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신화] 10년후에도 계속될까

사상 최대 실적 달성한 삼성전자, 세계 TOP3 진입 중장기 계획 추진

삼성전자의 1분기(1~3월) 사상 최대 실적이 발표된 4월 19일. 이건희 삼성 회장과 전자 계열사 사장단은 용인연수원에서 1박 2일에 걸친 사장단 회의를 열었다. 샴페인을 터뜨릴만한 날이 였건만 정작 이날 회의의 분위기는 담담했고 심지어 결연했다.

이 회장은 “성과가 좋을 때 자만하지 말고 위기의식을 가져야만 극심해질 도전을 이겨낼 수 있다”면서 “5~10년 뒤 세계 1위를 위한 목표 수립과 달성 전략을 준비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회장의 특명, 즉 준비경영 지침이 떨어진 것이다. 이에 따라 삼성 전자계열사는 2010년까지 세계 톱(Top)3에 진입한다는 중장기 계획을 수립하고 본격적인 추진에 나서기 시작했다.


세계 초우량기업으로 대변신

삼성전자의 신화는 과연 계속될 수 있을까. 물론 아무도 미래를 알 수 없다. 하지만 삼성전자가 요술방망이를 휘두르듯 기적에 가까운 놀라운 성과를 달성해온 것은 사실이다.

사실 4년전 국가부도사태를 몰고온 IMF 당시 삼성전자는 별 현금도 없이 전체 차입금 규모가 20조원에 육박했다. 그러나 지금은 초우량 기업으로 대변신을 했다. 비결이 뭘까.

삼성전자는 소니, 모토로라 등 세계적인 IT기업이 적자를 면치 못하는 상황에서 올해 1분기 매출과 순익에서 사상 최대치를 달성했다. 영업 이익률도 세계 정보 기술(IT)기업 중 최고 수준인 20%를 넘는 진기록을 세웠다. 전세계적으로 IT 경기가 침체기에 있는 상황에서 눈부신 경영 성과를 올려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올 1분기 반도체 통신부문은 물론 디지털과 생활가전 등 전 부문에서 흑자를 실현하며 매출 9조9,300억원에 영업이익 2조1,000억원, 순익 1조9,000억원이라는 경이로운 성과를 올렸다.

사상 최대의 매출과 이익 달성으로 삼성전자는 자산이 1조6,800억원이나 더 늘어나고 부채 비율이 36%로 떨어졌으며 총 차입금이 3조7,500억원으로 줄었다.

이에 따라 현금 보유액은 물론 순차입 비율도 -7%에 불과한 세계 초우량기업으로 확고히 자리잡았다.

부문별 매출 실적에서도 반도체가 2조9,700억원(매출비중 29.9%), 정보통신이 2조9,400억원(29.6%), 디지털미디어가 2조6,700억원(26.8%) 등 3대 분야 모두가 엇비슷한 규모를 달성, 디지털 사업에 필요한 포트폴리오를 갖추었다.

생활 가전도 9,200억원, 신규 사업 등 기타 부문이 4,400억원의 실적을 올려 3대 핵심 사업과의 디지털 컨버전스를 위한 기반을 마련했다.

삼성 측은 반도체가 바닥세 탈출로 9,900억원에 달하는 높은 영업이익을 냈고 정보통신이 8,000억원의 영업이익으로 반도체를 바짝 따라붙었으며 디지털미디어와 생활가전에서도 각각 2,000억원, 1,100억원의 영업이익을 달성하는 등 4대 사업 분야가 모두 흑자기조를 확대했기 때문이라고 흑자 배경을 밝혔다.

삼성은 이 여세를 몰아 올해 매출 40조원, 순익 8조원을 달성하고 2010년까지 세계 3대 전자업체로 도약할 것이라고 기염을 토했다.

