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昌의 전쟁] 광주·호남 지역주의 악습 날린 변화의 바람

'때묻은 昌'인식, 노무현 지지로 정권 재창출 의지

“정말 사람을 보고 찍을 겁니다. 또 다시 지역주의의 볼모가 될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광주에서 의료기기 도ㆍ소매업을 하는 김우성(43ㆍ광주 북구 문흥동)씨는 이번 대선에서 누구를 찍을 것이냐는 물음에 이렇게 딱 잘라 말했다. 그는 이어 “이번 대선이야말로 영ㆍ호남간의 동서갈등이 치유될 수 있는 정치적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 민초들 사이에 형성돼 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김씨의 이 한마디가 아니라도 영남과 함께 지역갈등의 핵이라는 꼬리표를 달아온 호남지역에서 민심이 변하고 있다는 사실을 감지하기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 변화의 진원지는 역시 민주당의 노무현 대선후보가 일으킨 ‘노풍(盧風)’이다. 3월16일 민주당 광주경선에서 노 후보가 호남 출신인 한화갑 후보를 압도적 표차로 누른 것을 두고 지역정가에서는 호남 민심변화의 신호탄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렇다면 호남이 ‘경상도 출신’인 노 후보를 지지하는 이유는 뭘까. 호남에서 불고 있는 노풍의 이면에는 연일 터지는 여권 인사들의 권력형 비리로 인한 ‘탈(脫) DJ경향’이 폭 넓게 자리잡고 있다. 민주당보다는 노 후보 개인에 대한 지지성향이 강해지고 있다는 얘기다.

여기에는 물론 노풍과 맞물려 “미워도 다시 한번”으로 대변되는 정권 재창출의 숨은 뜻도 깔려 있다. 하지만 민주당의 정권 재창출을 “영남 중심의 한나라당이 정권을 잡는 것을 볼 수 없다”는 지역패권주의적 발상으로 연결시키는 데 대해서는 경계한다.

광주시민단체협의회 윤장현(53) 공동대표의 말. “솔직히 호남에서 한나라당 집권을 바라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하지만 이는 영남정권으로 넘어가는 게 싫어서가 아니라 민심이 이미 이회창 후보는 대통령으로서 ‘함량 미달’이라는 ‘진단’을 내렸기 때문이죠.”

실제 부딪히는 사람마다 “이회창 후보가 싫다”고 했다. 전남 화순군 버스터미널에서 만난 회사원 주정훈(34ㆍ전남 화순군 화순읍 대리)씨는 “이 후보도 최근 비리 정치인들과 크게 다를 바 없다”며 “대통령 후보라면 당과 연고가 아닌 깨끗하고 실력이 있는 인물이어야 하고 그런 인물이 한나라당에서 나온다면 당연히 그 사람을 지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호남 민심의 밑바닥에는 이 후보도 권력형 비리에서 자유롭지 못한 ‘그렇고 그런’ 한 정치인이라는 인식이 자리잡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대선 때까지 지역주의의 벽을 허물기 위한 호남민심의 기류변화는 지속될 것이라는 점이다. 일각에서 이 후보가 자신에 대한 이미지 개선 등 노력 여하에 따라 호남 민심을 파고 들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광주=안경호 사회부 기자

입력시간 2002/05/10 16:56


광주=안경호 사회부 kha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