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일, 국교정상화 교섭 숨통

행불자 소재파악 등에 전향적 자세, 경색관계 해소 진일보

북한과 일본이 4월 30일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열린 적십자회담에서 북한 거주 일본인 처들의 일본 일시귀국 등 4개항에 합의하는 등 그 동안 경색됐던 관계를 풀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적십자회담 6월 재개로 대화의지 확인

양측은 회담에서 ▲ 북한은 일본인 행방 불명자에 대한 조사를 실시하고 그 결과를 일본측에 통보해 준다 ▲ 일본은 북한인 행방 불명자에 대한 조사를 벌여 결과를 북한측에 통보해 준다 ▲ 북한 거주 일본인 처의 일시 귀국을 여름께 실시한다 ▲ 다음 적십자 회담을 6월께 갖는다는 내용에 합의했다.

일본측은 회담에서 1983년 영국에서 연락이 끊긴 아리모토 게이코(당시 23세) 등 납치 의혹이 있는 11명을 포함한 총 49명에 대한 소재파악과 안부확인을 북한측에 요구했다. 북측은 아리모토 문제에 대해서는 “사실관계를 모른다.

일본측이 정식으로 요청을 했기 때문에 관계자와 연락을 취해서 조사를 해보겠다”고 말했다. 북한측은 1945년 이전에 일본으로 갔다가 행방 불명된 259명에 대한 소재파악을 일본측에 요청했으며, 일본측도 신속한 조사를 벌여 통보해 주겠다고 말했다.

또 일본측은 회담에서 북한에 거주하고 있는 일본인 처들이 고령화된 점을 감안, 2000년 9월 이래 중단되어온 일본인 처들의 일시귀국 재개를 요청했으며, 북한측은 여름께 실시하자고 제안해 합의가 이뤄졌다. 이와 함께 일본측은 북한에 거주하고 있는 원폭 피해자들이 치료차 일본을 방문할 경우, 지원하겠다는 입장을 북측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후쿠다 야스오 관방 장관은 북한이 일본인 행방 불명자에 대한 소재파악에 나서겠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정부는 북한의 조치를 환영한다. 앞으로 예의 주시하겠다”고 말했다. 일본 언론들도 북한측이 상당히 전향적인 입장을 보인데 대해 의외라고 보도하면서 앞으로 북일 관계가 발전될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전망했다.

양측은 지난해 도쿄지검의 재일 총련중앙본부 압수수색, 괴선박 침몰사건 등으로 극도로 사이가 악화된 상태에서 대화의 돌파구를 찾지 못했기 때문에, 일본측은 이번 회담에서 구체적인 성과가 있으리라고는 기대하지 못했다.

일본이 이처럼 회담 내용을 반기는 이유는 일본 국민이 가장 큰 관심을 갖고 있는 일본인 행방 불명자 문제에 대해 북한측이 “조치를 취하겠다”고 확실한 입장을 밝혔기 때문이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 등 일본 정부 관계자들은 지금까지 “일본인 납치문제가 해결되지 않고는 북일 관계 정상화는 있을 수 없다”는 강경한 입장을 보여왔다.

일본측은 북한의 ‘성의 있는’ 태도에 화답, 북한 거주 원폭피해자에 대한 일본의 지원을 약속하고 1945년 이전 일본으로 갔다가 행방 불명된 조선인 259명에 대해서 신속한 소재파악 작업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이로써 이번 베이징 북일 적십자회담은 2000년 10월 이후 교착상태에 빠져있는 북일 국교정상화 교섭에 숨통을 터줄 것으로 전망된다. 당장 북일 수교교섭이 재개되리라고 예단할 수는 없지만 양측이 6월 적십자회담을 재개키로 합의하는 등 대화를 계속 유지해 나가기로 했다는 점에서 수교교섭 문제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침몰 괴선박 인양 등 내관도 여전

그러나 모든 문제가 그렇게 간단해 보이지 만은 않는다. 일본은 5월 1일부터 지난해 말 동중국해 중국측 배타적 경제수역(EEZ)에서 침몰한 북한 공작선으로 추정되는 괴선박을 인양하기 위한 준비 작업에 나섰다. 일본이 괴선박을 인양해 괴선박의 국적을 확인하려는 작업에 박차를 가할 경우, 북한의 반발이 예상되고 있어 모처럼 조성된 대화분위기는 다시 원점으로 회귀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북한측도 이 같은 점을 의식한 듯 북일관계 개선의 핵심문제는 일본의 과거범죄에 대한 청산 여부이라면서 일본이 관계개선 의지가 있다면 이에 관심을 돌려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북한의 평양방송은 4월 30일 ‘대담' 프로그램에서 “조일 관계를 개선하자면 가해자인 일본이 피해자인 우리 인민에게 과거 죄행에 대해 철저히 사죄하고 보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방송은 “일본은 패망 후 처리했어야 할 과거청산문제를 반세기가 넘는 오늘까지도 이러저러한 부당한 구실을 대면서 미뤄오고 있다”면서 “일본이 응당 이행해야 할 사죄, 보상 의무를 회피하고 있는 것으로 해 지리적으로 가까운 이웃인 조일 두나라는 적대관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도쿄=신윤석특파원

입력시간 2002/05/10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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