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 하늘꽃, 고려여인과 몽골인의 운명적 사랑과 가슴앓이

■ 하늘꽃
이인화 지음. 동방미디어 펴냄.

“일찍이 고운 언약을 이루지 못하고 일평생 그대를 마음에 풀어 파계(破戒)하는 큰 죄를 짓고 괴로운 윤회를 면치 못하게 되었습니다. 아아, 아름다운 그대는 진정 불이(不二)의 하얀 꽃을 얻으셨나요? ”

‘영원한 제국’의 작가이며 발레 오페라 설치미술 등의 대본을 쓰느라 한동안 외도를 했던 이인화(이화여대 교수)가 오랜만에 소설집 ‘하늘꽃’을 냈다. 책에는 표제작 하늘꽃을 비롯해 2000년 이상문학상 수상작인 ‘시인의 별’ ‘려인(麗人)’ ‘시인의 별’ ‘초원을 걷는 남자’ ‘말입술꽃’ 등 다섯 편이 실려 있다.

다섯 편 모두 몽골과 관련이 있다. 주인공은 몽골의 관리(하늘꽃), 시인(시인의 별, 말입술꽃), 문학 청년(초원을 걷는 남자) 등이다. 작가는 이 작품들을 쓰면서 “매년 몽골을 찾아가 말을 타고 황량한 광야의 비인정(非人情)과 몰인정을 순례했다”며 “그 세계는 나의 법화경이었고 성경이었고 논어였다”고 말했다.

작가는 영원한 제국에서 보여주었듯이 역사 속의 기록에서 독특한 소재를 찾아 힘차고 남성적인 작품세계로 연결하는 재주가 있다. 하늘꽃은 600여년 전의 고문서(‘조선사찰자료 추보편’)에서 발견된 한 줄의 사랑고백을 단초로 한 로맨틱 미스터리이다.

분량상으로 경장편에 속하는 이 소설은 13세기 몽골과 고려 접경지역을 배경으로 젊은 시절 몽골의 감찰관이었던 나얀(단도 스님)과 고려 여인 쏠마(조선 태조 이성계의 서모)의 사랑 이야기에 이성계 아버지(이자춘) 형제들이 벌이는 권력 싸움을 배합했다.

작가는 20년 전쯤의 한국과 비슷한 몽골은 한 사람이 현재의 한 사람과 20년 한 사람이란 두 사람으로 존재하는 비(非)동시적 공간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를 두고 문학평론가 김동식은 이 책 말미에 붙은 ‘환멸의 낭만주의에서 초절의 낭만주의로’란 해설에서 “(이인화의 소설에서) 몽골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작가 이인화에 의해 ‘발견’된 것”이라며 “그와 동시에 몽골은 이인화라는 존재를 ‘발견’한다”고 설명했다.

입력시간 2002/05/16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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