 새의 꿈>으로 제목을 변경하고 가사도 일부 수정하여 심의를 통과시켰다. 재킷도 내정된 윤해남 화백의 추상화를

김두수 얼굴 사진으로 슬그머니 교체시켜 버렸다. 김두수는 데뷔음반 <김두수.귀촉도

서라벌SBK0059,86년4월>을 보고 절망했다. 또한 미당 서정주의 시 <귀촉도>를 주력 홍보 곡으로 삼으려 하자 시인에게 누가 될까 반항했다. ‘아마도 히트를 시키려는 홍보를 막았던 나를 정신 이상자로 생각했을 것이다. 전량 폐기하고 싶은 음반이 10만원도 넘는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니 황당할 뿐’이라며 씁쓸해 한다.

1집은 습작 같은 곡들이었지만 한국적 서정성이 물씬 배여 있는 독특한 가락이었다. 가녀린 듯 떠는 바이브레이션 창법은 폭발적인 반응은 아니었지만 묘한 신비감을 자아내며 비수처럼 듣는 이의 가슴속으로 파고들었다. 그러나 자취방으로 들이닥친 수사관들의 무차별 방 수색은 노래에 염증을 느끼게 했다.

1년 후 <동아기획>에서 음반제작을 의뢰해 했다. 사지 절단된 <작은 새의 꿈>을 <철탑 위에 앉은 새>로 부활시키고 진흙을 박차고 솟아나는 새순의 이미지를 담은 윤해남의 새로운 그림을 2집 <김두수-서라벌

VIP20055,88년> 재킷으로 삼으며 응어리 졌던 한을 풀었다. 첫 방송 출연도 했다. 당시 최고의 인기가수 박남정 다음 순서였는데 ‘열광하던 소녀 팬들이 왠 이상한 가수가 나왔냐는 표정으로 어찌나 냉랭한 반응을 보이던지...’라며 김두수는 껄껄 웃는다.

오랜 객지생활 때문에 영양실조에 걸렸고 경추 결핵으로 악화되며 김두수를 쓰러뜨렸다. 활동을 중단하고 양평으로 요양을 떠나자 제작사는 허망했지만 조동진은 ‘뛰어난 노래만큼이나 재킷도 세계적’이라는 찬사를 보냈다.

2집의 <약속의 땅>은 자신의 음악적 유토피아를 그려낸 명곡이었다. 이미 결핵 3기로 발전한 몹쓸 병은 3년간 병원 신세를 지게 했다. 비틀거리면서도 3집<김두수-현대HDP159,91년>제작을 마쳤다. 명곡 <보헤미안>이 탄생했다. ‘부산의 한 여성 팬이 이 노래를 듣고 자살을 기도했다’는 소식과

‘주문진으로 자살하러 갔던 어떤 사람은 우연히 이 노래를 듣고 자살을 포기했다’는 장문의 감사편지를 보내왔다. 극단적인 반응에 음악적 혼란이 느껴지자 강원도 산골 속으로 잠적해 버렸다.

4집<자유혼>은 열성 팬의 사랑으로 탄생했다. 자비를 들여 앨범 제작비를 댄 그의 정성은 10여년 만에 김두수를 세상 밖으로 끌어냈다. 김두수는 음악적으로 모자람을 느껴오던 <보헤미안><나비>를 새롭게 완성시켰다.

김두수는 ‘절망의 끝이 아닌 희망의 메시지를 말하고 싶었다’며 밝은 표정을 짓는다. <추상> 등 새로운 곡들은 고품격으로 심오하게 변신한 그의 새로운 음악세계를 보여준다. 다소 난해한 아방가르드적인 향기가

풍기지만 사랑타령과 편향적인 R&B로만 치닫는 대중가요계에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었다. ‘마음이 어지러울 때 들으면 좋은 음악이 되기를 바란다’는 작은 소망과 더불어 직업가수가 되었음을 처음으로 인정하는 김두수. 그의 음악적 유토피아 탐험은 이제 결실을 맺고 있다.

입력시간 2002/05/10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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