지난 해 죽을 쑤던 D램 경기가 완만한 회복 국면을 이어가고 초박막 액정표시장치(TFT LCD)도 1, 2년 동안 ‘제2의 호황기’를 누릴 전망이어서 삼성의 호언은 조만간 현실로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탄탄한 사업 포트폴리오, 높은 경쟁력

삼성전자의 자신감은 먼저 탄탄한 사업 구조에서 나온다. 세계 어느 기업과 비교해도 결코 뒤지지 않을 정도로 사업 포트폴리오가 잘 짜여 있다. 흔히 삼성전자는 D램을 만드는 반도체 기업이라 잘 알려져 있다.

이 때문에 메모리 가격이 하락하거나 반도체 경기가 좋지 않으면 회사도 치명타를 맞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삼성전자의 사정은 다르다. 6개 사업장을 통해서도 삼성전자의 포트폴리오를 읽을 수 있다.

삼성전자는 수원(디지털 미디어, 생활가전)을 비롯해 기흥(반도체), 구미 1ㆍ2(이동통신), 온양(반도체), 광주(냉장고) 등 전국 6개의 사업장을 두고 있으며 여기에 5만여명의 직원들이 일하고 있다.

IT산업 경기가 극도로 침체하고 반도체산업 불황이 심각했던 지난해에도 삼성전자는 2조9,469억원의 순이익을 냈다. 삼성전자의 매출 구성을 보면 메모리 부문은 전체의 15% 정도에 불과하다. 반도체 중에서도 메모리를 제외한 액정표시장치(LCD)와 고밀도 집적회로(LSI)가 10%를 차지한다.

또한 통신과 디지털 미디어가 각각 30%에 근접했고, 생활 가전과 기타부문의 비중도 10%를 넘었다. 매출만 본다면 삼성전자는 반도체 업체라기보다 통신업체라고 해야 옳다. 삼성전자의 강점은 지속적인 구조조정과 투자를 통해 이처럼 각 사업부문의 경쟁력이 고루 세계 수준에 다다랐다는 것이다.

'1등 아니면 하지 않는다'는 삼성 만의 독특한 경영 방침도 빼 놓을 수 없는 비결이다. 실제로 삼성전자 CEO들에겐 일등주의가 뿌리깊이 배어 있다. 일등주의는 이건희 삼성 회장의 경영 스타일에서 비롯된다. 이 회장은 어느 그룹 총수 보다도 기본과 최고를 강조하는 오너로 잘 알려져 있다.

이건희 회장의 일등주의가 최고의 CEO 선발로 이어지고 이들이 일등주의의 사령탑을 맡고 있으니 제품 역시 시장에서 수위를 달릴 수 밖에 없다.


일등주의가 만든 월드베스트 상품

일등주의는 당연히 부가가치가 높은 월드 베스트 상품으로 이어진다. 최근 미국에서 히트상품으로 선정된 PDA겸용 스마트폰도 이 같은 노력의 결과다. 지난해 전 세계 IT시장이 불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삼성전자 만이 흑자를 낼 수 있었던 것은 이들 고부가 제품이 선전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의 제품 라인업이 세계 최고 수준인 것도 여기에 연유한다. 반도체의 경우 인텔이나 마이크론테크놀로지, 통신 장비는 노키아나 모토로라, 생활 가전은 소니나 필립스, TFT-LCD는 LG필립스에 필적한다.

TFT-LCD와 통신 단말기의 경우 삼성 제품의 시장 지배력은 시장 점유율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애니콜 신화’는 지구촌을 강타하며 한국의 대표 브랜드가 됐다. 중국에서 애니콜은 부와 명예, 자존심의 상징이다. 삼성전자의 세계 CDMA 시장 점유율은 28%에 육박한다.

삼성의 일류주의를 단편적으로 보여 준 것이 바로 애니콜 휴대폰이다. 1983년 휴대폰 사업을 시작한 삼성은 10년 넘게 고전했다. 국내에서조차 모토로라의 아성을 무너트릴 뾰족한 방법이 없었다.

94년부터 삼성은 결국 당시의 최고 제품인 모토로라에 버금가는 제품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모델명 SCH770'이라 불리는 애니콜 단말기다.

애니콜은 삼성의 야심작답게 불티나게 팔려 나갔다. ‘호사다마’랄까 95년 시판한 휴대폰 중 불량이 있다는 소비자의 불만이 이어졌다. 당시 삼성전자는 즉각 전 제품을 회수해 새 제품으로 교환해 주었다.

당시 삼성은 200억원 정도의 출혈을 감수해야 했다. 하지만 삼성이 얻은 반사 이익은 더욱 컸다. 삼성전자 내에서는 제품을 만들고 파는데도 명예를 중시하는 풍토가 자리잡았으며 소비자들도 삼성을 최고의 브랜드로 인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삼성은 휴대폰 한 종목으로 지난해 7조원의 매출에 1조2,000억원의 이익을 남겼다.

하지만 누가 뭐래도 오늘의 삼성전자를 만든 것은 ‘반도체 신화’이다. 반도체 사업에는 미래를 바로 보는 삼성전자의 과거와 현재, 미래가 그대로 녹아 있다. 삼성전자가 반도체 사업에 뛰어든 것은 지난 76년. 어렵게 시작한 반도체 사업에서 확실한 승기를 잡은 시점은 80년대 말과 90년대 초 정도다.

장기 불황으로 일본 반도체 업체들이 주춤주춤 할 때 삼성은 1메가 D램 및 4메가 D램 사업에 돈을 쏟아 부었다. 당시 그룹 내에서도 비판이 만만치 않았지만 미래 사업으로 충분한 가능성이 있다는 확신에서 과감한 투자를 결정한 것이다. 결국 적기 투자 덕분에 삼성전자는 메모리 사업을 시작한 지 11년만에 256메가 D램을 시장에 내놓으면서 당당히 세계 1위에 올랐다.


황제경영, 비판의 목소리도

삼성전자의 D램은 92년부터 9년간, S램은 95년부터 6년간, LCD는 98년부터 3년간 세계 시장에서 패권을 장악했다. 미국과 일본, 유럽보다 출발은 늦었지만, ‘선택과 집중’으로 반도체 신화를 창조해 냈다.

지금의 삼성전자는 분명 창업 당시인 70년대나 성장 기반을 잡은 90년대와는 질적으로 다르다. 90년대에는 다른 사업부문이 정체된 상태에서 D램 일변도로 성장했지만, 지금의 삼성전자는 전 부문이 균형있게 성장하고 있다. 삼성전자의 사업 포트폴리오와 기술력은 비유하자면 마이크론, 소니, 모토로라 등을 한데 모아놓은 것과 비슷하다.

이는 삼성전자가 전자 산업 트렌드에 적응할 수 있는 경쟁력을 확보했다는 뜻이다. 전자 산업은 디지털 기술의 확산으로 이제 인터넷과 네트워크를 제외하고는 이야기할 수 없는 시점에 이르렀다.

인터넷과 네트워크가 의미하는 것은 ‘기술의 도약과 융합’이다. 반도체에서 통신, 디지털 가전에 이르기까지 전 분야에 걸쳐 고른 기술력을 가져야 하며 이를 적절하게 컨버전할 수 있는 기업 만이 살아 날 수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디지털 컨버전스 기업’를 모토로 새롭게 비전을 수립했다. 1분기에 이룩한 경영 실적은 디지털 글로벌 기업 삼성전자 신화의 신호탄인 셈이다.
그러나 모두가 삼성전자에 박수를 보내는 것은 아니다.

1% 미만의 내부지분율을 가진 이 회장이 여전히 삼성전자를 비롯한 그룹 전체를 지배하는 경영체제를 유지하고 있고 그룹 구조조정본부가 선단식 경영의 콘트롤타워였던 비서실의 역할을 사실상 대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기업의 목적이 이윤창출인만큼 놀라운 경영성과를 거둔 기업을 기업지배구조와 선단식 경영, 황제식 경영이란 등의 관점에서 전적으로 비난할 수는 없지만 삼성전자가 한 단계 더 도약하기 위해서는 IMF체제의 뼈아픈 교훈을 되새겨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강병준 전자신문 정보가전부 기자

입력시간 2002/05/10 15:31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